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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Oct 10. 2021

미르가 사는 바다

대왕암에 얽힌 이야기

  할머니는 가끔씩 아버지가 용이 되었다고 눈에 불을 켜고 말하곤 했다.


  "얘야, 네 애비는 말여. 미르가 된 거여. 시방도 저 대왕암에 버젓이 잠들어 있단 말이여..." 


  10년 전의 일이었다. 어부였던 아버지는 동료 두어 명과 함께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로 배를 끌고 나갔더랬다. 그때 나는 불과 9살짜리 꼬마에 불과했다. 그래도 불길한 조짐 같은 것은 눈치 챘던 것인지 바다로 가는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놓지를 않았다. 


  "아부지, 가지 마요!" 


  아버지는 그런 나를 뿌리치고 기어이 대문을 나섰다. 그때 아버지는 무엇에 홀린 것인지 반드시 바다로 가야 한다고, 태풍이 불어올 때 물고기도 함께 몰려온다고 자신 있게 할머니에게 말했다. 


  "어무이, 내가 물고기 산같이 잡아올게. 걱정 말고 기다리쇼." 


  할머니 역시도 나처럼 울며불며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물가로 가지 말라고 말했다. 


  "이렇게 바람이 부는데 바다에는 와 나가노. 이 애미 부탁이다. 나가지 마라." 


  기어코 아버지는 집을 나가서 동료들과 함께 배를 탔고, 다음날 실종됐다. 동료들의 주검은 바닷가에서 발견됐지만, 아버지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실종 신고를 내고 행방불명이 된 아버지를 찾았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결국 신고한 지 3년째 해가 되어서야 아버지 찾는 것을 포기한 우리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가 바다로 나간 날을 아버지의 기일로 정해 매년 제사를 지내오고 있었다. 


  이제는 팔순의 나이가 되신 할머니는 요즘 들어 기억을 자주 잊었다. 손자인 나조차 가끔씩 알아보지 못했고, 매일 굴 따러 다니던 길조차 잃어버리고 주민들의 손에 붙들려 집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 가시는 할머니를 모시고 도시의 종합병원에 다녀왔다. 의사 선생님은 할머니의 상태를 치매라고 판단했고, 점점 치매 증세가 심해질 거라고 얘기했다. 


  "치매 증세가 이미 많이 진행됐습니다. 이 상태에서 회복은 어렵습니다. 가족 분들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은 내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10년 전 아버지가 실종되고 난 후,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믿고 의지해온 사람은 다름아닌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없는 형편에 굴을 따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하루종일 굴을 따서 버는 돈을 내가 먹는 것, 내가 입는 것에 쓰고 내 대학등록금까지 마련해둔 할머니였다. 그런 할머니의 헌신이 없었다면 나는 대학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번 해에 수능시험을 봐서 당당히 만점을 받았다. 전국 수석. 방송에도 출연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경주 봉길리의 수재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나는 서울대, 카이스트 등 우수한 대학에서 러브콜을 보내왔다. 동네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이 났다면서 3일 밤낮 잔치를 벌였다. 이장님 이하 주민들은 내게 덕담을 하면서 장하다 칭찬을 했지만, 나는 그들이 내 속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만 생각했다. 방송도, 러브콜도, 3일 연회도 나에게는 그닥 기쁘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점점 병들어가는 할머니를 놔 두고 대도시로 가고 싶지 않았다. 친척 하나 없는 우리 신세에 나마저 할머니를 떠나면 할머니는 어떻게 살아가실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바다로 간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왜 그날 바다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는지, 왜 그토록 바다에 나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바닷가에 살면서도 수영을 배우지 않았다. 아니, 아예 물가 근처에도 가질 않았다. 어차피 물가로 가봤자 아버지처럼 사라져 버릴 테니까. 나는 그렇게 허망하게 갈 수 없었다. 


  우리 집 근처 바닷가에는 대왕암이 있었다. 대왕암. 통일신라시대 왕이었던 문무왕의 무덤이 있는 곳. 문무왕이 목숨을 다하면서 왜구로부터 바다를 지키겠다며 자신을 묻어달라 했던 곳. 나라를 생각하는 왕의 진심이 담긴 곳. 그 곳에 대해 얼마 전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밤마다 그곳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들의 말로는 그 소리는 젊은 여자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동물이 우는 소리 같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소문은 눈덩이처럼 부풀어져 이장님 이하 마을의 남자들이 모여 그 소리의 진위를 파악하러 가기에 이르렀다. 마을의 남자 중 하나였던 나 역시 그들 사이에 끼어 손전등과 막대기를 들고 길을 나섰다. 


  남정네 다섯 명이서 밤10시가 되었을 무렵, 대왕암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동물의 소리인가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사람이 우는 곡소리에 가까웠다. 남자들은 각자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흩어졌다. 나는 근처 해안 동굴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동굴 입구에 다다르자, 곡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그 소리는 동굴 전체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나는 막대기를 든 손에 힘을 주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조금씩 동굴 벽에 비친 사람의 그림자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내 그 모습은 쭈그려서 울고 있는 한 늙은 여자의 형체로 변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건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아까 전만 해도 집에 계셨을 텐데, 언제 집 밖으로 나오셨을까. 아마 굴 따러 가는 해안길을 따라 나오신 모양이었다. 나는 울고 있는 할머니의 곁으로 다가갔다. 


  "할머니,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았지만,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내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철이애미가 그러는디, 네 애비가 대왕암에 묻혀 용이 되었다지 뭐여. 미르의 노여움을 달래줘야 허는디. 얘야, 네 애비의 원혼을 달래줘야 혀." 


  철이엄마는 10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 동네 무당이었다. 할머니는 철이엄마가 살아 있을 당시, 아버지의 행방을 찾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아버지를 찾으러 다녔다. 무당이라고 오죽했겠는가. 철이엄마는 당시 암 투병으로 정신이 온전치 못했는데, 그러면서 신기가 떨어졌다는 소문이 자자했었다. 그런데 지금 할머니는 그런 철이엄마가 해준 용 이야기를 회상하고 있는 것이었다. 


  "철이 아주머니는 돌아가셨어요."

  "뭔 소리여. 어제 내가 철이애미한테 똑똑히 들었다니께. 니 애비 지금 저 바위 밑에서 잠들어 있는 거 안 보이냐." 


  할머니는 동굴 맞은편, 어둠이 쫙 깔린 바다 위에 떠 있는 대왕암을 보면서 뭐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나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린지 작아서 들리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매일 밤마다 아버지를 찾는 할머니를 모시고 대왕암 근처로 왔다. 할머니는 꺼이꺼이 통곡을 하시다가도 끝에는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기도를 드렸다. 마치 용이 된 아버지의 혼이 한을 풀고 하늘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치성을 드린 할머니는 더 이상 대왕암이 보이는 바닷가로 나가지 않았다. 


  아니, 나가지 못했다. 할머니는 이제 나를 완전히 알아보지 못했고,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어야만 했다. 할머니는 음식도 마음껏 넘기지 못했고, 용변도 스스로 처리하지 못했다. 나는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할머니를 간병했지만, 혼자서 치매 노인을 돌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서 주민 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주머니들께서 매일 돌아가며 밑반찬이며 음식들을 가져오시고 할머니 병간호도 해주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잠시 잠을 청하곤 했다. 


  하루는 잠이 잘 오지 않아 이불을 뒤척이다가 아주머니들이 이야기 나누는 소리를 들었다. 


  "민준이 앞길을 위해서는 이 할마씨가 빨리 떠나셔야 할 텐데 말여."

  "그러게나 말이여. 손주 그만 고생시키고 이제 가셔야지." 


  나는 누워 있는 할머니를 곁에 두고 그런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아주머니들에게 화가 났다. 서둘러 아주머니들을 쫓아내듯이 보내고선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할머니, 오래오래 제 곁에 계셔야 해요. 알겠죠?" 


  할머니는 말이 없었다. 오랜 침묵이 지난 후 내가 잠시 자리를 뜨려 할 때 할머니가 달싹거리는 입으로 작게 말했다. 


  "얘야, 저 바다는 미르가 사는 바다여. 미르가 사는..." 


  할머니는 이내 말이 없었다. 덜컥 겁이 난 나는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할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손을 할머니의 코에 가져다댔다. 숨이 오가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작은 숨소리조차 들리지도 않았다. 가셨구나... 나는 그 자리에 멈춘 듯 앉았다. 나는 갈 곳을 잃은 할머니의 눈을 감겨 드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엎드려 숨죽여 울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서울에 사는 의사가 되었고, 한 가족의 가장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지금도 이따금씩 예전 할머니가 해주시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옛날, 옛날에 말이여 임금님이 살고 있었는디 어찌나 훌륭한 임금님인지 해적들로부터 나라를 지키려고 죽을 때 바닷가 바위섬에 묻어달라 했겄냐. 그 임금님이 죽어서 미르가 되어서 바다를 지켰다재. 네 애비도 훌륭한 사람이니께 죽어서 미르가 되었을 것이여. 철이엄마가 안 그러드냐. 민준이 너도 임금님처럼, 애비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헌다." 


  할머니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게 울린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헌다. 네, 할머니. 훌륭한 사람이 될게요. 그리고 그곳의 바다에는 아직도 미르가 살고 있겠지. 미르가 된 임금님이. 아니, 미르가 된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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