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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노 Oct 31. 2017

03 우리는 다 대리기사다.

나는 누구의 차를 운전하고 있는가?                      




저는 제대로 된 노동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가르치는 일, 아이들을 생활지도하고 상담하는 일들도 노동이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흔히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몸을 쓰고 거친 사람들과 거친 말투와 몸짓으로 하는 노동을 해본적은 없습니다. 대학시절 과외 정도를 노동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 학비가 비싸지 않은 교대에 입학했고 4년 동안 제대로 된 알바 한번 한적 없이 부모님 용돈 받아가며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다행히 바로 교사로 발령을 받아 그 이후 이직이나 실직 한번 없이 십 수년째 똑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이런 저에게 사회와 노동은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하고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한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단 한 번도 일터와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 본적이 없는 저에게 학교의 노동(?)문화는 저에게 늘 익숙한 것이자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학교에 처음 발령 받은 신규 쌤들이 학교문화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을 말할 때면 어느덧 꼰대처럼 ‘그건 네가 어려서 몰라서 그래!, 학교는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리사회 김민섭 저

 오늘 선생님들께 소개해드릴 책은 수년전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줄여서 지방시 라고들 합니다.)의 저자인 김민섭 작가의 후속작인 ‘대리사회’라는 책입니다.

 전작인 지방시에서 저자는 오랜 기간 학교라는 틀 안에서 오랜 기간 석박사 학위를 따고 교수라는 타이틀을 위해 가정과 개인의 삶을 포기해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가 문득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을 한걸음 밖에서 살펴보기 되고 결국 그는 시간강사를 그만두고 학교라는 구조를 나오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 됩니다. 엄청나게 간단히 요약 했지만 당시 이 책이 출간됐을 때는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이 기억납니다. 오늘 나눌 책인 대리사회는 그 이후 저자 자신이 겪은 일대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간강사의 삶을 내려놓고 대학을 떠난 저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대리운전 일을 시작하게 되고 흔히 말하는 먹물 출신의 사람이 삶의 치열한 현장에 뛰어들게 됩니다.


 처음에 저자가 대리운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저녁에 일하고 낮에 책을 쓸 수 있다는 간단한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책임져야할 아내와 아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이런 일을 해보지 못한 저자는 초반에는 좌충우돌하기도 하고 밤늦은 시간 취객들의 여러 거친 말들과 행동을 인해 놀라기도 하고 마음상해 하기 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대리운전이라는 일에 대해 적응될 때쯤 저자는 대리운전이라는 이 일속에서 자신의 인생, 우리사회의 인생과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자신이 대리운전을 하는 틈틈이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해나가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을 르포르타주 형식을 빌려 쓰여진 책인 대리사회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을 시작할 때 왠만하면 룸미러나 좌석위치 사이드미러들을 바꾸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차의 차주가 옆에 앉아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운전을 하지만 내가 이 차의 주인이 아니라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리고 운전하는 동안에도 옆좌석에 앉아 있는 차주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이상 먼저 말하는 경우는 잘 없다고 합니다. 이 또한 자신이 비록 운전을 하고 있지만 이 차가 나의 것이 아니라는 강한 의식에서 나오는 행동이라 이야기합니다. 이는 비슷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택시기사들과 비교하여 볼 때 상당한 차이라고 합니다. 손님을 목적지까지 이동시켜주는 것은 같지만 자신의 차에 손님을 초대한 택시운전기사는 손님의 차에 운전하기 위해 탑승한 대리운전기사와는 전현 다른 행동 양상을 보인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이 행동양식을 발견하면서부터 자신이 살아온 인생 방식을 돌아보게 됩니다. 열심히 운전을 하고 신호를 지키고 때로는 더 빠른 길로 가기 위해 애쓰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면 자신의 차가 아니기에 내려야 하는 대리운전 기사들처럼 우리의 인생도 혹시 나의 인생이 아닌 타인의 인생에 올라타 운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합니다. 자신이 운전하는 고급외제차를  자랑스럽게 운전하는 대리운전기사의 착각처럼 나의 인생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타인의 인생코스를 운전하며 달리는 우리네 인생에 대해 통찰합니다. 이 외에도 저자는 대리운전 기사들의 일하는 방식, 급여가 자신에게 입금되는 방식들을 경험하면서 그가 머물러 있었던 대학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한 익숙한 사고방식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저자의 책을 읽으며 참 많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참 지적이고 차분한 저자가 샌님 시절을 거쳐 돈을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애쓰고 점점 더 뻔뻔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 보다는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대리운전 기사들의 연대의식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사례들은 함께 일한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대리운전한 자동차의 차주 즉 그의 손님들 이야기들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책을 펴자마자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책을 놓치지 않고 후루룩 단박에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저자의 모습 속에 저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대리운전 입문기(?), 혹은 분투기를 통해 평소 경험할 수 없었던 삶을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저자의 반응들을 볼 때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도 별 수 있었을까?’ 등과 같은 다양한 질문들을 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노동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제가 역시나 노동을 해본 적 없는 저자의 노동을 통해 제 삶을 반추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2017년 마지막 달이 다가옵니다. 겨울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달려온 길을 돌아보고 다음 해를 기대함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의 일독을 권해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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