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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노 Jun 07. 2019

22 왜! 최선을 다해?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은 옳은가?- 피로 사회 & 게으를 권리



  저는 늘 바쁩니다.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삽니다. 학교에 출근할 때도 바쁘고, 집에 돌아와서도 바쁩니다. 그런데 저만 바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학교에 출근해서 만난 선생님들도 대화의 마무리는 늘 너무 바쁘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바쁘게 할까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는 여러 단어가 떠오릅니다. 학교 일도, 만나는 아이들도, 동료 교사도 집안일도 다 바쁘게 합니다.




  이 바쁨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합니다. 체력이 좋아지면 바쁨이 해결될까 열심히 운동합니다. 또 방학 때 멀리 여행을 가서 여유를 가져보려 합니다.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연수와 책을 읽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쁨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우리는 좀 더 바빠집니다. 학기 중에는 정신없으니 방학을 소망합니다. 하지만 막상 방학이 되면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부담을 느낍니다. 이렇게 마냥 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연수를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은 힘듭니다.




  늘 바쁘기에 쉰다는 것, 휴식한다는 것은 다음 일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 되었습니다. 금요일까지 바쁘게 일을 했으면, 토요일, 주일을 온전히 쉬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 한 주를 점검하고 준비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듭니다. 왠지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가만히 있는 것은 주님이 주신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느낌입니다.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주말, 특별히 한 것 없는 방학을 보내고 나면 괜한 부담감이 듭니다.




  저는 왜 늘 바쁜지, 그리고 왜 여유 있지 못하는지 생각했습니다. 성취 지향적인 저의 성격 탓이 가장 큽니다. 최대한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그것이 의미 있는 삶이라 생각해 왔습니다. 시간을 알차게 썼을 때, 뿌듯하고,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했을 때 기분이 좋아집니다. 문제는 이런 저의 바쁜 삶은 당연히 피로를 동반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바쁘다는 말과 함께 피곤하다는 말을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피곤하다는 것이 열심히 사는 증거라 생각했습니다.




  제 작년 온몸이 가려웠습니다. 피부과를 가도, 피검사를 해도 원인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일종의 홧병이라고 하셨습니다. 침을 맞으니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놀라움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저에게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스트레스를 줄이라고, 몸에 열과 화가 너무 많이 차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스트레스는 늘 있는 것이라 줄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일을 줄이기 어렵겠지만 노력해보면 좋겠다고 그게 어려우면 몸이 힘들면 찾아오라 하셨습니다. 물론, 그 홧병은 다음 해 학교의 업무량이 줄어들면서 사라지긴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바쁘고 피로한 삶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두 권의 책은 저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한 책은 수 년전 화제가 되기도 한 한병철의 피로 사회라는 책입니다. 다른 한 책은 포 라파르그의 게으를 권리입니다. 두 책 다 책이 두껍지 않고 얇은 책입니다. 그리고 두 책 다 짧은 내용에 비해 내용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한 권의 책은 비교적 최근인 2012년에 나온 책이지만 다른 한 책은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에 쓰인 책입니다. 하지만 두 책 모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대한 관점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먼저 소개해 드릴 책은 한병철 교수의 피로 사회입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2012년 이 책의 제목인 피로 사회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화제가 된 책입니다. 계급과 노예제가 사라진 현대사회는 그 누구도 열심히 일하기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저자 한병철은 놀랍게도 현대사회는 대놓고 우리에게 바쁘게 많은 일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성취 더 많은 보수(돈)을 무기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채찍질하며 알아서 열심히 일하게 만든 사회라 합니다. 그래서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스스로 자기를 학대하며 일하고, 이런 분위기는 결국, 사회 전체를 피로 사회로 혹은 우울 사회로 만들었다는 내용입니다. 



 다음으로 소개해 드릴 책은 폴 라파그르의 게으를 권리입니다. 무려 130년 전, 그는 우리에게 핵심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는가? 일하기 위해 사는가?” 노동이 종교화되어 매일 매일 12~14시간씩 노예와 같이 일하던 노동자들에게 그는 제안합니다. 일할 권리가 아니라 게으를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그는 하루 3시간 노동시간을 주장합니다. 하루 3시간만 일하게 하면 실업은 줄어들 것이고 모든 사람이 인간다움과 본성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일들은 다 기계가 하는 것이 사회의 발전이라 주장합니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어 게으를 시간이 늘어날 때 인간의 본성이 회복될 것이라 합니다.




  게으른 삶은 실패한 삶입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머릿속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많은 위인전에는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자랑스럽게 보여줍니다. 그렇게 부지런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TV를 틀면 유명인들이 그들의 성공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성공 과정 중에 게으름은 없습니다. 바쁨은 미덕이고 피로는 우리가 살아있는 증거라고 합니다. 세상은 부지런함과 성공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도 부지런한 삶 성실한 삶을 가르칩니다. 열심히 늦게까지 남아 학교 일을 하는 사람들을 대단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마르크스의 사위로서 철저한 공산주의자인 라파르그는 놀랍게도 성경을 인용하여 바쁨에 대해 일격을 가합니다. “들에 핀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누가복음 12장 27절) 




  과연 게으르게 살 수 있을까요? 참 답답한 소리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누가 모르냐고, 누군 게으르게 쉬고 싶지 않아서 이러고 있냐고 따지시는 소리가 들립니다. 하지만 좋은 교사는 열심히 살기보다는 바쁨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더 말을 듣지 않고, 각종 행사와 업무가 몰아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 2월부터 학기 준비로, 3월부터 6월까지 정신없이 달려온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왜 바쁘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교사모임과 전문모임에서 대표와 리더로 섬기시는 분은 더더욱 한 호흡 쉬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이 두 권의 책이 다시 숨을 고르고 남은 1학기를 마무리에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조금 게을러도 됩니다. 실수해도, 천천히 해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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