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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C Oct 03. 2021

사랑은 왜 판타지로 왜곡되는가.

#갯마을차차차 #결혼이야기

2021년 10월 3일 토요일


개천절 오후다. 부산 자취집에 남아 이런저런 늘상적인 것들을 하고서, 이후로 남는 시간 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를 보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모두라는 표현으로 비약은 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많은 이들은 '사랑'을 떠올림에 있어 '시작'과 그 시작을 위한 '떨림'을 생각한다. 내 알기로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를 두고 '썸'이라 말한다. 참고로 나는 사랑에 관해서는 '젬뱅이'인지라 그 트렌드나 사랑꾼들 사이에서 오가는 언어가 익숙지 않다.


시작은 중요하다. 그 누군가는 시작만 하더라도 이미 절반은 한 것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우리 다수는 시작, 그 절반에 상당한 비중을 두며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이러한 모습이 과연 옳은 것인가, 라는 개인적인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모습, 어쩌면 일종의 현상을 쉽게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플랫폼화 된 미디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판타지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사랑은 이렇게 시작되어야 아름답지 않은가'라며 자기 신념화하게 된 요인으로 보인다.


드라마나 영화, 만화, 청춘소설 등에서 다루고 있는 사랑의 대부분은 시작에 대한 설렘에 관한 것이다. 적어도 내가 접한 것들은 그러했다. 또, 최근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들 중 인기를 얻는 것들 역시 대부분 사랑의 시작을 다룬다. 이러한 탓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 주변의 어떤 이들(어쩌면 연애 분야에서 선수라 불릴만한 이들)은 "자신은 연애를 시작하기보다 그 이전까지 '썸'을 즐기는 것이 좋다"라고 말한다. 언론에 모습을 비추는 어떤 사람들의 인터뷰에서도 '썸'을 더욱 선호한다며, 그 이유를 '설렘'과 '떨림'이라고 밝힌다. 이는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기 이전 강력한 감정적 쾌락을 더욱 선호한다는 것으로 들린다. 나 개인적으로 이전에 듣던 어떤 노랫말의 표현, '인스턴트 사랑'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사랑은 사람 간의 관계의 한 형태이다. 직장에서의 관계, 군대에서의 관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등과는 사뭇 다르다. 조금 더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관심, 배려 등이 필요한 관계이다.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생각과 행동, 표현 모든 부분에 있어서 그러하다.


가슴에 포근한 봄바람이 선선히 불어오고, 그 바람에 연분홍빛으로 활짝 핀 벚꽃이 나부끼다 흩날리는 그런 날들의 연속이어야만 할 것 같은 사랑을 많은 사람들은 바란다. 이는 판타지이다. 내가 자의적으로, 또 타의적으로 나에게 심어놓은 판타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판타지를 일상처럼 느끼며 바라면, 그 판타지는 일종의 신념화되어 버린다. 판타지를 신념화한 사람들은 현실에서의 사랑, 즉 고등적 관계 맺음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실망감과 괴리감,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어떤 이들은 관계의 지속을 포기하기도 한다.


인간관계가 그렇듯 사랑도 관계의 한 형태임을 감안한다면 기준이 되는 형태가 있어서는 안 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신념화된 판타지로 자리 잡으면 더욱이 안된다. 인간의 삶에는 다양함만이 존재할 뿐, 옳고 그른 삶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 개봉작 '결혼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 영화는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가 주연하였으며, 결혼한 이후 각자의 삶의 방식 차이와 꿈에 대한 괴리 등으로 담담하게 파경의 상황을 그려냈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영화가 아닌 삶'을 보여준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파경이 사랑, 즉 관계의 끝이 아닌 다른 관계의 방식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파경 이후 자녀를 양육해가야 하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그리고 이혼소송을 진행하면서 어떠한 합의와 배려, 자기주장을 통해 파경이 끝이 아닌 다른 방식의 관계임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사랑은 시기적으로 다른 관계 설정을 요구한다. 사랑은 우리 삶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렘 가득한 사랑, 아픔으로 시작된 사랑, 사랑일까 라는 질문 가득한 사랑, 삶으로서의 사랑 등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야만 하고, 지금보다는 다채로운 모습으로 미디어에서는 사랑을 그려줄 필요가 있다.


인간의 삶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극도로 비상식적인 삶이 아니라면 말이다. 사랑도 그러하다. 나는 사랑도 삶도 각 개인들이 빚는 색(color)이라 생각한다. 색을 다룸에 있어서, 또 언급함에 있어서 그 누구도 옳다, 그르다를 말하지 않지 않는가. 자신의 취향과 선호만이 다를 뿐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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