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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Sep 11. 2021

광염 속에서  -1-

정훈의 이등병 생활

심연처럼 깊은 어둠 속. 넓은 연병장에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것은 모닥불이다. 모닥불 주변에 군복을 입은 다섯 명의 사내들이 원형으로 둘러앉아 있었다. 모닥불의 화광이 장작더미에서부터 동심원으로 퍼져나가 다섯 명의 얼굴을 차례차례 비추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가려져 있다가 은밀하게 드러난 다섯 개의 얼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어떤 얼굴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장작더미를 들여다보고 있었고, 어떤 얼굴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뚫어져라 높게 솟아오른 불만 바라보고 있었다. 또 어떤 얼굴은 좀처럼 가만있지 못하고 연병장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고, 어떤 얼굴은 옆의 얼굴과 함께 자잘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막사가 바로 보이는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어떤 얼굴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궁금해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나는 단지 더블백을 의자에 기대 세워놓고 그것을 열어 책을 꺼냈다. 내가 평소 자대에 있을 때 자주 읽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이었다.

 

"자, 다들 모이셨습니까?"


그때, 굵고 낮은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책 읽던 것을 멈추고 모닥불로 다가오는 중년 남성을 바라봤다. 칼같이 각을 세운 베레모와 어깨에서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3개가 그의 신분이 대위임을 알려주었다. 그는 내 오른쪽으로 다가와 서서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은 얼굴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앞으로 여러분과 비전캠프 프로그램을 함께 하게 된 군종장교 김무영 대위입니다. 먼저 이 시간은 각 부대에서 모인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입니다. 각자 관등성명과 부대를 밝혀주시고,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간단히 얘기하면 되겠습니다. 그럼, 제 앞에 있는 부대원부터 말씀해 주시죠."


군종장교는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을 지목했다. 그는 이리저리 불안한 듯 연병장 주변을 둘러보다 지목을 받자, 깜짝 놀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몇 초간 뜸을 들이다가 입을 뗐다.


"저, 저는 101대대에서 온 송호창 일병입니다.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자 쑥스러운 듯 손으로 입을 가리고 이내 고개를 숙였다.


"여기 모두가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를 아는 건 아닐 겁니다. 그것은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고, 다음은 제 옆에 있는 이정훈 일병이 말씀해 주시죠."

"저는 102대대에서 온 이정훈 일병입니다. 저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여기에 오게 됐습니다."


나는 군종장교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또박또박 힘주어 잘못한 것도 없는데,라고 말했다. 순간 군종장교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펴면서 이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앞으로 비전캠프에서 프로그램을 하면서 여러분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외부에서 들여온 책은 반입금지입니다."


군종장교는 내 손에 들려 있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뺏어 모닥불 속에 집어넣었다. 책 표지에 있던 톨스토이가 기이한 형상으로 구겨지며 모닥불 속에서 타들어갔다. 군종장교는 내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더니, 쌤통이라는 듯 눈을 내리깔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뒤로 한 명씩 호명되어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나는 불쾌한 느낌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이 캠프에 왜 오게 된 걸까. 군종장교는 대수롭지 않게 나의 이야기를 흘려 넘겼지만,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 부대 내에서 관심병사만이 오게 되는 이 캠프에 내가 왜 와야만 했던 것일까. 내 의지에 반하는 일에 내가 왜 억지로 끌려와야만 했던 것일까.

 



그 원인은 6개월 전부터 시작됐다. 군수학교에서 조리병 특기 교육을 받고 102대대에 조리병으로 자대 배치받은 나는 부대에 들어서자마자 모두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원래 취사반은 102대대와 202대대에서 조리병이 각각 차출되어 두 부대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자대 선임 조리병이 취사반 선임에게 구타를 당해 보직이 이동되면서 조리병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고 했다. 그 뒤 3개월 동안 상대적으로 일과 시간이 많이 남는 최고선임 병장들과 병장 진급 예정자들이 번갈아 가면서 취사지원을 나갔다고. 그런데 이제 조리병 인원이 들어오게 되어 번거롭게 취사지원을 나가지 않게 되었으니 그들로서는 얼마나 축하할 일이었겠는가. 이것은 먼저 자대 배치를 받은 동기 김병수 이병으로부터 들은 내용이었다. 부대원들은 작은 과자파티를 열어 나를 환영해 주었다. 어떤 선임은 담배를 피우느냐 묻더니, 내가 담배를 피운다고 하자 PX에서 담배 한 갑을 사주기도 했다. 군대에 오기 전 인권단체에서 일했을 때, 제대한 친한 형들로부터 “너는 군대 체질이 아니야.”라는 말을 밥 먹듯이 들었던 나는 예상치 못한 부대원들의 환대에 앞으로 즐거운 군 생활을 할 수 있겠다고, 내심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들뜬 마음으로 취사장으로 향한 나는 202대대의 맞선임으로부터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인수인계받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청소, 청소, 또 청소였다. 병사식당 안쪽에는 조리병들이 생활하는 작은 방이 있었는데, 그곳에 작은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맞선임은 나에게 그 화장실을 청소하라고 시켰다. 화장실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는데, 나는 맞선임이 시키는 대로 그 좁은 공간에서 솔을 가지고 변기를 닦고 휴지통을 비우고 세면대를 닦았다. 화장실을 청소하고 나서 이제 다 된 것 같다 맘 놓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취사장 주방을 청소하라고 했다. 취사장 주방 바닥은 온통 폐기름들로 가득했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았는지 바닥의 기름들로 인해 신었던 주방용 장화가 미끌미끌거릴 정도였다. 나는 그래도 내가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솔을 들어 타일들을 하나씩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냥 놔둬. 굳이 닦을 필요 없어."


맞선임은 내게 바닥 청소는 그만 됐고 조식을 위한 재료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다. 나는 주방 한쪽에 놓인 큰 냉장고에서 채 썬 파와 양파 등이 담긴 플라스틱 통을 꺼내 긴 도마대 위에 올려놓았다. 한동안 조식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 생활반에서 잠을 자고 있던 조리병 선임들이 주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늦장을 부려? 빨리 못 해?"


뒤룩뒤룩 살이 찐 사람이 맞선임을 향해 소리를 빽 질렀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에게 알지 못할 위화감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그의 명찰과 계급을 빠르게 훑었다. 그의 이름은 김일중, 계급은 병장이었다. 그가 아마 최고선임인 모양이었다.


"이거 봐라, 이등병이 지금 농땡이 피우고 있어?"


그는 내가 잠깐 시선을 둔 것을 놓치지 않고 맞선임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맞선임은 병장의 눈치를 보며 죄송하다고 굽실거리면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빨리 해. 뭐 하고 있어?"


그제야 나는 김 병장을 바라보던 눈길을 거두고 다시 식재료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조리병 일과가 끝난 오후 9시쯤 피곤한 몸을 끌고 자대 생활관에 복귀하게 된 나는 잠이 오지 않아 한참을 뒤척였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군대에 오기 전 인권단체에서 일했던, 그리고 군대에 와서도 군수학교의 철저한 위생 교육을 받았던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취사장의 위생 관념이었고, 모든 허드렛일을 막내에게 시키는 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조리병으로서의 나의 일과는 취사장에서 버거운 일을 해나가며 버티고 또 버티는 일의 연속이었다. 아침 3시에 일어나 취사장으로 가서 화장실, 주방 청소를, 조식이 끝나자마자 수백 명의 부대원들이 먹고 남긴 잔반 처리과 설거지를, 점심이 되기 전 식재료 손질을, 점심 후 잔반 처리와 설거지를, 석식 전 식재료 손질을, 석식 후 다시 잔반 처리와 설거지를 해야 했다. 그리고 좁디좁은 취사반 부대원 생활반에서 잠들어 있는 선임들 사이에 끼어서 2시간 정도의 쪽잠을 자야 했는데, 그때는 몸이 피곤해서 잠이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음식물 짬통은 어찌나 무거운지 30kg 이상은 나가는 것만 같아 팔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적성에 맞지도 않는, 애초에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특기를 받아 오게 된 조리병 생활을 하면서 버텼건만, 그 시간들은 나를 자꾸만 안으로 가둘 뿐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취사장에서 짬 처리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졌고, 취사장 맞선 임의 부축으로 의무실로 이동해 링거를 맞게 되었다. 우리 부대의 선임들과 동기들은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와 문병을 와서 몸보신하라며 과자와 죽, 냉동식품 등을 내게 건네주었다. 그들은 내가 취사장에서 버티기를 바랐고, 나는 그들의 기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힘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사건은 바로 그 직후에 터졌다. 의무실에서 퇴원한 나는 다음날 취사장으로 돌아가 근무를 하게 되었다. 때는 점심식사 퇴식이 끝난 시간이었는데, 최고선임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구시렁대면서 나를 자꾸만 갈구고 있었다.


"너 자꾸 농땡이 부릴 거야? 무슨 막내가 일을 이렇게 못 해? 내가 막내 때는 말이야……."


아마 내가 의무실에 다녀온 것이 탐탁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가뜩이나 몸에 열이 난 상태에서 힘들게 짬을 치우고 있던 나는 최고선임의 말에 그간 참고 있던 것들이 한순간에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김 병장님은 가만히 앉아서 후임들한테 시키고 계시면서 지금 이렇게 행동하시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대거리에 놀랐는지 김 병장은 한동안 충격받은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이내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목소리 또한 격앙되기 시작했다.


"너, 너 지금 하극상하는 거야? 너 이게 무슨 짓인지 알고나 있어? 이 새끼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손에서 양동이가 던져졌다. 나는 가뜩이나 아직 어지럼증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그가 던진 양동이를 머리에 정통으로 맞고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의무실 베드에 누워 있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바라보자, 링거를 맞고 있는 내 손과 베드 옆의 의자에서 나를 바라보는 한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각이 진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나이는 한 2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였고, 눈이 부리부리하며 콧날이 높은  대체적으로 강한 인상이었다. 그의 계급은 다이아몬드 2개. 중위였다. 그의 이름은 박종혁. 우리 부대의 중대장이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강아지를 쓰다듬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깼구나. 괜찮은 거냐?"

"중대장님!"


나는 중대장님에게 예를 갖추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괜찮아. 그대로 누워 있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자세를 곧추세워 최대한 각을 잡았다. 약간 머리가 어지럽기는 했지만, 버틸만했다. 그러자 중대장의 길고 두툼한 손이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줄 수 있을까?"


중대장의 물음에 나는 선뜻 대답하기가 겁이 났다. 비록 중대장이 우리 중대를 담당하고 있기는 했지만, 취사장에서 내가 하극상을 벌인 일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도무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얘기하기가 힘든 거야?”

“예, 그렇습니다...”

“알았다, 그럼 언제라도 나한테 얘기할 마음 있으면 찾아오도록 해.”


중대장은 의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의무병 선임이 바로 들어와 링거를 살폈다. 의무병 선임은 요즘 들어 의무실을 자주 찾는 나를 진심으로 돌봐준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 동기들조차도 취사장에서의 일에는 무관심했지만, 의무병 선임은 아픈 내가 안쓰러웠는지 세심하게 나를 돌봐 주었고, 취사장의 일에 대해서 관심을 보였다.


“정훈아, 취사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래서 나는 그를 믿고 그날 취사장에서 있던 일을 빠짐없이 털어놓았다. 의무병 선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듣다가 알겠다며 이제 푹 쉬라는 말을 하고는 병실을 나갔다.


그 뒤로 의무병 선임은 의무실로 나를 자주 불러 얘기를 나눴다. 그는 그때마다 내게 커피를 손수 타주며 어디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물었다. 나는 그의 사려 깊은 말과 행동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그동안 취사장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취사장에는 (50대 여성이라고 해서 꼭 어머니라고 불러야만 하는가 의문이 들었지만) 조리원 어머니라고 해서 여성 군무원이 존재했다. 조리원은 원래 남자들만이 생활하는 군대 취사장에서 조리 감독의 목적으로 생겨난 직종인데, 우리 취사장의 조리원은 여타의 취사장 조리원들과는 달랐다. 여단 주임원사의 아내였던 이 여성은 조리병들에게 조리법을 알려주는 대신, 취사반 담당 보급관과 결탁해 식재료를 암암리에 빼돌렸다. 식재료 중에 가장 많이 가져가는 것은 닭과 소고기 등과 같은 비싼 식재료들이었다. 그것을 어디에,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취사장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또, 이 여성은 여단 주임원사의 아내라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PX에서 비싼 양주 등 고급물품들을 남편의 이름을 대면서 마음대로 가져가곤 했다. 자대 동기인 PX병의 말에 따르면, 물론 이것은 여단 주임원사인 그녀의 남편 계좌에서 지불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런 비리를 대담하게 저지르는 조리원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선임들을 보면서 회의감을 느꼈다. 그들은 조리원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했고, 조리원이 그들에게 조금씩 나눠주는 PX 물품이나 보급품에 현혹되어 갔다. 특히 비싼 보급품이 들어오면 그것을 빼돌리는 조리원과 함께 자신들도 보급품을 나눠 갖기도 했다.


군대에 오기 전 몇 년 간 인권단체에 몸 담았던 나는 이런 상황이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부조리임을 알고 있었고, 그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혐오하고 폭로하는 데 앞장섰다. 아마 그때의 가치관이 군대에 들어온 현재까지도 계속해 자리하고 있으리라. 그래서 나는 그 사실을 나를 아끼고 믿을 만하다고 여겼던 의무병 선임에게 알렸다.


"그게 사실이야?"


그는 내게 확인하듯 되물었다.


", 사실입니다."

"그래, 얘기해 줘서 고맙다. 이 사실은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말고."


그는 두 번, 세 번 이 사실을 다른 곳에 알리지 말라고 내게 신신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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