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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Nov 01. 2021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병이 든 나무

병이 든 나무 이야기

  태초에 세상 한가운데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었답니다. 그리고 그 나무 옆에 병이 든 나무가 있었어요. 이 나무는 병이 들어 열매를 맺을 수 없어서 사람들에게 맛있는 과일을 선물해 줄 수가 없었어요. 당연히 아름답게 꽃도 피지 않았지요. 항상 앙상한 가지만을 간직한 병이 든 나무는 자신을 비추는 태양을 저주했어요. 잎사귀도, 꽃도, 열매도 맺을 수 없는 자신에게 왜 이렇게 가혹하냐고요. 그리고 병이 든 나무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질투했답니다. 병이 든 나무가 보기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모든 걸 다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사시사철 푸른 잎이 나서 시원한 바람을 품고 있다가 사람들이 쉴 수 있게 해 주었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었고 열매를 맺어 맛있는 과일을 사람들에게 베풀었거든요. 옆에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제 할 일을 다하고 사라져 가고 있을 때, 병이 든 나무는 그 모든 걸 지켜보았답니다.


병이 든 나무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네 몸을 희생해서 사람들에게 뭔가를 주기만 하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 몸을 희생하는 게 아니야."


병이 든 나무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말했습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병이 든 나무는 화가 났습니다.


"너는 건강하니까, 건강한 나무니까 할 수 있는 거잖아! 나 같은 나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야. 나도 너처럼 푸른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도 열렸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나는 병에 걸려서 그럴 수가 없잖아. 아프니까 너처럼 나무답게 살 수 없잖아!"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많이 힘들었겠구나. 너도 나처럼 사람들에게 필요한 나무가 되고 싶었구나. 너에게 은총을 내려주지 않는 신이 원망스러웠겠구나. 그렇지만 너는 내 옆에서 내가 사라져 가는 걸 지켜보고 있지 않니. 내가 죽어가는 걸 네가 봐주고 있잖아. 나에게는 그게 힘이 되는 걸. 고마워, 나무야."


  그 말을 남기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생명을 다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곁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병이 든 나무는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얼마 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던 자리에서 싹이 돋아났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씨앗이 땅에 심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싹이 돋아나고 가지를 이루고 잎과 꽃과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제 병이 든 나무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병이 든 나무는 병이 들었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몇 번이고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이제 병이 든 나무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역사를 증명하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병이 든 나무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나무가 되고 싶어 했지만, 이제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게 필요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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