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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Oct 22. 2021

광염 속에서 -2-

관심병사가 된 정훈

  그러나 내게 돌아온 것은 갑작스러운 보직 이동이었다. 나는 더 이상 취사장에 있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중대장은 나를 조리병에서 보급병으로 배치했다. 깜짝 놀라 중대장실을 찾아갔던 나에게 중대장은 조리병 선임들에게 괴롭힘 당할 것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니, 안심하라고 하면서 나를 달랬다.


"게 다 너를 위한 일이야, 이 이병."


 나중에 알고 보니, 의무병 선임이 중대장의 명령으로 나에게서 취사장의 일을 캐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나를 아껴주었다고 믿었던 그에게 큰 실망감을 느꼈다. 그는 이게 모두 나를 위한 일이었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이후로 더 이상 의무실을 찾지 않았다.


  나의 보직 이동 사실이 부대에 알려지면서 얼마 전까지 나를 살뜰하게 챙겨줬던 선임들과 동기들은 노골적으로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하극상을 벌였다는 소문이 퍼졌으리라. 그리고 몇 개월 동안 취사 지원을 나가지 않다가 다시 차출된 선임들은 나를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몇몇 선임들은 나와 말을 섞는 것조차 꺼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나는 외톨이가 되어갔다.


  그러나 나는 엄격하게 따지면 혼자가 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보급병으로 배치된 나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게 일이 있을 때마다 보급장교와 항상 동행해야만 했고, 일과가 끝나면 행정보급관 또는 당직사관과 함께 붙어 있어야만 했다. 주말이 되면 군종병인 선임과 함께 부대 안의 작은 교회에 다녀야만 했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나를 위한 중대장의 안전한 조처라고 생각했다. 보급장교는 내게 자신의 업무를 맡겨 다른 것들, 이를테면 군대 내의 부조리나 비리, 장교들이 바라보기에는 쓸데없는 잡생각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했고, 행정보급관은 나를 행정반에 앉혀두고 책을 읽으라고 지시했다.


당직사관은 야간점호가 끝난 뒤, 밤마다 내게 국군 수도병원에서 조제했다는 원인 모를 약을 먹게 했다. 그는 항상 그 약을 자신이 보는 앞에서 먹도록 내게 명령했고, 나는 약을 먹고 나서 입을 벌려 실제로 약을 복용했는지 보여줘야 했다. 당직사관은 검사를 마친 후에 내게 취침에 들어가라 했고, 나는 기계적으로 취침에 들었다.


  한편, 군종병 선임은 나를 교회에 데리고 가서 성가대에 가입하게 했다. 교회에는 대대장 내외가 신도로 다니고 있었는데, 대대장은 성가대에서 테너로 있었고 대대장 부인은 피아노 반주를 맡고 있었다. 그들은 교회가 처음이라 어색해하는 내게 하나님을 믿으면 많은 것들이 해결된다고 얘기하면서 나를 친자식처럼 스스름 없이 챙겨주었다. 물론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엄혹한 상황 속에서 대대장 내외와 교회 목사가 나에게 해주는 말들이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처럼 절실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동아줄을 안간힘을 다해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매 주말마다 군종병 선임과 함께 교회에 가서 대대장 내외, 목사와 어울리는 것에도, 생활관에서의 무미건조한 하루를 보내는 것에도 익숙해져 갔다.


  그러나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것이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국군 수도병원에서 조제한 정체 모를 약이었다. 그 약은 내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나는 밤마다 마치 마약에 취한 것처럼 붕 뜬 기분과 앞이 흐릿하게 보이면서 상이 겹쳐 보이는 이상현상을 겪어야 했다. 이 이상한 기분과 현상은 대체 무엇이며, 왜 이런 이상한 일들을 매일 겪어야 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이상하고 괴이한 것은 약에 취한 상태에서 당직사관에게 흐트러지고 풀어진 나의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그가 나를 비웃거나 욕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붕 뜬 기분과 상이 겹쳐 보이는 현상 가운데에서도 그의 얼굴이 웃고 있는 것만 같은, 그의 입에서 욕설이 나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약에 취해 있었고, 약을 먹을수록 나의 감각은 차츰 퇴화되어 갔고 감정조차도 무뎌지기만 했다. 그래서 그가 나를 비웃었는지, 나에게 욕을 했는지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나는 부대 내에서 A급 관심병사였고, 선임들과 동기, 이제 갓 들어온 후임들에게조차 나는 철저히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중대장의 명령을 받은 그들은 중대장이 지켜볼 때는 나를 챙겨주는 듯 행동했지만, 실제로는 내가 자신들이 보기에 엇나가는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무능력한 부적응자 내지는 낙오자로 판단했다. 그들에게 있어 나는 훈련을 받지 않기 때문에 특혜의 대상이었고, 열외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들은, 특히 동기들은 나를 질투하기도 했다.


한 번은 동기들이 막사 뒤 공터에 모여 나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새끼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멍하니 있는 게 다라니까. 우리는 초소 근무에, 예초에, 막사 청소에 안 하는 게 없는데 그 새끼만 열외라니까."

  "맞아, 이 일병 그 새끼 그냥 뒈졌으면 좋겠어. 관심병사되니까 아주 기고만장하더군. 중대장님만 아니었으면 벌써 목매달고 자살했을 새끼가……."


  그나마 친했던 동기들과 말을 섞으면서 좀 더 친해지려 했던 나는 결국 발걸음을 돌려 생활관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 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기들조차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처참했다. 이제 나는 완전히 외톨이가 되었다 싶었다. 어디에 내 오갈 데 없는 마음을 의지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곳이 있기라도 한 걸까.


나는 어딘가로 떠나고만 싶었다. 막상 부대 내에서 그런 곳을 떠올리자니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그러다가 번뜩 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바로 교회였다. 그동안 매 주말마다 나를 따뜻하게 맞아줬던 그곳으로 가면 신이든, 목사님이든 나를 반겨주고 이해해 줄 거라고 믿었다. 그만큼 절실했고 다급했다. 나는 일과가 끝난 뒤 해가 뉘엿뉘엿 져 가는 막사의 뒷길로 몰래 빠져나와 교회로 향했다.


  그러나 교회에는 아무도 없었고 예배당 문은 잠겨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교회의 건물만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목사님도, 대대장님 내외도, 군종병 선임도 없었다. 그들은 주말의 오전 시간만 나에게 따뜻함을 선사해 주는 잠깐의 햇빛이었던 것이다. 이제 나에게 따뜻함을 가져다줄 존재는 없었다. 찬 바람이 부는 교회 건물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화장실 칸막이 안으로 들어갔다. 때는 한겨울이라 화장실 안에 라디에이터를 틀어놓았는데, 꽤 훈훈했다. 나는 변기 커버를 내리고 그 위에 앉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누군가 화장실 문을 두드리고 나를 찾아주기를. 그것이 아니면 나는 한 동기의 말 그대로 목을 매달지도 몰랐다. 나는 변기 커버의 온기를 느끼며 고개를 숙이고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그때였다.


쾅쾅쾅.


  누군가 손으로 칸막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다. 순간 겁을 집어먹은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덜덜 떨면서 앉아 있었다.


쾅쾅쾅.


  다시 한번 인정사정없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간신히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칸막이 건너편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누구세요?"

  "목사님이야! 문 열어!"


  문 뒤로 목사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목사님만 있을까. 목사님 뒤에 다른 병사들이 있는 건 아닐까. 그들이 나를 잡으러 온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운 마음에 선뜻 문을 열지 못하자, 다시 한번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마침내 문을 열었고, 열자마자 비친 건 목사님과 중대장님의 모습이었다. 중대장님은 어떻게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목사님께서 중대장님에게 연락을 취한 것일까.


나는 칸막이 안에서 목사님의 악착스러우면서도 인정사정없는 손길에 의해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러자 화장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선임들이 달려들어 나의 팔을 양쪽에서 잡아챘다. 정신없는 와중에 목사님이 중대장님에게 “이 새끼 뭐요?”라고 얘기하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다만 나는 중대장님이 목사님의 말을 듣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광경만 보고 지나쳤을 뿐이었다.


  선임들에 의해 행정반으로 끌려온 나는 행정반 안쪽의 중대장실 소파에 앉혀졌다.


  "이정훈 일병만 남고 모두 나가!"


  중대장은 약간은 격앙된 듯한 목소리로 선임들에게 명령했다. 그들은 경례를 하고 행정반을 나갔다. 다들 자리를 비우자 중대장은 다소 거친 숨을 가다듬고 방 중앙에 놓인 소파에 앉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정훈아, 괜찮니?"


  그는 측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내게 말했다. 나는 순간 그의 표정에 안쓰러움이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저지른 일은 군인으로서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한다 해도 그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중대장은 잠시 창가 쪽으로 눈살을 찌푸리다가 굳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이정훈 일병."


  그는 마지막 ‘이정훈 일병’이라는 말에 음절 하나씩 끊으며 힘주어 말했다. 그의 말투에서 여태까지 느껴지지 않았던 냉정함과 단호함이 묻어 나왔다.


  "정훈 일병, 탈영이 얼마나 중대한 위법 행위인지 알 거다. 이 일로 너는 일주일 간 영창에 가게 될 거고 그 뒤에 비전캠프로 보내질 거다. 가서 네가 한 행동에 대해 반성하도록. 그게 이 중대장이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조언이다."


  중대장은 내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며 다소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얘기하도록. 혼자서 끙끙 앓는 것보다 주변 동료, 선임들과 대화를 나누도록 노력해 보자. 알겠지?"


  나는 중대장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기만 했다. 어차피 이런 처벌이 내려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기에 놀랍지도 않았다. 다만 비전캠프에 보내지게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일주일 간 수도방위사령부의 영창에서 생활했다. 그곳에서 나는 독방 안에 갇혀 책만 읽는 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생활을 마치자마자 행정보급관이 나를 데리러 왔고 나는 그와 함께 군용차에 올라 비전캠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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