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하이트 프로젝트 #18~20

by 작가C

#18

다시 재원이가 잠적한지 보름이 훌쩍 지났다. 나도 인간인지라 이런 재원이를 생각하면 화가 나고 욕도 하고 싶어진다. 당장이라도 학사지원과에 가서 녀석에게 불이익을 주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어찌되었든 내 책임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참, 연구비 문제는 이제 곧 해결이 될 것이다. 봐하이트 프로젝트의 중단이 두 달은 넘기지 않게 된 셈이다. 정말 다행인 상황이다.

봐하이트 프로젝트를 다시 진행하는 데 필요한 연구비는 한 노년의 사업가가 지원해주기로 했다. 그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남이 박사의 덕이다. 이남이 박사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 노년의 사업가에게 연락을 취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연구비를 지원받아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남이 박사는 현재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양자생물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나와 그의 인연은 5년 전 캐나다에서 개최되었던 국제 나노기술 및 환경공학 학술대회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같은 세션에 참가하고 있었는데, 당시 내가 이남이 박사의 연구발표에 관심이 있어서 질문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게 되었다.

그런 이남이 박사와 며칠 전 전화통화를 주고받다가 현재의 프로젝트 연구비 문제를 털어놓게 되었고, 그는 도움을 줄 사람을 알고 있다며 소개를 노년의 사업가를 소개해 주었다. 다행히 내가 이남이 박사의 소개를 받아 그에게 연락을 취했을 때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어떠한 조건도 없이 순순히 연구비를 지원해주는 일은 요즘 같은 시기에 흔치 않다. 이남이 박사에게 고마울 따름이고, 직접 연구비를 지원해주기로 한 노년의 사업가에게는 더욱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곧 연구비 입금이 이루어지면 봐하이트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대니얼 킴 박사에게 이 희소식을 알리면 참 기뻐할 것이다. 신재원, 이 녀석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재원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19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첫눈이다. 이제 겨우 11월 초순인데 첫눈이 내리고 있다. 예년보다 보름 정도는 빨리 내리는 것 같다.

창밖에 내리는 눈은 무겁다. 내 마음의 무게만큼이나 말이다. 그래서일까? 첫눈이 반갑게 느껴지지가 않다. 희고 큰 솜사탕 조각 같은 눈송이가 아닌 납빛을 잔뜩 머금은 진눈깨비, 이 눈이 괜히 불편한 감정을 가지도록 한다. 오늘은 왜인지 하루가 무겁고 칙칙한 느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똑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택배 왔습니다.”라는 짤막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바로 사무실 문을 열고서 주변을 훑어봤다. 문 바로 옆에는 커다란 상자가 놓여 있었고, 택배기사는 금세 사라지고 없었다. ‘누가 보내온 택배일까?’ 이 생각이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을 휘젓는다.

상자가 제법 무거웠다.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기에 이리도 무거운 것이지?’라는 혼잣말을 투덜거리듯 속삭이며, 그 상자를 사무실 안으로 들여다 놓았다. 박스 윗부분에 송장이 붙어 있다. 보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신재원이다. 그리고 주소지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으로 표기되어 있다. 나는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일단 대니얼 킴 박사에게 전화를 해서 사무실로 건너오라고 해야겠다.


#20

“교수님, 재원이에게서 택배가 왔다고요?”

“그렇다네. 녀석 연락도 되지 않고 실험실에 나오지도 않으면서 무슨 택배를 보낸 건지…….”

“혹시 이 상자인가요?”

“그렇다네. 자네가 오면 같이 뜯어보려고 여기에다 놔두었다네.”

“제법 상자가 크고 무겁네요.”

“그러게 말이야. 도대체 무엇을 보내온 것인지. 킴 박사, 여기 커터칼 있네.”

“네.”

대니얼 킴 박사는 내가 건넨 커터칼을 이용하여 박스를 열기 시작했다. 박스 안에는 한 통의 편지봉투와 정육점이나 수산시장에서 쓸법한 스티로폼 박스가 들어 있었다. 나는 일단 편지를 꺼내 들었다. 편지봉투 안에는 몇 개의 실험결과들과 자필의 편지가 있었다.

“교수님, 우선 편지부터 읽어보시죠.”

“알았네.”


교수님 그리고 대니얼 킴 박사님.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더 이상 실험실에 돌아가 봐하이트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만일, 용서가 어려우시다면 이해라도 구하겠습니다.

저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봐하이트 프로젝트가 어떠한 성과를 가질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그리고 그 성과로 인한 파급효과는 인류의 가치관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과 대니얼 킴 박사님 없이 저 혼자 수행한 몇몇 실험을 통해서 말입니다.

저는 제 몸에서 피를 채혈하여 테스트를 해보았습니다. 저와의 연결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미 예전에 돌아가신 저의 친인척들 시체 일부를 은밀하게 채취하였고, 그것들을 채혈한 제 피와 함께 실험을 했었습니다. 그 결과는 매우 인상적이었고,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해당 결과는 이 편지와 함께 보내오니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저와 이미 죽은 친인척들의 연결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공유되고 있다는 것을 제한적이었지만 입증한 셈입니다. 제가 자주 경험하는 데자뷰와 예지몽 등의 원인이 바로 그 연결성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습니다. 너무 흥분되었고, 너무 놀라웠습니다. 그 결과를 교수님이나 대니얼 킴 박사님께 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분명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실험이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과 대니얼 킴 박사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연구비를 확보하여 봐하이트 프로젝트를 다시 진행하더라도, 제가 실험을 이어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샘플이 너무 중요한데, 그것을 교수님과 대니얼 킴 박사님은 감당하시기 분명 어려우리라 판단했습니다.

저는 택배를 통해서 교수님과 대니얼 킴 박사님께 샘플을 보냅니다. 이 샘플을 사용하여 실험을 진행하신다면, 분명 봐하이트 프로젝트를 통해서 얻고자 했던 결과를 얻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반드시 봐하이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18년 11월 8일

신재원 올림.


나와 대니얼 킴 박사는 재원이가 보내온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잠시 동안 넋이 나간 사람들처럼 멍하니 있었다. 박스 안의 스티로폼 박스를 나와 대니얼 킴 박사 모두 쉽게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직감했던 것 같다. 그 안에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잠시 후 대니얼 킴 박사가 말문을 열었다.

“이거 열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어, 어. 열어봐야지.”

“선뜻 내키지가 않네요.”

“나도 마찬가지라네. 나는 편지를 읽고서 소름까지 돋았다네.”

“어떻게 열까요? 아니면 이대로 놔둘까요?”

“그래도 열어봐야지.”

“그러면 열겠습니다.”

대니얼 킴 박사는 박스 안에서 스티로폼 박스를 꺼내어 그 뚜껑을 열었다. 우리는 둘 다 순간 코를 틀어잡지 않을 수 없었다. 지독한 비린내가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나와 대니얼 킴 박사는 한 손으로 코를 틀어잡고 스티로폼 내부를 확인했다. 무슨 고깃덩어리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거 고기 같은데.”

“그러게요. 그런데 무슨 고기를 이렇게 보낸 걸까요?”

“글쎄.”

“어! 교수님!”

대니얼 킴 박사는 순간 크게 놀라며 나를 불렀다. 그리고 몇 가지 부위를 꺼내어 내게 보여줬다. 필시 그것들은 사람 몸의 일부처럼 보였다.

“교수님, TV를 보세요.”

“어?”

“지금 저 뉴스요.”

TV에서는 대구에서 4세 남아와 그 아이의 엄마가 며칠 전부터 실종되어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나와 대니얼 킴 박사는 설마, 또 설마 하면서 멍하니 TV만 바라 볼 뿐 그 어떠한 말도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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