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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Sep 16. 2022

나의 연인에게 배우다

2022년 9월 16일 금요일의 기록

  어제 샤워를 하고 탁구 치러 간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나는 그만 잠에 빠져 버렸다. 어제 여러 군데 돌아다니다 보니, 피곤했던 것 같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보니, 아침 7시였다. 제일 먼저, 내가 잔 안방에 딸려 있는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그가 자고 있는 컴퓨터방(친형과 둘이 사는 그는 집에서 방을 2개 쓰고 있었다)을 살며시 열어봤다. 그가 코를 골며 곤하게 자고 있었다.

  나는 안방으로 돌아와 브런치에 어제의 연애 일기를 기록했다. 간간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11시가 넘어서 거실 쪽에서 사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의 형일까 봐 바깥에 나가보질 못했는데,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잘 잤어요? 어제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안 깨웠어요."
  "고마워용. 잘 잤어용."

  나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그를 껴안았다. 그는 안으면서 나를 침대에 눕혔다. 우리는 진한 키스를 나누고,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했다. 나는 그의 형이 갑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오지는 않을까 걱정됐지만, 그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거침없이 행동했다. 그런 그가 싫지 않아(오히려 더 좋았다) 나는 그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배고프죠? 밥 먹어야죠. 뭐 먹을래요? 집밥? 아니면 파스타?"
  "집밥."

  그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갔다. 뚝딱뚝딱 뭔가 소리가 났다. 나는 뭘 도와줘야 할까 싶었지만, 행여나 그의 형을 마주칠까 싶어 그의 방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곧 그가 밥 먹으라며 나를 불렀다.

  내가 그와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을 때, 형의 방문이 열리면서 그의 형이 외출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형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그도 자기 형에게 "다녀와." 하며 인사했다.

  그의 형이 외출하고 나니, 그의 집이 한결 편해졌다. 그는 아직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안 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친구로서 집을 방문한 것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친구처럼 행동하려고 했는데, 그런 모습이 그의 형에게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의 형이 집을 나가고 난 뒤, 나와 그는 서로 대화하면서 식사를 했다. 반찬들이 다 맛있었지만, 그중 육전과 깻잎전이 특히 맛있었다.

  "전은 누가 만든 거야?"
  "우리 엄마요."
  "엄마가 요리 솜씨가 좋으시구나."
  "우리 엄마 요리 잘해요."

  그의 부모님은 울산에 사신다고 했다. 아버지는 건설업을 하시고, 어머니는 피아노 학원 원장님이시라고. 얼핏 전에 그가 중학교 3학년 때까지 피아노를 배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면 엄마한테 피아노 배웠어?"
  "아뇨. 엄마 제자 중에 음대 교수님이 계셔서 그분한테 배웠어요."

  그는 3살 때 자신이 절대음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절대음감이어서 악보를 보지 않고 외워서 피아노를 쳤다고. 그런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자기 실력을 믿고, 연습을 게을리한 결과, 예고 입시 콩쿠르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이 나와 예고 진학에 실패한 것이었다. 그 뒤로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 그곳에서 새로운 진로인 비행기 조종사의 길을 찾았다. 지금 우리나라 대형 여행사 여객기의 기장인 그는 또 다른 꿈을 향해 도전 중이다. 그것은 바로 베이커리 카페를 차리는 것. 그래서 쉬는 날이면 지인의 베이커리 카페에 가서 빵을 만들며 일을 배운다고.

  그의 인생 이야기는 여태껏 내가 어디에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내게 서민 갑부나 생활의 달인의 이야기처럼 조금은 낯설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는 TV 속의 청년갑부처럼 자신의 미래를 계속 설계해 나가고 있었고, 그 미래를 위해 현재라는 시간을 바쳐 열심히 노력해 나가고 있었다.

  물론, 그가 매일 일만 하는 건 아니었다. 자신의 멘탈 관리를 위해 그는 취미로 탁구를 치며, 기타를 배우고, 근력 운동을 하고 있다. 또,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웹툰을 보거나(하루 종일 웹툰에 빠져 있을 때도 있다) 게임을 하곤 한다. 스트레스 관리를 잘 못하는 나로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멘탈 관리도 신경 쓰는구나.

  나도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배워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근 살을 빼기 위해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을 시작했고, 술을 입에 대지 않기로 다짐했으며, 매일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써나기로 마음먹었다. 그 외에도 감정적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대화하기, 부드럽지만 자신의 주장을 확실히 말하기, 돈 관리하기, 내 미래를 구체적으로 설계하기 등을 조금씩 실천해 나가고 있다. 그를 만나고 나서 내가 점점 성장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 그와 함께 서로 성장하며, 즐거울 때 함께 웃고, 힘들 때 버팀목이 되며, 우리의 미래를 함께 설계해 나갔으면 좋겠다.

- 이 일기는 우리의 사랑을 하루하루 기록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추억이 오래도록 이 매거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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