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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Sep 24. 2022

자격지심과 예민함의 늪에 빠지다

2022년 9월 21일 수요일의 기록

  수요일에 나는 근무를 하면서 카톡으로 영재 발굴단 미술영재 흙수저와 금수저를 서로 비교한 글을 그에게 보냈다. 흙수저 아이나 금수저 아이나 어린 나이에 뛰어난 미술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흙수저 아이가 국내 입시미술학원에 다니다 입시를 포기, 방황하다가 만화를 그리겠다고 결정한 반면, 금수저 아이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어린 나이에 아뜰리에를 가지고 있었고, 개인 전시회까지 열었다.


  나는 그가 이 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는 나와 얼마나 다르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글을 읽고 그는 현명한 부모냐 아니냐의 차이인 것 같다고, 흙수저 아이의 정신력이 약한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나는 글의 취지 자체가 빈부에 따른 교육환경의 차이로 인한 결과라고, 그에 더해 한국의 주입식 교육환경이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나와 전혀 생각이 달랐다. 그는 환경보다는 개인의 자질이나 능력에 따른 결과라고 보고 있었다.


  그는 과거 자신의 예고 입시 실패를 예로 들면서 자기도 처음에는 한국의 입시제도를 원망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력하지 않으면서 환경 탓을 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했다.


  정말 나와는 생각이 많이 다르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한편으로 그 의견을 내 개인적인 상황에 적용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그의 대답에 자격지심을 느낀 나는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의지가 약해서라고 생각하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큰 충격에 빠지면 걸릴 수 있다고, 다만 정신질환을 극복하는 게 정신력 차이라고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나도 어느 정도 납득하는 부분이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가 소심한 사람들이 정신질환에 잘 걸리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이다. 단어의 뉘앙스 차이 하나에도 민감한 나로서는 '소심'이라는 단어가 좋게 들리지 않았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중립적으로 '소심'이라는 단어를 썼겠지만, 나에게는 그 단어가 부정적인 어휘로 들렸다. 나는 그에게 '소심'은 대개 부정적으로 쓰이니, '섬세'라는 긍정적인 단어로 바꿔 써 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내가 부정적으로 듣는 것 같다고 했고, 자기 주변 사람들은 소심하다는 말을 듣고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내 자격지심은 더 커지기만 했다. 그가 나와 자기 주변 사람들을 비교한 것처럼 느껴졌다. 기분이 한층 나빠진 나는 마치 고슴도치처럼 그에게 가시를 잔뜩 세워 평가하듯이 말했다.


  "난 네가 생각이 편향되어 있는 것 같아."

  "어떤 면에서요?"

  "음... 숲과 나무가 있다면 숲은 보고 나무는 잘 안 보려 하는 것 같아."

  "뭐 때문에 그렇게 느낀 건데요? 형을 감성적으로 대하지 못해서인가요? 아니면 남의 말을 잘 안 들으려고 해서인가요?"

  "둘 다인 듯."

  

  그는 내가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감정이 흥분한 상태가 되어 그에 대한 평가를 이어갔다. 자존심이 센 편인 것 같다, 승부욕이 있다, 자신의 주관이 상당히 강하다, 부정적인 표현을 많이 쓴다, 공감을 잘 못한다 등 그의 마음에 비수로 꽂힐 말들을 많이도 쏟아냈다. 그러면서 그에게 논리와 공감을 고루 갖춘 균형 잡힌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충고까지 했다.


  그런데 나는 흥분한 상태로 카톡을 하느라고 그만 퇴근 후에 그와 종로3가역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카톡 대화가 마무리되자, 그는 나에게 어디냐고 물었고, 나는 아직 신정역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안 와도 된다고, 와도 너무 늦어서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고 얘기했다. 나는 그의 말이 야속하게 들려서 포기가 참 빠르다고, 기다리지 않는다고 대꾸했다. 그는 자신이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고 얘기했다. 그는 카톡을 하면서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종로로 이동해 있었고, 나는 잔뜩 화가 나서 종로로 가지 않고 신정역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나는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아냐고 쏘아붙였다.


  그는 정말로 머리끝까지 화가 났고, 그는 나에게 이기적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평소에 나에게 서운했던 감정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제야 나는 아차 싶었다.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구나. 이러다가 우리 정말 헤어질 수도 있겠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불안해졌다. 나는 일단 약속시간에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고, 지금 가는 중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나는 종로3가역에 도착해 그에게 몇 번 출구에 있는지 물어봤고, 그는 내게 멜로망스의 <그게 더 편할 것 같아>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와달라고 했다. 노래 가사를 들어보니, 맞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맞추려 하기보다 자신과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게 더 편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노래를 듣고 위기감을 느꼈다. 그래서 출구로 걸어가면서 나는 헤어질 생각이 없으며, 우리가 성격이 조금 다른 것일 뿐, 얼마든지 맞춰나갈 수 있다고 그를 설득했다. 그리고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화 풀라고 애교를 부렸다.


  출구에 도착해 한 건물 앞에 서 있는 그를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마스크를 썼어도 눈매가 매서웠고 얼굴이 굳은 것처럼 보였다), 그의 눈이 내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애교를 부렸다. 그러자, 그의 화가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칵테일 바에 잠시 들렀다가 숙소를 예약해 들어갔다. 방에 도착해서 그와 나는 그동안 나누지 못한 긍정적인 대화(인스타그램의 '연인들끼리 물어보면 좋은 질문들')를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의 다툼은 내 자격지심과 지나친 예민함이 불러온 파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애초에 그 글을 그에게 보여줬던 게 잘못되었던 것 같다. 나는 그 글에 대한 그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을 그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것은 내 입장만 생각한 이기적인 행동이었고, 결국 그의 화를 돋우고 말았다. 글을 보여주고 그의 견해를 듣기만 했다면 좋았을 걸. 아니면 결말처럼 서로의 관심사에 대한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눴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 이 일기는 우리의 사랑을 하루하루 기록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추억이 오래도록 이 매거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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