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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Oct 26. 2021

광염 속에서 -3-

광염 속으로

  그렇게 자기가 이 캠프에 오게 된 경위를 어떤 얼굴은 간신히, 그리고 어떤 얼굴은 간단히 소개함으로써 첫 번째 프로그램이 끝나고 우리는 자유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한쪽에서는 담배를 피워 대기도 했고, 한쪽에서는 타부대 인원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친해지기도 했다. 오로지 나와 송호창 일병만이 갈 곳을 잃어버린 양처럼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앉아 있었다. 송호창 일병을 보니,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마치 사시나무 떨듯 아까보다 더 심하게 떨고 있었다. 나는 그가 걱정이 되어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나는 그가 놀라지 않게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그의 고개가 올라갔고 그의 눈에 맺힌 눈물이 보였다.


  "괘, 괜찮아요. 신경 써 줘서… 고맙습니다."


  가까이서 바라본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뽀얬다. 소위 사람들의 말로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외모였다. 요즘 예쁜 남자가 대세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이 친구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참 많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의 눈에 하얀 눈물자국이 생기니,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보호본능이 일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내 손수건을 꺼내 건네주며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아까 많이 힘들었나 봐요. 군종장교가 부러 고통스러운 얘기를 꺼내게 해서……."

  "고맙습니다. 좀 그랬어요. 말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는 손수건을 건네받고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 이제 좀 진정이 되는 듯 나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여자아이가 수줍음을 타는 듯했다. 나는 순간 여자를 대하고 있는 것인지, 남자를 대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고맙습니다. 도와주셔서……."


  그 뒤로 우리는 많이 친해졌다. 캠프 내에서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밥을 먹을 때도 옆자리, 프로그램을 들을 때도 옆자리,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옆자리였다. 대대 번호순대로 짝을 지어주기에 그런 것도 있었지만, 한 살 차이가 나는 우리-내가 한 살 더 많았다-는 뭔가 잘 맞았다. 매사 정의감에 불타 약자를 도와주기를 좋아했던 나와 연약해 보이면서도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송 일병은 다르면서도 같았다. 다르다면 그것은 우리의 외모와 성격이 전혀 반대라는 점,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부대에서 부적응으로 비전캠프에 입소하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송 일병은 나와 친해지자, 말주변이 많아졌다. 시시콜콜 나에게 이것저것 얘기하기 시작했다.


  "형, 있잖아. 내 보직이 행정병이잖아. 사람들은 다들 꿀보직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게 아니거든. 중대장 눈치, 행보관 눈치에 선임 갈구는 것까지 아주 사람을 잡아 죽인다니까. 형도 우리 부대 오면 저런 악마들이 있나 할 거야."


  이런저런 자대 얘기를 하다가 며칠이 지나자 송 일병은 나에게 자신의 속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형, 사실은……."


  송 일병은, 얘기하기를 주저주저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 동성애자야. 그런데 그게 부대 내에 알려지고 사람들이 나를 따돌리기 시작했어. 무슨 정신병자처럼 나를 보기 시작하는 거야. 중대에서는 나를 국군 수도병원 정신과에 보내서 우울증 약을 먹이는데 어찌나 독한지 환각 증세가 생기더라."


  그 얘기를 듣자 나 역시 정체 모를 약을 먹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 약이 정신과에서 조제한 우울증 약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러면서 무미건조한 생활을 해왔던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환각 증세뿐만이 아니었어. 몸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고 행동이 느려지는 거야. 말도 어눌해지고. 그래서 중대장님께 약을 먹고 싶지 않다고 했지. 그랬더니 먹어야 산대. 그게 말이 돼? 먹어야 산다니."


  그래. 먹어야 산다는 말이 맞았다. 그 약을 먹지 않으면 우리처럼 군대의 부적응자들은 살아갈 수 없으니까. 행렬에서 낙오된 개미들은 인간의 발에 밟히거나 포식자의 손에 죽임을 당할 뿐이니까.


  나는 우리 부대뿐만 아니라, 타 부대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아니, 비전캠프 부대원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일주일의 비전캠프 생활이 끝나 각자 자대로 돌아가야 했을 때, 호창이가 내 손에 작게 찢은 종이를 쥐어줬다. 펴보니 자신의 핸드폰 연락처와 부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연락해."


  찡긋 미소를 지으며 자대 행정보급관을 따라나서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나도 문득 그를 따라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우리 부대 행정보급관이 내 뒤에 서 있었기 때문에 또다시 일탈 행위를 할 수는 없었다.


  "응."


  나는 멀어져 가는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곤 뒤돌아서 행정보급관을 바라보니 행정보급관이 냉소를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이. 나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행정보급관을 따라갔다.

 



  보급병 생활에서도 다른 것은 없었다. 보직만 달라졌을 뿐 보급반의 부조리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급장교는 보급품이나 제트기용 기름을 몰래 빼돌렸다. 보급장교는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그런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보여줬다. 그러면서 나에게 항상 이야기했다.


  "군대는 원래 이런 거야."


  그렇다. 군대는 원래 이런 거다. 그렇게 보급장교의 말을 되새기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나의 신념과 군대 내의 현실이 내 머릿속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군대에 오기 전에 나는 사회단체에 가입해 활동을 해왔다. 약자를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건설하자고 구호를 외치며 거리에 나가 시위를 하기도 했다. 종종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공권력에 맞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외쳤다. 그런 내가 군대에 와서 딜레마에 부딪히고 있었다. 이제 갓 일병이 된 내가 군대의 시스템이 잘못되었다고 외치기에는 너무나 힘이 미약했다. 보급장교의 말처럼 군대는 원래 이런 거니, 세상에 편승하면서 살아가도 될까. 아니면 곧 죽어도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외치는 것이 나을까.


  수많은 밤들을 고민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후자였다. 곧 죽어도 잘못된 것은 알리고 죽자. 일과 시간이 끝나고 해 질 녘이 되었을 때, 나는 곧장 PX로 가서 내가 가진 월급을 털어 지포 라이터를 샀다. PX병은 선뜻 내게 라이터를 건네주었고 나는 그것을 들고 부대를 돌아 제트기 유류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 밖으로 노을이 휘황찬란한 빛을 내며 산 너머로 져 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해의 광염. 그것은 이제 내 안에도 번져가고 있다. 나는 제트용 기름통을 들어 머리 위로 들이붓는다. 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강한 휘발성의 기름이 코를 찌른다. 끈적끈적한 액체가 머리 위를 차갑게 식히고 군복을 입은 내 몸을 휘휘 감아 돈다.


  "이제 이걸로 된 거야."


  한 병사의 죽음으로 군대의 부조리들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상상을 하면서 나는 라이터의 심지를 당긴다. 작은 불빛이 눈앞에 나타난다. 잔뜩 힘을 주고 있던 손을 서서히 펴기 시작한다. 불빛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바닥으로 떨어진 불빛은 노을빛이 하늘에 번지듯 순식간에 바닥을 타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기름통들을 돌아 짐승처럼 빠른 속도로 내게로 달려든다. 나는 눈을 감는다.


  광염이 나를 타고 올라온다. 광염 속에서 나는 말이 없다. 이 속에서는 아무도 나를 지배하지도, 군림하지도 않는다. 그저 휘황찬란한 불길만이 나를 감싸고 있을 뿐이다.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매캐한 냄새조차 나지 않는다. 이 안락한 광염 속에서 나는 곧 타들어가겠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표지의 톨스토이처럼 마구 구겨지겠지.


  "불이야!"


  그 순간, 어디선가 누군가가 소리쳤다.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유류창고 안에 불과 연기가 가득 피어나고 있었다. 짐승의 것인지, 악마의 것인지 불길은 나와, 나에게 달려오는 누군가를 향해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려온 그는 나를 둘러업고 악귀 같은 불길을 뚫고 유류창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는 나를 바닥에 눕히고 자신의 군복을 벗어 불이 붙은 내 군복을 후려치고 있었다. 불과 연기로 점점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나는 그의 군복에서 군종 마크를 확인하고 기절해 버렸다.

 



  내가 눈을 뜬 것은 병원 베드에서였다. 내 팔과 다리에는 수술을 했는지 붕대가 감겨 있었지만, 링거를 통해 진통제를 다량으로 놓았는지 약간 따가운 느낌만이 들 뿐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내가 본 사람은 이번에도 중대장이었다. 중대장은 한껏 굳은 표정으로 베드 옆에 서서 나를 딱딱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간신히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처럼 힘겹게 말했다.


  "이정훈 일병……."


  나는 중대장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눈을 감았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자유를 향한 아우성이 군종 마크를 단 병사에 의해 끝내 실패로 돌아가 버렸다는 허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눈을 감자, 중대장은 일어나 병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행정보급관에게로 걸어갔다. 그는 내가 듣고 있는지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행정보급관에게 조용히, 그러나 사납게 말하기 시작했다.


  "씨발……. 미친 새끼 하나 때문에 진급 못하게 생겼네. 대대장님께 그만큼 공을 들였는데, 이제 완전히 좆됐네. 남 중사도 진급은 물 건너갔어."

  "유류창고 일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대대가 완전히 발칵 뒤집혔습니다."

  "아까 대대장님이 나를 부르셔서 담배꽁초로 인한 작은 화재 사건으로 수습하자고 하셨어. 괜히 일 크게 만들지 말자고."

  "아, 그렇습니까. 이제 저 녀석은 어떻게……."

  "어떻게 하긴, 내보내야지. 게다가 부모 없는 고아라며. 한 번 더 캠프에 보내고 제대시켜 버려야겠어. 원래 캠프에 두 번 가야 제대 조건이 되거든."


  나는 다시 눈을 떴다. 베드에 누워 창밖에 비친 타다 남은 노을빛을 바라보았다. 타다 남은 노을빛 뒤로 군종 마크의 십자가가 어렴풋이 보이는 듯했다.


  심연처럼 깊은 어둠 속. 넓은 연병장에 불빛이 반짝인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것은 또다시 모닥불이다. 모닥불 주변에 군복을 입은 사내들이 원형으로 둘러앉아 있다. 모닥불의 화광이 타오르는 장작더미에서부터 동심원으로 퍼져나간다. 나는 그을린 불빛을 유심히 바라본다. 그것은 내가 미처 외치지 못한 아우성의 일부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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