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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Sep 15. 2022

ISTP와 ENFP의 사랑

2022년 9월 14일 수요일의 기록

  그와 내가 일을 마치고 만났을 때는 밤 10시 30분이었다. 먼저 퇴근한 그는 일이 늦게 끝난 나를 만나기 위해 1시간가량의 먼 거리를 와 주었고, 나는 그를 지하철 플랫폼으로 나가 마중했다. 우리는 같은 열차칸에서 조금은 어색한 대화를 나누다가 (그 전 날 카톡 대화로 다투었기 때문에) 5호선 화곡역에서 내렸다.


  우리는 미리 예약한 모텔로 가서 배달 앱으로 해물찜을 주문하고,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모텔로 들어오기 전부터 나에게 뭔가 할 말이 많은 눈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방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얘기하는 게 아닌가. 아니, 나는 우리가 어제 싸운 이야기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은데... 그렇지만, 그의 말을 막으면 정말 화를 낼 것 같아 잠자코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의 요점은 이거였다. 서로에 대해서 알아갔으면 좋겠다는 것. 그래서 자신의 인생사를 얘기하면서 자신이 어떤 가치관과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성적으로, 또 논리 정연하게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ISTP의 성향에서 논리와 분석을 빼놓으면 섭섭하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다 그의 입에서 어제의 이야기가 드디어 나왔다. 그는 어제 감정 과잉 상태였던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고 고백했다. 내가 몸이 안 좋다고, 힘들다고 하소연만 하고 있어서 무슨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그런데 정작 내가 그에게 원한 건 해결책이 아니었다. 단지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그저 공감하고 위로해달라는 것이었는데... 그는 마치 과부하가 걸린 컴퓨터 같았다. 아니면 버퍼링 걸린 인터넷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그는 자신이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기 힘들다고 했다.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냐고 나에게 질문했다. 아니, 감정을 일일이 어떻게 설명을 하지? 나는 답답해졌다. 그리고 그와 한동안 서먹서먹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읽었던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사례를 언급하며 그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남자가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식은 동굴 속에서 들어가는 것, 그러니까 혼자 시간을 보내는 건데, 반면에 여자가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식은 공감을 바탕으로 한 대화야.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아도 공감만 이루어지면 그걸로 여자는 만족하지."


  그러면서 나는 감정도, 이성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감정을 폭발적으로 표출하는 게 문제라며, 나이가 들수록 감정을 제어하고 이성적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다시 거기서 또 한 번의 정적이 흘렀다. 이대로 가다간 계속 대척점일 것 같았다.


  그래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감정을 폭발시키듯 표출한 것은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이번엔 인터넷 블로그에서 보았던 ISTP 남자와 ENFP 여자의 연애에 대해서 얘기했다.


  "어제 우리가 다툰 뒤로 나도 너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게 많다는 걸 느꼈어. 그래서 네 MBTI 성격인 ISTP(잇팁)에 대해서 공부했어. 그리고 내 성격인 ENFP(이하 엔프피)에 대해서도 알아봤지. 엔프피는 감정 표현이 풍부해. 그리고 감정이, 잘 삐지고 잘 풀려. 반면에 잇팁은 팩폭을 잘하고. 그러니까 서로 안 맞아 보일 수밖에. 그런데 우리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잖아. 서로 맞추려면, 다른 건 다른 것일 뿐이야. 다른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


  내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그도 얘기했다.


  "저도 다른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가 잘 삐지고 문제를 회피했던 것 때문에 제가 크게 상처를 받은 적이 있어서 그게 너무 싫게 느껴져요. 게다가 형은 여자가 아니잖아요."


  그의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해졌다. 내가 여자 같다는 건가?물론, 내가 여성적인 성향이 강한 건 인정한다. 그렇지만, 게이인 우리 대부분이 여성적 성향이 강한 남자가 아니던가. 나는 그에게 생각한 걸 그대로 얘기했다. 그리고 "내가 여자같이 안 굴면 되는 거야?잘 안 삐지고 감정을 잘 설명해주면 돼?"하고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가 귀엽게(이 상황에 귀엽게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귀여운 행동에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 그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미안해. 속 좁게 굴지 않을게. 네가 말한 대로 사소한 걸로 시간 낭비하지 않을게. 사랑해요."


  "저두요."


  우리는 그렇게 극적인 화해를 했다. 우리가 얘기하는 동안 해물찜은 어느새 식어 있었고, 시간은 새벽 1시가 넘어 있었다. 긴 대화의 끝에 그래도 우리의 관계 회복과 발전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이것도 추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식어버린 해물찜을 우리는 기분 좋게 먹었다.


- 이 일기는 우리의 사랑을 하루하루 기록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추억이 오래도록 이 매거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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