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함이 곧 습관이 되는 거지.
남편이 요즘 유튜브 놀이에 빠졌다. 게임을 하던 도중 갑자기 게임 유튜버가 되겠다고 한다.
'그래, 하고 싶으면 해 봐'라며 코웃음을 쳤더니 당장 연습을 하겠단다. 그리고 그 날 이후, 게임하는 방에서 중얼중얼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유하~ 안~녕하세요! 오늘은 좀 늦었죠? 퇴근이 좀 늦어졌어요~"
"아, 와이프요? 와이프는 지금 자는 거 같아요. 그래서 작게 말해야 합니다~"
"와이프가 뭐라고 안하냐구여? 음.. 저희 와이프도 게임을 좋아해서요~ 그런데 많이 하면 혼나요~!"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산적 같은 외모로 중얼거리며 혼자만의 놀이에 빠져있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검둥이와 함께한 아침 산책 중의 대화.
남편 : 아, 어제 유튜브 놀이 안 했다! 에이~
나나 : 했잖아 잠깐. "유하! 오늘 좀 늦었네요~ 퇴근이 늦었습니다~"라고.
남편 : 아 맞네, 했네? 근데 그렇게 잠깐 하고 못했어. 너 자는 거 같아서~
나나 : 그렇게라도 했으니까 한 거지 뭐. 그럼 됐어~ 하루에 1분이라도 하면 한 거야~ 그렇게 매일 하면 돼.
남편 : 그렇게 매일 하면 뭐가 되는데?
나나 : 습관.
남편 : 아~~!... 근데 그거 습관 들여서 뭐해? 유튜브 안 할 건데..
나나 : 유튜브를 하지 않아도 언젠가 갑자기 유튜브를 해야 할 순간에 쉽게 나오겠지 자연스럽게~
남편 : 안 할 건데...?
나나 : ....아니 뭐 꼭 그 상황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습관을 들이는 태도에 대해 푹 빠져있는 요즘이었다. 지금껏 지니고 있던 당연스러운 습관 말고, 색다른 습관을 덧입히는 것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었다. 어젯밤 일기장에 적어 내려 간 글이 떠올라 남편에게도 한 수 으름장을 놓았나 보다. 어제의 내 일기에는 게으름으로 실행을 미뤄대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과 반성이 난무했다. 아주 작은 계획조차도 실행하지 못한 이유를 찾고 있었다. 매일 반복하면 그게 습관이 되는 건데, 그리 간단한 행동이 왜 쉽사리 되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이미 습관으로 자리 잡아 매일 반복하고 있는 '새로 들어온 습관'과 비교를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속하는 힘'의 부족이었다. 지속해야 할 만한 강한 이유나 동기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나에겐 2019년부터 생긴 새로운 습관이 있다. 산책이다. 이전에는 아주 가끔, 그저 걷고 싶을 때 동네 골목길 어귀를 걷거나 산동네를 휘이 한 바퀴 돌곤 했다. 문득 떠오를 때 했던, 계획적이지 않은 행위였다. 그러나 2019년, 나는 검둥이를 만났고 검둥이로 인해 매일 한 번씩 산책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힘이 들 때도 있었다. 몸이 좋지 않거나, 유난히 쉬고 싶은 갈망이 가득 한 날. 그런 날은 검둥이의 산책을 하루 정도 넘기고 싶었다. 그러나 검둥이는 하루 종일 그 한순간을 기다렸을 거다. 집 밖으로 나서는 그 한 번의 시간이 검둥이에겐 하루 중 가장 신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무거운 몸도 어떻게든 이끌고 나서야 했다. 그렇게 하루에 한 번의 산책이 당연스러워졌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 산책의 횟수를 늘렸다. 하루에 2번. 그러려면 나는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했다. '한 번만 나가도 되는 거야.'라고 타협했다면 나는 결코 잠자는 시간을 조정하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한 번의 산책이 숨 쉬듯 당연스러워지니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횟수를 늘려 하루에 2번의 산책을 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검둥이가 실내에서 배변을 하지 않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실외 배변견'이 된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검둥이의 '실외 배변'을 유지해주고 싶었다. 서로에게 좋은 습관이었다. 나는 환경에 좋지 않은 배변패드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도 됨이 좋았고 검둥이에겐 본능적으로 더 좋은 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루에 단 두 번만 배변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루 3번의 산책이 되었고, 현재는 6시간 주기로 4번의 산책을 하고 있다.
검둥이와의 산책은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명확한 이유와 동기가 있었다. 무엇보다 '명확함'은 귀찮거나 게을러지는 내 몸을 순식간에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어려운 일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이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습관은 나에게 이미 일상이 되었다.
나의 일기장에 적혀있는, 실행하지 못한 습관들은 명확한 동기가 없었다. 원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했다. 더 강력한 이유를 찾아내거나 없으면 만들어야 했다. 실행력 부족으로만 치부하고 나 자신을 탓하며 괴로워하던 마음을 버렸다. 다시 명확한 이유를 찾아 한 걸음씩 천천히 습관을 들이기로 했다. 검둥이와의 산책처럼 점차적으로 완성시켜 나가면 언젠가는 완벽히 흡수가 되어 일상의 한 부분이 되리라 믿고 있다.
오늘의 어려운 1분이 일주일 후엔 조금 덜 어려운 1분이 될 것이고, 한 달 후엔 어렵지 않은 1분이 될 것이고, 언젠가는 숨 쉬듯 자연스러워 안 하면 안 되는 것이 될 테니까.
-2020년, 봄에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