소설연재
이렇게 벤자민과 학교를 갈 수 있는 날도 얼마 안 남았다. 뜻하지 않게 어린 나이에 ‘실혼자’가 되어버린 아이들은 일반 아이들과 다르게 교육과정을 같이 마치지 못 한다. 어차피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과정이기에 학교도 어찌하지 못하지만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발랑까진 아이’ 혹은 ‘우리아이에게 물든다’는 명목 하에 학부모들의 반발이 심했다. 점점 학교에서는 회색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을 받으려 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실혼자’들은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나이 9살에 이미 회색 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어른들은 벤자민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성인이 된 후의 ‘그’의 모습을 상상했고, 그 때 일어날 일들을 미리 떠올리며 외면해 버렸다. ‘어차피 교육을 받아도 쓸모없을 거야’ 라는 말을 입에 오르내렸다.
엠마와 벤자민이 학교 가는 길에 하는 이야기는 거의 ‘블랙 아일랜드’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 사는 동네는 블랙 아일랜드로 가는 경계에 있다. 블랙 아일랜드는 회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지옥보다 더 끔찍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이 곳에 한 번 떠난 사람은 있어도 돌아온 사람은 없다. 끔찍할 걸 알면서도 블랙 아일랜드로 가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실혼자’들이 이 세상에서 홀로 살 곳이 없다. 어딘가에 취업하지 못하기에 벌 수 있는 돈은 없고, 범죄를 일으키면 바로 사형을 당하기 때문에 차라리 목숨이라도 부지 하면서 마지막으로 목숨이라도 부지하자며 향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블랙아일랜드에서 이쪽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삼엄한 경비가 있고, 눈에 띄면 즉시 사살된다. 그래서 ‘죽어야만 알 수 있는 곳’ 이라는 음침한 부제가 붙은 블랙 아일랜드가 무서워서라도 사람들은 자신의 연인을 꼭 붙잡는다. 매일 밤 서로를 미워하고 싸우면서도 절대 서로를 놓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그런 상태가 ‘실혼자’들과 뭐가 다르겠나 싶지만 말이다.
블랙 아일랜드를 이 곳에서 보면 섬 전체가 검은색이다.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끔찍할 거라고 상상한다. 100년 전만 해도 블랙 아일랜드는 푸른 숲이 울창한 곳이었다고 한다. 모든 세상이 온전했을 당시에 이 곳으로 여행을 갔던 사람이 쓴 책을 메리 이모의 서가에서 읽은 적이 있다. 당국에서는 이제 그 전의 이야기들을 금기시 한다. 물론 지금 그런 책들은 다 불태워 없애긴 했지만 메리 이모가 몰래 숨겨 놓은 책이 몇 권 있어서 엠마는 읽을 수 있었다.
한 번 씩 멀리서 비명소리 비슷한 게 들려오면 사람들은 다 같이 모여 블랙 아일랜드 쪽을 바라본다. ‘그런 놈들이 모여있는 곳이야 뻔하지.’ 라며 어른들이 이야기 하곤 한다.
그곳에 대한 소문 중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 블랙 아일랜드로 떠난 두 사람이 있었다. 그 곳에서의 생활이 너무 끔찍했던 나머지 다시 이 곳에 돌아오려고 숨어서 헤엄쳐 오다가 경비대에게 발각되서 죽었다고 한다.
“그 때 그 부부를 봤던 사람들이 그러는데 두 눈이 뽑혀 있었대.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온 몸이 검게 변해 있고, 회색 눈만 희번뜩 한대. 밤에 보면 거의 짐승이나 다를 것 없이 느껴진다던데. 배 고프면 서로를 잡아 먹는 건 아닌가 몰라.”
벤자민이 속삭이면서 말한다. 흥미진진하게 말하던 벤자민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두려워하고 있었다. 두 눈이 뽑힌 가엾은 부부를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그 입장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벤자민을 조금이라도 안심시켜주고 싶었다.
"벤자민,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너랑 꼭 옆집에 살 거야. 네가 블랙 아일랜드로 가거나 범죄를 저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지 않도록 일을 구해서 네가 집에서 혼자 오롯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약속해.”
엠마는 벤자민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야기하고 싱긋 웃었다. 벤자민은 그 말이 싫지 않은지 같이 싱긋 웃었다.
“그냥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내가 화분에 잘못 심겨진 것 같은 기분.”
벤자민은 아직 쨍한 나의 갈색 눈을 보면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벤자민과 그의 부모는 성향이 너무 달랐다. 엠마는 가끔 생각한다. 어떻게 저렇게 이기적인 부모 밑에 이렇게 착한 자식이 태어날 수 있는지 말이다.
“그래도 그 덕분에 이렇게 배고프지 않게 사는 걸. 오히려 이 제도에 감사한다는 다른 사람들 말이 이해가 가기도 해. 그 기회들이 태어날 때부터 없었다면 우리 가족은 이미 죽고 없었을 거야.”
벤자민 말이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 제도를 만든 이에게 오히려 감사해 한다. 가난하던, 부자이건 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기회가 세 번 주어지는 건 공평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