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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C Sep 06. 2015

2014년 여름, 예천 용문사[#3]

예천 용문사에서 만난 사람

"3일 차 되는 날, 새로운 동갑내기 처사님."


"처사님~."

"네, 팀장님."

"오늘 오후쯤 되어서 2박 3일 동안 옆방에 새로운 처사님이 오실 거예요."

"아, 그래요?"

"그냥 알고 계시라고 말씀드려요."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현충일이 지나고 금요일 이었다. 요 삼일 동안 예천 용문사에 와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지내오다가 새로운 사람이 온다는 말을 듣고 살짝 기대가 되었다. 더구나 아마도 동갑내기 남자인 것 같다는 소리에 이 곳, 예천 용문사에서 있는  몇일은 말벗을 하며 지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곳은 아침 5시쯤이면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산에 있는 새들이 먼저 아침이 왔음을 싫지 않은 요란함으로 알리곤 한다. 그래서 한 30분 간은 잠자리에서 눈을 말똥말똥 뜬 채로 약간의 게으름을 피워보다가 자리를 정리하고 씻고 6시면 주법당으로 향한다.


하루의 일과는 이러했다. 주법당으로 항해서 동선상 처음으로 마주하는 두 개의 불탑을 향해 인사를 하고 주법당인 보광명전 옆의 약수를 한 사발을 시원하게 마신다. 참! 이곳의 약수는 안 마셔본 사람은 모른다. 그 시원함과 상쾌함이란 이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합장을 하면서 주법당에 들어서서 비로자나 부처님을 비롯한 삼존불님께 인사를 드리고 잠시 5~20분 정도 어제의 생각과 오늘의 마음다짐을 고백하고 나온다. 참고로 나는 법당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어 의식 등은 순수히 내가 아는 선에서 정성을 들여서 했다. 소위 엉터리라고 해도 난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바로 윗 층에 있는 천수관세음보살님이 계신 곳으로 향해 인사를 드리고, 그 위층으로 올라 산신각에서 나의 바람을 기도하고 잘못을 빌었다. 이때 산신각에 올라 매일 어김없이 드렸던 말은 다음과 같다.


보광명전 옆에 위치한 약수터이다. 필자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보리수 열매이다. 약수 한 사발과 보리수 열매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약수터 옆에 있는 계차스님의 모습. 어린 동자가 계차스님의 배를 만지고 있듯 배를 만지면 돈이 들어온다는 말이 있다.


'모든 지금의 결과에는 제 생각과 행동의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누구를 탓하지도 않겠습니다. 제가 한 만큼만 제가 노력한 만큼만 받게 해주십시오. 물론 이것도 큰 도움을 청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그에 따른 노력과 감사함으로 살아가겠습니다. 합당한 결과와 기회를 볼 수 있게만 해주십시오. 저는 그것이면 됩니다. 저는 그것이면 됩니다.'


그리고 다른 법당들을 다 돌고 나면 천불전에서 가만히 1~2시간 정도 명상을 하고 머리와 마음과 몸에 어떠한 사념도 없어진  듯하면 사뿐히 거처를 하고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도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공양을 하고 나니 새로 온 처사님이 있었다. 팀장님의 소개로 서로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동갑이라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새로 온 동갑내기 처사님은 인사를 마치고 곧 짐을 풀러 갔다.


"마음이 외로운 사람."


점심식사를 하고서 잠시 대청마루에 걸터 앉아 서로 소개를 나누었다.


나: "어디서 오셨어요?"

처사: "저는 경북 봉화에서 왔습니다."

나: "아, 여기 경상도 분이시네요."

처사: "처사님은 어디서 오셨어요?"

나: "저는 경기도 김포에서 왔습니다."

처사: "아, 김포요. 멀리서 오셨네요."

나: "동갑이라고 하던데 81년생이신가요? 저는 81년생입니다."

처사: "저도 그래요. 여기는 오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나: "저는 지금 3일 차이고요. 앞으로 10일 정도 더 있으려고 생각합니다."

처사: "그렇게 길게요? 혹시 실례가 안되시면 뭐 하시는 분이세요?"

나: "현재 공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처사님은요?"

처사: "아, 그러시군요. 저는 경북에서 7급 공무원 하고 있습니다."

나: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종종 오시나요?"

처사: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요즘 그냥 공허하고 외로운 마음이 계속 들어서 그게 힘들어서 이런 곳에 오면 그런 마음을 조금 가라앉힐 수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아~, 마음이 공허하고 외롭다. 마음이 외로운 사람. 동갑내기 처사님과는 그 이후로 잠시 동안 계속 이야기를 했고, 본인의 근원적인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그 처사님이 근래에 이별을 겪었던가 무슨 개인적이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러한 이벤트 등은 없었다고 한다. 그냥 무엇을 해도 마음이 외롭다고 그게 견딜 수 없어 마음을 다스리는 책 등을 도서관에서 주말이면 계속 보고 한다고. 그런데도 그 근본적인 외로움을 떨칠 수가 없다고 했다.


첫 이야기를 마치고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서 생활을 하고 본인들의 시간에 맞추어서 일과를 보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시에 대한 이야기."


또 하루가 지나고 토요일이 왔다. 나는 오후 점심공양을 하고서 마루에 걸터앉아 용혜원 시인의 시집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메모지에 여러 가지 단상들을 중간중간 적기도 했다. 작은 새들은 숙소 앞을 총총 거리며 뛰어놀고 작은 곤충들을 잡아먹기도 하며 있다. 책을 읽는 내내 큰 벌이 붕붕 거리며 근처를 맴돌았지만 무섭지도 거슬리지도 않았다. 마치 내가 무슨 일을 하나 궁금해서 살펴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옆방의 동갑내기 처사님이 산책을 마치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나: "산책하고 오시나 봐요?"

처사: "네, 그냥 방에만 있기가 조금 그래서요. 책 보시나 봐요?"

나: "네, 시집을 좀 읽고 있어요."

처사: "시집이요?"


동갑내기 처사는 시집을 보고 있다는 말에 상당히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곁으로 왔다. 원래 시집을 좋아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처음부터 좋아하던 것은 아니었는데 몇 년 전부터 시를 읽고 쓰면 뭔가 마음의 헛헛함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서 지금까지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무슨 시집을 보고 있냐며 물어보았다. 그리고 시집을 보면 어떤 것이 좋으냐고, 또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가 있느냐고 물어왔다. 그러면서 시를 읽으면 나도 좀 외로움이 사라지겠느냐고도 했다.


나는 그냥 나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시를 읽으면서 나와 같은 근본적인 감정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인지와 그 감정의 공유, 그 공유를 통해서 몸 안에서의 울림 같은 것이 나를 위로해준다고. 그래서 나는 시를 읽는 것이 참 좋다고 했다. 최근에 기억이 남는 것은 아주 짧은 시이긴 하지만 마치 나의  지난날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은 글이 있다며 읇어 주었다.


용혜원 님의 '들꽃'이라는 시였다.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온 마음으로

작은 꽃들을 피웠습니다


그대의 시선이

잠시나마

머물 수 있도록


이 시를 듣고 나서 동갑내기 처사는 자신에게 추천해 줄만한 시집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최근에 나온 용혜원 님의 시집과 류시화 님의 시집을 소개해 주었다. 아마 그냥 편안하게 읽으면서 마음의 위안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처사님의 가진 외로움이라는 것이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가지고 있는 그 인간 본연의 마음이 아니겠냐고 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저녁이 내려 앉았고 곧 동갑내기 처사와는 이별할 준비를 해야 했다.


"마음이 외로운 남자가 떠났다."


다음날은 금방 찾아왔다. 아침부터 옆방이 부산하다. 밖을 내다보니 동갑내기 처사님은 이곳에서의 짧은 2박 3일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짧지만 강렬했다. 언젠가 저 처사님을 다시 만날 날이 오겠지. 인연이라는 것이 다시 이어진다면 말이다.


예천 용문사에서 만난 동갑내기 처사님과 사진 한 장.




내 가슴에도 외로움이 피어났다.


                                                    차우준


마음이 외로운 남자가 떠났다.

그는 외로움의 무게가 너무 크다고 했다.

나는 그 남자에게 시를 선물해 주었다.

그 남자는 나에게 시를 써보겠다며 떠났다.

마음이 외로운 남자가 떠났다.

그 남자가 떠나간 자리에는 외로움이 피어났다.

내 가슴에도 외로움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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