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기도
소녀는 어릴 적부터 동화 속에 등장하는 천사를 유독 좋아했다. 소녀에게 있어 천사는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소녀는 천사처럼 선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녀는 특히 천사의 상징이기도 한 날개를 가지고 싶어했는데, 희고 풍성한 날개를 가지면 자신도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또, 천사처럼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신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자신도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천사를 좋아하고 천사의 날개에 매료된 소녀는 자신이 믿는 신에게 매일 밤마다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주님, 제 등에 날개가 돋게 해 주세요.”
소녀의 기도는 그만큼 순수했고 절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반면, 소녀의 부모는 날개가 돋게 해달라는 소녀의 기도가 동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넘겨 짚기만 했다. 나이가 먹으면 자연스럽게 학업과 또래집단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아이가 머리가 크면 날개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고 현실적인 아이로 자라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소녀의 기도는 그녀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기도는 아침, 점심, 저녁 끊임없이 이어졌고, 기도를 드리는 시간도 점점 길어졌다. 이제 소녀의 부모는 소녀가 기도를 그만 멈춰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깟 날개 같은 것에는 관심 가지지 말고, 친구 이야기를 해 보렴.”
소녀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 아니, 친구가 없다고 말하는 편이 맞다고 해야 할까. 같은 반에 소녀와 대화를 나누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천사의 날개에 빠져 있던 소녀는 학교에서도 날개 생각만 했다. 자신의 노트에 날개만 그렸고, 점심시간에는 신에게 기도를 드렸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에도 날개 생각에만 빠져 있어 선생님의 말씀이나 친구들의 이야기를 놓치곤 했다. 그러자, 선생님과 아이들은 소녀를 이상한 아이로 바라봤고 점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소녀는 점점 혼자가 되어갔지만, 외롭지 않았다. 소녀는 신이 항상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신이 언젠가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고, 자신을 천사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소녀의 간절한 바람이 거짓말처럼 이루어졌다. 소녀의 날개뼈에서 작은 깃털들이 조금씩 자라고 있었던 것이었다. 소녀는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다가 벽에 걸려 있는 거울을 문득 바라보다 자신의 등에 삐죽 나와 있는 깃털을 보게 되었다. 소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거울을 바라봤다. 매우 작은 깃털들이 자신의 날개뼈 주위에 모여 있었다. 자세히 바라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였다. 그렇지만 소녀는 뛸 듯이 기뻤다.
“주님께서 나의 소원을 드디어 들어주셨어. 나에게 날개를 선물해 주셨어.”
소녀는 기쁜 마음에 한달음에 부모님께 뛰어가 자신의 등을 보여주며 말했다.
“엄마, 아빠, 제 등에 날개가 생겼어요!”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소녀와는 달리, 소녀의 부모는 수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소녀의 부모는 기뻐하는 소녀를 데리고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소녀의 부모는 소녀의 날개가 큰 범죄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병원에 가서 접수를 하고 의자에 대기하고 있을 때에도 그들은 안절부절하지 못하면서 소녀를 사람들에게 최대한 보이지 않도록 했다. 간호사가 소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들은 소녀를 감싸안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소녀의 등에 달린 날개를 보여주면서 제발 이 날개 좀 어떻게 해달라고 의사에게 부탁했다. 의사는 X-ray 검사와 CT 촬영 등 정밀검사를 진행했다. 소녀는 영문을 모른 채 검사를 받고 다시 진료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소견을 밝혔다.
“따님의 몸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날개가 돋아난 건 저희로서는 알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소녀의 부모는 그럴 리 없다면서 날개를 제거하는 수술이라도 해달라고 의사 선생님을 붙잡았다. 그러나 의사는 날개가 척추와 연결되어 있어서 수술을 하게 되면 척추를 잘못 건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소녀의 부모는 의사의 말에 할 수 없이 소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소녀의 날개는 점점 자라나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엄지손가락 정도는 될 정도로 눈에 띄게 성장했다. 소녀는 식물 잎처럼 쑥쑥 자라나는 날개를 보자 기뻐했지만, 소녀의 부모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소녀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고,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있더라도 등의 날개가 보이지 않도록 겹겹이 옷을 입고 나가게 했다.
그러던 어느 더운 여름날, 학교에서 체육시간이 되어 학생들이 교복에서 체육복으로 환복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체육복으로 환복하고 있는데, 소녀만 그대로 교복을 입고 있었다. 평소 혼자 몽상에 빠져 있고 친구도 없는 소녀를 달갑지 않게 생각했던 몇 명의 여학생들이 소녀에게 다가왔다.
“넌 뭔데, 체육복으로 안 갈아입냐?”
그러자 소녀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나, 나는 피부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여학생들 중에 가운데 있던 여자 아이가 나서며 말했다.
“그래, 알레르기가 얼마나 심한지 좀 볼까? 얘들아.”
가운데 아이의 말에 다른 여학생들이 억지로 소녀의 교복을 벗기기 시작했다.
“이러지 마. 왜 그래?”
소녀는 자신을 괴롭히는 여학생들에게 저항했지만, 여러 명이 자신에게 달려들어 역부족이었다. 결국 소녀의 교복이 벗겨지고 소녀의 등에 난 날개가 드러났다. 학생들은 소녀의 날개를 보자, 한동안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가운데 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다른 여학생들도 저마다 말하기 시작했다.
“얘, 괴물이네. 날개가 있어.”
“그러게. 조류도 아니고 날개를 달고 있네.”
“맨날 날개에 미쳐 있더니, 진짜 날개가 있었네.”
여학생들은 옷이 벗겨져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소녀를 혼자 남겨두고 교실을 떠났다. 텅 빈 교실에서 소녀는 몸을 웅크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한동안 울다 지친 소녀는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자신이 그토록 소망하던 천사의 날개를 얻게 되었는데, 왜 다들 나를 괴물 취급하지? 심지어 우리 부모님까지 날개가 달린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저주처럼, 범죄처럼 여기잖아. 친구들은 나를 괴물이라고 부르고. 도대체 왜 그런 거지?
소녀는 자신의 날개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부모에게 물었다.
“왜 다들 이 날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죠?”
소녀의 엄마가 대답했다.
“그건 일반적인 게 아니라, 특이한 거야. 특별한 선물이 아니라, 이상한 저주인 거란다.”
특이하고 이상한 저주. 소녀의 엄마는 날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소녀는 엄마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남들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타인이 나를 그렇게 바라본다면 나는 정말 특이하고 이상한 사람인 것이다. 그렇지만 소녀는 더 이상 남들에게 이상한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다. 이상한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녀는 어릴 적부터 소원해오던 날개가 생겼음에도 자신이 불행해진 이유가 기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신에게 기도를 했기 때문에 날개가 생겼다고. 소녀는 신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소녀는 신에게 바치던 기도를 드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신을 믿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날개는 그날부터 더 이상 자라나지 않았고, 며칠이 지나자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소녀는 5살 난 사내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소녀는 어느 새 지극히 현실적인 전문여성으로 살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집안일과 변호사라는 일을 병행하면서 악착같이 결혼 생활을 버텨 나갔다. 소녀는 이제 날개에 관심이 있던 유치한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소녀에게 있어 가장 믿을 만한 것은 돈이었다. 오로지 돈만이 소녀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돈이 있어야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생계를,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기에 돈만이 소녀의 신이었다. 또, 소녀는 직장에서의 성과와 집안일의 연속에 스스로 단단해지고 강해졌다고 믿고 있었다. 소녀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이 자신을 한 단계 위로 나아가게 해준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소녀는 누구나가 알아주는 훌륭한 워킹맘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늦은 밤, 소녀가 여느 때보다도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나섰을 때였다. 제법 값비싼 자신의 고급 승용차에 올라 시동을 걸려고 할 때 아이를 보고 있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의 전화를 받아보니, 5살 난 아이가 열이 많이 나 응급실에 데리고 왔다는 것이었다. 소녀는 병치레가 별로 없던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응급실에 도착한 소녀는 황급히 응급실 간호사에게 아이의 이름을 댔다.
“강우주. 어디 있나요? 보호자입니다.”
간호사가 가리킨 방향을 보자, 응급실 한쪽 침상에 아이가 팬티만 입은 채 누워 있고 그 옆에 남편이 앉아 있었다. 소녀는 허겁지겁 아이에게 달려갔다. 소녀는 남편에게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다. 남편이 의사에게 들은 말로는, 열이 40도를 넘어서서 아이가 못 버틸 수도 있다고 했다. 옷을 벗기고 물수건으로 닦아주는 게 전부라고 했다. 소녀는 애꿎은 남편에게 화를 냈고, 뒤이어 상태를 살피러 온 응급실 의사에게 윽박 질렀다.
“내 아이 살려내요!”
그러나 의사는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모든 최선을 다했다고 봐야 한다고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하늘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소녀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늘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소녀는 자신이 어릴 적 믿었던 신을 떠올렸다. 자신이 그토록 허황되게 빌었던 끔찍한 소원을 들어주었던 악랄한 신을. 소녀는 그 소원 이후로 신에게 기도를 드렸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소녀는 오로지 돈과 자신만을 믿었기 때문에 이제 기도는 쓸모 없는 헛짓거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소녀는 알고 있었다. 돈을 몇 배를 지불한다 해도 의사는 이미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이의 체온을 빨리 내리도록 물수건으로 아이의 몸을 잘 닦아주는 일뿐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아이의 몸을 차가운 물수건으로 닦아내면서 소녀는 남편이 두 눈을 감고 손을 모아 기도를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그녀 스스로 상상할 수 없었지만, 차마 남편의 정성을 막을 수만은 없었다. 게다가 눈물까지 흘리면서 기도를 드리는 그의 모습을 보자,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소녀는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었던 신을 다시 떠올렸다. 끔찍한 추억이었지만,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었던 신이 아니던가. 혹시 모르지 않을까. 내 소원은 들어주시는 거라면. 그렇지만 그동안 내가 기도를 드리지 않아서 화가 나신 거라면. 그래도 일단 기도를 드려보고라도 그 응분의 대가를 받아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소녀는 어릴 적 천주교 신자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제발 내 아이를 살려 주세요. 그러면 제 등에 다시 날개가 생겨도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소녀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기도를 올렸다. 그동안 제가 당신을 믿지 않은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제 아이만은 살려 주세요. 부탁입니다. 소녀의 기도는 간절했고, 절박했다. 그렇게 소녀의 기도는 밤새 계속되었다.
잠시 잠에 빠진 소녀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떠서 햇살이 창문으로 가득 쏟아져 들어오고 있을 때였다. 소녀는 눈을 부비고 가장 먼저 아이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우리 우주는 어때?”
아이는 침상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소녀가 아이의 이마에 손을 대 보니 열이 내려가 있었다. 밤새 열에 시달렸던 아이의 숨도 이제는 고르고 편해 보였다. 소녀는 아이의 상태가 호전된 것을 보자, 감격을 주체할 수 없어 아이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에 아이가 깨어나 엄마 하면서 소녀를 안았다.
“엄마, 등에 날개가 생겼어.”
아이는 손에 든 깃털을 소녀에게 보여주었다. 소녀는 다시 깃털이 자신의 등에서 자란 것을 보자, 신께서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도를 들어주는 대가로 자신의 등에 다시 날개가 돋아나게 했다고. 소녀의 등을 더듬던 아이가 소녀에게 물었다.
“엄마 등에 왜 날개가 생겼어.”
소녀는 아이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주님께서 엄마에게 선물을 주셨기 때문이지.”
“선물이 뭔데?”
“그건 바로 우리 아들이지.”
소녀를 자신의 아이를 꼭 껴안았다. 이제 소녀의 등에서는 소녀가 어릴 적 그토록 바랐던 천사의 날개가 돋아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