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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C Feb 07. 2016

집밥 열풍, 대한민국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생각

[시작 전 당부의 글] 우선,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개인적인 생각과 관점을 중심으로 작성되었음을 이해하시고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집밥 열풍, 대한민국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생각


어느 순간부터 대한민국 대부분의 국민들은 요리 자체에 대한 관심과 그 요리를 하는 사람들,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것에 대해서 열광하기 시작되었다. 2015년부터 지상파를 비롯한 케이블 방송들에서도 셰프들이 화려하고 시각만으로도 식감을 자극하는 요리들을 화려한 퍼포먼스와 입담을 곁들여 만드는 프로그램들을 편성하고 있고, 전국 또는 세계의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소개하는 프로그램들도 역시 방영하고 있다. 사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방송들은  어제오늘에서 막 생겨나고 인기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저자의 어린 시절 기준으로도, 그러니까 약  90년대쯤에도 전국의 맛있는 집들과 지방의 향토음식들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들은 이미 방영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K방송사의 6시 내 고향, A방송사의 O원정 등의 이름(앞의 프로그램 이름들은 다르게 표시했을 수도 있음을 양지 부탁드립니다)으로 프로그램들이 그것들이다.


최근에는 단순히 전국의 맛집들을 소개하고 찾아다니는 프로그램들이 아닌, 집에서 쉽게 요리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유명 셰프들과 요리연구가들이 방송에서 레시피를 공개하고 만들면서 방청객들과 나누어 먹는 형태의 방송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시청자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한 방송들 중에서도 가장 영향이 있었고, 소위 말하는 "집밥"이라는 요리들을 유행하게 한 프로그램은 아마도 M사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T사의 "집밥 백 선생" 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언급한 방송 프로그램들에서는 요리연구가이자 성공한 음식 프랜차이즈 대표인 백종원 씨가 출연한 것들이다. 실제로 백종원 씨가 운영하고 있는 음식점들은 가격이 싸면서도 일반적인 서민들이 소주 한 잔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요리메뉴들을 주요 제품으로 하고 있다. 사실, 그 맛의 퀄리티를 따지자면 미식가들에게는 그저 그런 평가를 받던가 아니면 호평을 받지는 못할 것들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종원 씨가 운영하는 가게들이 운영하는 음식점들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거론되면서 찾아가게 되는 이유는 편안함 때문일 것이다. 백종원 씨가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음식적 특성들과 백종원 씨 개인적인 성격과 공감능력이 보다 시너지를 가지게 했음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TvN "집밥 백선생" 홈페이지


백종원 씨가 출연한 방송들을 시작으로 하여 하나의 큰 사회적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이 있다. 그것은 아마 "집밥"이라는 단어로 대표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강레오 쉐프와 최현석 쉐프, 이연복 쉐프 등의 일류라 말하는 또는 소위 잘 나간다 하는 전문 요리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사실, 앞의 셰프들이 유행할 당시에는 잘 생기고 외국에서 전문적으로 요리를 공부했다는 유학파 이미지, 특유의 입담 등으로, 소위 말하는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었다. 하지만 백종원 씨의 본격적인 방송 프로그램의 등장으로 '요섹남'이라는 단어를 '집밥'이라는 단어가 거의 완벽하게 커버하고 있다.


그렇다면 '집밥'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집밥, "집에서 먹는 밥" 또는 "집에서 먹었던 밥"을 이르는 일종의 줄임말이다. 없던 것이 생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집에서 먹는 밥이 집밥인 것이다. 백종원 씨도 방송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었던 음식들도 기본concept이 집에서 또는 혼자 사는 자취방에서 쉽고도 맛있게 해먹을 수 있는 일상 요리들에 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들, 특히 젊은 층들에게는 이 "집밥"이 집에서 먹는 밥의 의미만을 가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집밥"을 왜? 집에서 먹지 않고 밖에서 먹는 "집밥"을 찾는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사실, 대한민국의 젊은 층, 특히 청년이라 불리는 국민들에게 "집밥"이 주는 의미는 단순한 음식의 의미만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집밥을 외부에서 찾는 현상 자체가 이를  뒷받침할 것이다. 이 "집밥 현상"은 대한민국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정서상의 문제가 심리적 화학작용을 일으켜 파생되고 부각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현주 기자의 기사 '우리가 원한 건 정말 집밥이었을까?(세계일보, 2015년 12월 27일 자)'에서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열광하는 집밥은 그 먹어봤던 음식의 맛과  선호도보다는 "그리움 등의 정서"가 주된 원인인 것 같다고 하고 있다. 이 부분은 해당 기사의 설문조사를 보면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본 고의 필자 또한 김현주 기자의 고에서의 주장에 동의를 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이 "집밥 현상"을 바라보고 있다.


출처: NEWSIS 2016년 2월 4일, "가족형태의 구성 비교"
출처: http://blog.naver.com/jjongdae0823/220522211441

상기 두 통계들은 "가족형태의 구성 비교"와 "괜찮은 일자리 공급과 수요"를 보여주고  있다. 해당 자료들을 기반으로 짧게 몇 마디의 단어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결론은 청년들이 어렵고 힘들다 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게다가 취업을 준비하면서 청년들에게 호의적이지도 꿈을 가지고 살아갈 수도 없게 하는 사회적 문제와 현실 속에서  나 홀로 살아가는 1인 가구들도 상당히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이 결부되면서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결핍되고 있음이, "집밥"이라는 단어에 함축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로 열광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결국은 지금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나 홀로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집밥"이란 모락모락 피어나던 흰 쌀밥과 구수한  된장찌개처럼 그리움으로 피어나는 그리움의 정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 더 생각해보고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집밥"이 그리워서 부모님과 함께 하고 결핍된 정서를 메우면서 있고  싶어할까? 라는 것이다. 필자의 문장력이 아주 탁월하지는 않아 앞의 문장이 독자들에게 의도한 바 대로 명확하게 전달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간단히 말하면, 부모님과 함께 하고 싶은 정서로 회귀하느냐는 것이다. 사실은 100%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부모님들과 함께 사는 청년들 대부분이 부모님들과 함께 집밥을 먹으며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채우지 못하는 정서적 심리적 결핍을 결국은 외부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하나의 예로, 부모님에게는 또래의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온다고 하고 외부에서 집밥을 함께 또래들과 찾아다니는 현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왜?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필자는 2015년 한 해를 강타한 대한민국 청년들의 키워드였던 "수저 계급론"을 언급하고자 한다.


출처: 한국경제TV 2015년 11월 2일, "20억 이상? 수저 계급론 신조어 등장"

수저 계급론은 대한민국에는 헌법에 명시되어있지는 않지만 암묵적이면서도 공공연하게 존재하는 경제적 사회적 신분상의 계급이 있다는 것을 말하며,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우회적이면서도 직접적으로 꼬집는 신조어이다. 사실, 수저 계급론이라는 것은 과거 유럽 사회상으로부터 기인된 것이다. 과거 유럽에서는 귀족계층들은 주로 부와 사회적 신분의 표현으로 고가의 은으로 된 식기류를 사용했는데, 과거 유럽 상류층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유모의 손에서 보육되고 키워지는 과정에서 이유식을 먹을 때 집안에 모든 식기류가 은으로 되어 있어 은수저로 이유식을 먹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은수저로 이유식을 먹는 아이, 은수저를 물으며 태어난  아이라는 말은 태어날 때부터 높은 신분을 부여받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을 의미했다고 한다. 이러한 유럽에서 사용되던 사회상을 빗댄 표현이 대한민국의 사회상에 빗대어지면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헌법상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면서 공화제를 시행하는 나라임에도 현 대한민국의 실태는 부와 사회적 지위의 대물림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면서, 힘이 없고 어려운 청년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을 마치 비아냥 거리듯이,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탓 보다는 사회적인 문제로 이유를 돌리며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YTN 2016년 1월 31일 자 "'금수저 흙수저'사실로... 학력, 직업 대물림 고착화"라는 뉴스 기사 내용을 보면,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수준에 따라 자식들의 경제적 사회적 수준도 대물림이 된다고 하고 있다. 해당 뉴스 기사는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를 인용하여 말을 하고 있기에 보다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현재의 지독한 실업률, 열정 페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영세기업 근로자의 임금/복리후생의 격차 등은 대한민국의 청년들을 아프게 하고, 너무도 아픔이 만연하고 그 고통이 너무도 오래 지속이 되다 보니 울 수 있는 힘도 분노할 수 있는 힘도 없어 속으로 신음만 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들은 자신들의 노력 여하에도 일정 부분 달려있겠지만,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자신이 노력보다는 사회구조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렇지만 공공연하게 존재하는 수저 계급론에 의해서 비롯되었다고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생각하고 있다. 사실 그렇다. 이러한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은 일부만의 생각도 아니며, 단순하게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의 병폐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상기 문단에서 언급한 수저 계급론의 문제들은 다시금 "집밥 현상"과 함께 사회에서 또 청년들의 정서와 심리적인 상황에서 화학 물리적인 결합을 하게 된다. 그 결과로 대한민국 청년들이 그리는 "집밥"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찾게 되는 것이 아닌, 동기 또래들과 함께 아픔을 공유하면서 자신들만의 공간을 찾게 되는 것이고, 그러한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사회로 나오기 이전 어릴 적의 기억 속 부모님의 따뜻한 품 속에서 느끼던 "집밥"을 찾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부모님은 대한민국의 아파하는 청년들이 지금 아파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인자들로, 즉 나를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게 했으며, 지금의 사회구조를 이렇게 만든 기성세대의 일원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청년들의 "집밥"은 집에서 찾을 수 없는 구조가 되어버리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을 사로잡은 키워드이자 열광하게 한 "집밥 현상"은 우리가 단순히 포근한 정서를 담은 그리운 음식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찾는 현상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그 저변에 너무도 무거운 대한민국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이 깔려있다.


2016년 2월 7일, written by 차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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