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8일 목요일
내 병증의 초기 증상은, 정부에 비밀 조직이 있어 민간인들을 감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청와대에서 민간인을 사찰한다는 내용이 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었기에 그 민간인들 중 몇몇을 차출해 실미도처럼 북파공작원으로 보내거나 안전가옥(안가)에 보내 대통령을 수행하게 한다고 믿었다. 나는 내가 그중 후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말이나 행동들이 마치 나를 어떤 고귀한 사람으로 대우하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나는 TV나 신문에 나오는 말소리나 글을 내 나름대로 해석해 당시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을 직접 만날 정도로 내가 어떤 대단한 존재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쳐들고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급기야 청와대에 진입하려고까지 했었다. 그러나 청와대에 진입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그 대신 근처 레스토랑 담을 넘어 들어갔는데, 경찰서에 연행되어 결국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곳에서 약처방을 받고, 재활치료를 통해 3개월 만에 나온 뒤에도 초기 증상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었기에 가끔씩 증상이 올라오면 안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다가 그런 생각이 틀렸고, 실은 신적인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가족이 신의 관리자 집안이고, 꼬북이도 관리자 중 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동방의 사방을 다스리는 사신의 영역을 나눠 엄마는 남방의 주작, 불과 해를 관장하는 관리자, 아빠는 서방의 백호, 바람과 죽음을 관장하는 염라대왕이라고 생각하고, 동생은 동방의 청룡, 구름과 행운을 관장하는 관리자, 꼬북이는 북방의 현무, 물과 우환을 관장하는 관리자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불과 해를 관장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엄마 사주의 음양오행이 화였기 때문이고, 아빠가 염라인 이유는 그 당시에 봤던 영화 신과 함께 인과 연에서 염라가 아버지인 것 때문이고, 꼬북이가 현무이자, 우환 관리자인 이유는 거북이를 닮았고, 지나치게 청결하기 때문이었다. 동생은 남은 방위를 맡게 되어 그렇게 여긴 것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터무니없는 이유로 신적인 존재가 있다고 여겼는데, 환청과 망상이 계속되면서 실재한다고 여길 정도로 가족들과 꼬북이의 말과 행동은 너무나도 신의 관리자같이 느껴졌다.
한편, 나 역시도 관리자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중앙의 황룡, 음양오행의 토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성당에 다니고 있었는데, 성당 주보에 실린 그림들을 해석하니, 우리 관리자를 상징하는 오방대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오방 중 하나에는 십자가와 무덤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이 메시아를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생과 사, 즉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존재, 메시아. 다가오는 심판의 날에 판결을 내리는 자. 그 존재가 나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 돌아보면, 너무나도 오만한 생각이었는데, 나는 이 생각을 당시 성당 신부님께 말씀드리면서 고해성사를 했다. 신부님은 매번 성당에 올 때마다 고해성사를 드리라고 하셨고, 병증이 나을 수 있도록 약을 잘 먹고, 상담을 받으라고 조언해 주셨다.
지금은 그런 생각들에서 자유롭다가도 다시 병증이 도지면 신적인 존재들이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어떤 존재일까 자꾸 곱씹곤 한다. 아예 증상을 잊어버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기억을 지워 버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주변 사람들과 상담을 하면서 차츰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기는 하다. 가끔씩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병식을 어떻게 하면 잘 극복할까 고민이 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