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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C May 03. 2017

저녁식사, 그리고 옛 거리

청년들의 삶, 일자리, 사회문제

직장에서의 하루 일과(2017년 5월 2일)를 마치고 퇴근을 하는 길, 재원이와 최근에 종종 저녁식사를 하던 작전동의 고깃집 ‘마포갈매기’가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재원이에게 전화를 걸었고, 오후 8시 30분쯤 그 식당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오후 8시 23분


   버스를 타고 막상 도착을 하고 나니 조금 이른 시각이었다. 때마침 재원이에게 전화가 왔는데 회사일이 조금 늦어서 10분 정도 늦는다고 한다. 식당에서 멀뚱멀뚱 기다릴 바에는 20~30년 동안 가보지 않았던 그 길을 걸어보자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의 발길은 화전국민학교로 향했다. 왕복 2차선 도로와 그 주변으로 오밀조밀한 옛 기억 속 건물들이 나이를 들어가고 있었다. 빛깔이 어둠이 내려앉듯 흐릿해지고 탁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릴 적 내 기억을 되살리기에는 충분했다. 시간을 여행하는 것 같았다. 마치 타임워프를 하는 것처럼 현기증이 밀려오는 장소도 있었다.


   ‘여기에 예전에는 철물점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문방구 겸 슈퍼마켓이 있었고, 또 여기에는 내 친구 어머니가 하던 노래방이었는데, ……’


   지금은 가게의 상호도 사람도 모두가 변해있었다. 하물며 국민학교 역시도 리모델링을 하고 증축을 했는지 내 기억 속의 학교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오후 8시 35분

   휴대폰에 전화가 왔다는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내 친구 재원이다.


   “어, 재원아.

   “우준아, 너 여기 없네. 어디야?”

   “난 네가 조금 늦는다기에 국민학교에 왔지”

   “국민학교?”

   “어~”

   “거기 멀어? 얼마나 멀리 간 거야?”

   “아니, 멀지 않아. 너 도착한 거지? 그럼 5분만 기다려 금방 갈게.


   나는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서둘러 약속 장소인 고깃집으로 향했다.


   재원이와 만나서 음식을 시켜놓고 소주와 맥주를 섞어 목을 축였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 전에 보기는 했지만 그동안 서로에게 일어났던 여러 일상에서의 일들을 이야기하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최근에 국가적인 화두는 대통령 선거인지라 우리도 그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물론 재원이와 나는 (서로 정치적, 종교적인 이슈로 생각하는 바가 달라) 언쟁이 생길 가능성이 있는 디테일들(가량 누구를 찍을 것이냐 등)은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대통령) 후보들이 토론회 등에서 이야기 한 내용이 왜 다루어진 것일까 라는 고민과 이야기는 우리들의 주요 이야기 소재였다. 그러던 중 최근의 일자리 문제와 노동의 문제, 삶의 질 문제, 행복에 대한 이야기, 결혼 등에 대하여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서로 대한민국이라는 격전지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청년들이다. 물론 기득권도 아니고 금수저도 아니다. 하루하루를 고민하고 살아가야 하는 통상의 청년들이다. 그래도 나와 재원이는 “그나마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지도 몰라”라며 우리보다 어려움 속에서 사는 청년들을 걱정하고 고민한다. 그러다 일명 ‘헬조선’을 죽음으로 탈출하는 청년들의 이야기에서는 서로 아주 살며시 눈물을 훔쳤다.


   나는 뜬금없이 식당에 도착하기 전 국민학교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재원아, 정말 많이 바뀌었더라. 도로와 건물들은 그래도 크게 바뀌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가게들은 모두 없어지고 이제는 죄다 술집과 음식점 등으로 바뀌어 먹자골목이 되었더라.”

   “아무래도 그렇지 시간이 벌써 얼마나 지났냐?”

   “하기야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아까 우리가 이야기하던 사회문제들과 함께 연관 지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먹자골목으로만 바뀌었다는 것이야.”

   “요즘은 그런 거 말고는 장사가 안 되잖아.”

   “그렇기야 하지. 그런데 재원아. 내가 박사학위까지 공학만 전공한 공돌이지만, 지금은 사회·경제·경영 분야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 아닌 연구들을 하고 있는 거 알지?”

   “어, 알지. 너 최근에는 그런 쪽 논문과 책도 썼다고 했잖아.”

   “응. 내가 요즘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일자리와 사회정의, 그리고 행복이야. 그것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다 보니 사회·경제·경영 분야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것이고. 그런데 그런 나의 관점에서 나의 리서치 데이터에 기반해서 바라보니까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게 뭔데?”

   “흔히 창업을 구분할 때 학계 쪽에서는 생계형 창업과 기회형 창업이라는 것으로 구분을 통상적으로 하더라고. 그런데 기회형 창업은 국가 경쟁력 확보 차원이나 산업구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해. 기회형 창업을 쉽게 이야기하면 기술기업들이나 벤처기업들을 말하거든.”

   “그런 기업들이라면 당연히 도움이 되겠네.”

   “그렇지.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더라고 말이야. 그런데 생계형 창업은 말 그대로 생계의 문제로 창업을 하게 된 것을 말해. 쉽게 이야기하면 숙박업, 요식업, 여행업, 도·소매업 등이지.”

   “정말 그렇겠네. 말 그대로 그러한 창업은 생계가 문제가 되어서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별다른 기술이 없고 소규모 자본만 있어도 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아까 내가 국민학교를 다녀오면서 길목에 있었던 가게들이 대부분 술집과 음식점이라고 이야기했지. 그게 문제인 것 같아. 이전에는 철물점도 있고, 문방구도 있고, 화원도 있고, 여러 생필품들을 살 수 있는 잡화점들도 있고, 서점도 있고 했는데……. 지금은 다 생계형 창업으로 분류되는 그런 가게들 밖에 없더라고.”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을 잘 안 해봤는데 우준이 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정말 그러네.”

   “나도 이 동네에 자주 오거나 아니면 여기에 계속 살았다면 작은 변화들의 연속이었을 테니까 잘 몰랐을 거야. 하지만 벌써 이 길을 온 지 최소 20여 년이 지나고 온 거잖아. 그러니 눈에 확연히 들어오더라고. 이게 너무 비약적인 해석일 수도 있지만, 나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국가적인 문제가 이 작은 골목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생각해. 솔직히 문방구, 슈퍼마켓, 철물점, 서점 같은 곳들은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큰 마트들에 비해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잖아. 사실 그러한 곳들은 대량으로 물건을 떼 오고 대기업이다 보니 유리한 조건으로 제품들을 납품받기도 하니까. 그래서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점령을 문제 삼는 것이고. 하지만 너도 나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싸게 좋은 상품을 살 수 있는 곳이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대형 마트들이니까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아무래도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문제는 거기서부터 발생하는 것 같아. 사람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지. 당시에는 철물점에를 가든, 슈퍼마켓에 가든, 문방구에 가든, 돈을 들고 가서 사려다가 내가 들고 간 돈이 부족하면 주인(아저씨나 아줌마)이 동네 꼬마니까 재량으로 싸게 주기도 하고 외상으로 구입하기도 하고 그랬잖아.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모습들이 사라진 거지. 그때는 동네 장사하는 사람들이나 우리나 모두 동네 사람들이었잖아.”

   “맞아. 그때는 그랬지. 나도 우리 동네에 있던 빵집에 종종 가고는 했는데 내 친구의 부모님이 하시는 곳이었거든.”

   “지금에서야 어릴 적 기억이 그립게 느껴지네. 재원아 그렇지?”

   “그러게 우리도 이제는 40이 다되어가지 않냐?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지.”

   “그래. 그런 것 같네. 여하튼 지금의 이 동네 아이들은 20~30년 이전에 내가 아이일 때의 환경과는 확연히 다른 것 같아. 이 아이들은 사람과의 관계 맺음이라는 것이 우리보다는 적을 수밖에 없고, 동네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물론 다른 것들이 있겠지만 지금의 이 환경에서는 먹자골목이었던 동네, 이 정도로만 기억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뭐, 아무래도…….”

   “그다음은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대부분이 생계형 창업에 의해 가게를 연 술집, 음식점들이 대다수라는 것인데. 얼마나 우리들 삶이 또 생활이 각박해졌는지를 느끼게 되는 것 같아. 일자리가 부족하고 별다른 대안들이 없으니 대부분 포차(포장마차 형식의 주점)와 치킨집, 고깃집, 이러한 가게들만 개업을 하는 것이지. 참 답답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어. 너와 나의 생활도 그렇고 말이야.”

   “나도 그래.”


   재원이와 나는 이렇게 여러 이야기들을 여러 시간 동안 나누었고, 때로는 눈물을 훔치고, 때로는 웃음꽃을 피우기도 하고, 때로는 말을 멈추고 회상에 빠져들기도 했다. 새삼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리고 세상의 변화에 적응을 하기가 버겁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도 가혹한 신의 선물 또는 형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황석영의 ‘밥도둑’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그 책의 서문에는 이러한 글이 적혀 있다.


   “대수롭지 않은 일 같지만 어떤 음식을 누구와 함께하는 것은 인생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온몸으로 사무치는 말이다.


   친구와 옛 추억을 꺼내놓으며 갈매기살 고기에 소주와 맥주를 섞어 한 잔, 두 잔을 하는 이러한 시간이 또 하나의 추억이 되는 일. 이러한 일이 내 인생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는 만큼 세상이 더는 많이 각박해지지 않기를 소망해본다.




P.S. 2017년 5월 3일 '부처님 오신 날', 자애로움이 가득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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