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가 내린다. 시원하게 내리는 비가 아니다. 온 몸에 추적추적한 느낌이 드는 그다지 기분 좋지 않은 비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나는 이런 날이 좋다. 무겁게 가라앉는 것 같은 모습을 한 구름들, 칙칙하고 빛이 흐릿한 회백의 도시, 신음하는 소리들, 그리고 비릿한 냄새까지. 이 모든 것들이 이 비와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다.
어디선가 날이든 파리 한 마리는 내 곁에 놓인 토막 내어져 있는 여인의 사체 위를 맴돌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선혈의 온기를 찾아 날아든 것일까? 아니면 토막이 난 살점들에 배어 있는 그녀의 향기를 찾아 날아든 것일까?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지금 이 모든 것들이 섬뜩하지만 너무도 아름답다.
조금 더 긴 시간 그녀를 느끼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를 보내야 한다.
‘아정아, 이제는 안녕.’
#2
자명종이 울린다. 오전 8시다. 햇살이 창밖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잠시 창밖을 넋 놓고 바라본다. 아차,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오늘은 내가 주관해야 하는 촉매공학회 세미나가 있다. 집에서 연구소까지는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그러나 오전 8시 40분까지 연구소에 도착해서 세미나 준비를 해야만 한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났어야 했는데, 다소 늦어버린 것이다.
후회를 해봐야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법. 어서 서둘러야겠다.
#3
“이렇게 늦으시면 어떻게요. 다른 박사님들은 벌써 도착하셔서 박사님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으세요.”
“미안해, 우정 씨. 내가 깜빡하고 자기 전에 자명종 알람을 못 맞췄어.”
“어서 서두르세요.”
“세미나에 사용할 자료들은 저 PC에 다 옮겨놓았지?”
“네. 미리 와서 제가 다 옮겨 놓았고, 프로젝터 연결 상태도 확인했어요.”
“역시 우정 씨 밖에 없다. 고마워.”
“이제 올라가서 시작하세요. 늦었어요.”
“오케이.”
나는 바로 강단으로 올라갔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몇몇 안면이 있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휴, 이제 시작해야겠다.
“안녕하세요. 오늘 세미나 진행을 맡게 된 채정길 박사입니다. 이른 시각 이렇게 세미나에 참석해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세미나의 진행은 발표자들께서 30분 정도 발표를 하고, 이후 발표된 내용에 대하여 20분 정도 질의응답 및 토론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가급적 시간을 준수할 것이지만, 진행시간이 다소 유동적일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첫 발표 내용은 ‘이산화탄소 흡착소재로서 나노구조체 제올라이트’에 대해서입니다. 제가 발표를 하겠습니다. 그러면 시작하겠습니다. 준비된 자료화면을 봐주십시오. 이번에 저희 연구팀이 개발한 나노구조체 제올라이트는…….”
나는 발표를 그렇게 시작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내 발표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긴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학술세미나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발표자들의 발표내용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즉, 딴청을 부리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지금까지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 학술세미나에 참석하는 연구자들, 교수들은 자발적인 관심에 의해서 신청하고 참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석자들의 태도는 상반된 두 타입으로 나뉜다. 하나는 정말 자신의 관심분야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학술적 호기심을 가지고 참석하는 타입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 한 번 발표해봐. 네가 얼마나 대단한 연구를 하고 있는지 보겠어.’라는 마음가짐으로 참석하는 타입이다.
그런데 이 사회, 즉 한국 사회에는 후자의 경우가 적지 않다.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서 진행되는 세미나의 경우에는 특히 후자인 참석자들이 많다. 그래서 이러한 말도 있지 않던가. 대학의 교수들과 대화를 하면 벽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고. 그 말인 즉, 대화 상대방의 말은 듣거나 인정하지 않고 지들 말만 옳다고 우기며 주장한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교수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교수들이 그렇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연구소에 소속된 갑질, 꼰대 기질을 가진 박사들 역시 그러하다.
나 역시 그러지 않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