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연재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딱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 기회는 바로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할 수 있는 기회. 누구든 예외는 없다. 공평하게 세 번씩 주어진다. 이 기회를 다 쓰게 되면 누구와도 이성간의 사랑을 할 수 없다. 할 수 없기보다는 그런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두근거림, 설렘,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없이 무 감정의 상태로 변해버린다. 그런 감정없이 사는 것은 혹자가 말하길 텅 빈 호수 옆에 동물도 없이 혼자 사는 느낌이라고 했다. 물론 그게 어떤 느낌인지는 되어봐야 알지만 말이다.
세 번의 기회를 다 써버린 사람들을 우리는 ‘실혼자’ 라고 부른다.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들’ 이라는 뜻으로 일반 사람들과 차이 나는 점이 딱 한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눈동자의 색이다. 3번의 기회가 끝난 사람들은 눈동자가 회색으로 변한다. 그런 사람들이 따로 사는 곳이 있다. 그 곳의 이름은 ‘블랙 아일랜드’다. 다들 이곳만은 피하고 싶어 한다. 다행히도 가족 중 보호해야 할 아이가 있거나, 보호가 필요한 실혼자가 아닌 가족이 있다면 블랙 아일랜드로 가는 시기를 미룰 수가 있다.
아직 나이가 어려 세 번의 기회를 오롯이 가지고 있는 엠마 덕에 메리는 블랙 아일랜드로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엠마의 나이가 벌써 17살이다. 엠마가 성인이 되면 메리는 엠마의 보호자 자격을 잃게 된다.
“엠마. 아직 시간이 좀 남았잖아. 비슷한 사람들끼리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메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농담을 했다.
“아무리 긍정적인 게 좋다고 해도 이런 건 해당 안 돼.”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메리가 엠마는 너무 답답하다.
다음 날 아침, 엠마는 일찍 눈을 떴다. 8시까지 학교에 도착하려면 다른 친구들처럼 늦잠을 잘 수 없다. 학교까지 가려면 2시간은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혼자’와 ‘실혼자’가 아닌 사람이 가족 구성원으로 있다면 되도록 도시와 멀리 떨어진 숲에 산다. 너무 힘들지만 그 먼 길에 항상 벤자민이 함께해 주기 때문에 덜 지루하다. 그는 내가 등교하는 시간이면 항상 우리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모에게 인사를 하고 문을 열면 벤자민은 항상 웃으면서 나를 맞이한다.
“굿키퍼”
밤새 자신의 기회를 잘 지켰는지 물어보는 뜻인 ‘굿키퍼’는 어느새 인사가 되어 버렸다. 벤자민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따뜻한 회색눈을 가지고 있다. 나도 그를 보며 웃으면 인사했다.
“굿키퍼”
벤자민의 가족은 우리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다. 한 때 그의 부모가 사업을 크게 성공 시켰지만 부도가 났고, 돈 한 푼 없이 길거리에 나앉았다. 돈도 없고, 사람들도 다 떠나가자 배를 곯기 시작했고, 너무 가난했던 나머지 벤자민의 부모님은 벤자민이 아무것도 모르는 3살 때 그가 가진 기회 한 번을 부자에게 팔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의 부모님은 한 번의 기회만 팔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돈으로 재개를 시도했지만 또 다시 망했고, 벤자민의 나머지 두 번의 기회를 팔아 빚을 갚고 이 동네로 이사 오게 되었다. 그렇게 벤자민은 누군가와 사랑을 해보지도 못 한 채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의 부모는 굶어 죽는 것 보다는 차별 받는 걸 선택했다. 벤자민은 그런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에게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사랑의 기회를 가직 있을 때의 기분을 몰라서 그런 것 아닐까 하고 엠마는 생각했다.
“다음주면 벌써 파티네.” 벤자민이 말했다.
“이번에 가면 진짜 괜찮은 사람 하나 콱! 잡아야지.” 엠마가 웃으며 말했다.
“그게 말처럼 쉬우면 이 세상에 실혼자가 어딨겠어.” 벤자민이 받아쳤다.
매년 각 구역에는 성대한 파티가 열린다. 아직 기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잘 차려 입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자리다. 17살부터 파티에 참석할 수 있는데 일찍부터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보고 결정하라는 나라의 특별 배려랄까.
“날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면 돼. 착하디 착해서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없을 것 같은 사람. 어차피 두 번 밖에 안 남았으니까.”
엠마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적부터 실혼자인 이모가 사람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봐 온 터라 엠마는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하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착한 사람이면 다 돼?” 벤자민이 놀리듯 물었다.
“당연하지! 난 열정적인 사랑 그런 거 안 믿어. 내 생활을 안정적이게 만들어준다면 난 사랑이라고 믿을거야. 다 각자 이 세상에서 살아남자고 이렇게 된 거 아니야? 사랑도 결국 생존의 문제라고.”
벤자민은 눈을 똘망똘망 뜨며 말하는 엠마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벤자민은 엠마와 같은 나이지만 훨씬 더 어른스럽다. 큰 일이 있어도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엠마를 다독인다. 벤자민이 아니었으면 엠마는 이미 큰 사고를 한 번 치고도 남았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