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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하일기

좋은 가스라이팅이란 게 있을까?

2025년 10월 9일 목요일

by 제갈해리

목요일 밤 친한 형님과 함께 술집을 운영하는 친구네 가게에 가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던 중 친구가 "나는 좋은 가스라이팅도 있다고 생각해. 그 사람이 잘 되기 위해서 하는 가스라이팅은 좋다고 생각해."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에 어폐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친구의 말에 반박을 하고 나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좋은 가스라이팅은 없다고 생각해. 상대방이 가스라이팅 가해자에 대해 피해를 받는다고 여긴다면 그건 이미 좋은 가스라이팅이 아니야. 그리고 가스라이팅 자체가 애초에 좋은 의미가 아니잖아."

"그래? 나는 상대방이 잘 되는 쪽으로 이끌어주면 비록 강압적이더라도 좋은 가스라이팅이라고 생각하는데?"

"강압적이라는 말에서부터 벌써 좋은 가스라이팅은 아니다. 상대방을 억지로 뜯어고치려고 하는 것 자체가 가스라이팅인데, 그걸 좋다고 할 수 있을까?"

"글쎄... 너랑 나는 생각이 다른 것 같다."

"그러게."


그 친구와의 언쟁은 그렇게 서로 다르다는 것으로 끝났지만, 나는 집에 와서도 그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았다.


애초에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내 뜻대로 조종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이는 방법인데, 아무리 상대방을 위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내 입맛에 맞게 상대방을 요리하려는 게 아닌가. 그런 목적 자체가 불순하며, 나쁜 것이다. 아무리 좋게 포장했다고 해도 그건 상대방을 기만하는 행위이고, 옳지 못한 행동이다.


평소 그 친구의 사고방식이 강압적이고, 권위적이어서 상대방을 자기 뜻대로 기선을 제압하거나 누르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사귀는 것은 그 친구의 자유이기는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그런 친구와 사귀는 것은 마치 주인과 종업원 간의 주종관계나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그 친구가 술집을 운영하고 있어서 종업원들에게 실제로 그렇게 대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런 방식을 친구나 지인들에게도 적용한다면 그건 조금 위험한 발상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하얀 거짓말도 이와 비슷할까. 하얀 거짓말, 즉 착한 거짓말은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인데, 그것도 경우에 따라 다르다.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한 거짓말이라도 상대방이 당장 사실을 알았을 때 받을 충격과 나중에 사실을 알았을 때 받을 충격을 비교해서 어느 쪽이 정말로 상대를 위한 것인가를 곰곰이 따져보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또, 내가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해서 상대방을 진정으로 배려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만족으로 배려하고자 하는 감정인지도 잘 따져봐야 할 것이다. 만약 내 만족스러운 기분 때문에 상대방을 일시적으로 배려하는 감정이라면 그건 진정 상대를 위한 배려가 아니다. 내 욕심이요, 자만심일 뿐이다.


어찌 되었든, 내 생각에, 좋은 가스라이팅이란 것 자체가 말에 어폐가 있는 것 같다. 상대방을 내 맘대로 조종하기 위해서 가스라이팅 가해자들이 만들어 낸 허울 좋은 명분 같은 것이랄까. 가스라이팅이라는 것 자체가 비윤리적이고, 인권 침해적인 요소가 강한 심리적 기술인데, 그걸 좋다고 얘기하는 것은 한참 잘못되어도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좋은 가스라이팅이라는 교묘한 말장난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 말장난에 넘어가 또 다른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가 과연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지는 않는지, 피해를 받고 있지는 않는지 상황을 파악하고,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나를 공격해 오는 누군가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좋은 가스라이팅이란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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