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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노 Mar 07. 2021

23 누구를 위한 학교인가?

학교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 학교에 모여 볼까?


같은 학교에서 근무해 보고 싶었습니다. 오랫동안 교사 모임에 참석하면서 함께하는 선생님들과 교육 관련 책을 읽으며 새로운 학교에 대해 꿈을 꾸기도 하고 기존의 학교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같이 한번 모여 보자 말하기도 했습니다. 몇 해 전 정말 신기하게도 제가 속해 있는 교사 모임의 선생님 몇 분이 같은 학교에 발령받게 되었습니다. 변두리에 있는 작은 학교였습니다. 저도 학교를 옮길 때가 되어 그 학교를 지원했습니다.

진짜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들이 선호하지 않는 학교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12학급의 소규모 학교였기에 마음 맞는 선생님들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습니다. 마침 교장 선생님도 아이들과 선생님의 입장에서 학교를 경영하고자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실제로 학교의 많은 업무들이 간소화되어 있고, 교육과정도 융통성 있게 운영되고 있는 학교였습니다. 옮긴 첫해에 학교에서 자진해서 공개 수업을 지원했습니다. 교사 모임 선생님들을 모시고 제 수업을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교사 모임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 안에서 다양한 모임을 만들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저는 겁도 없이 교육과정부장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선생님들과 함께 멋진 교육과정을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겨울 방학을 활용하여 교육과정 관련 책도 읽고 생전 보지도 않던 지역의 교육계획과 학교교육계획서를 찬찬히 읽으며 교육과정을 준비했습니다. 선생님들과 모여 학교 비전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돌아보면, 퇴임이 얼마 남지 않으시고, 인품이 좋으신 교장 선생님께서 처음 교육과정 업무를 하는 저에게 다 일임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일이 일어났습니다. 연구학교로 선정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교육과정부장과 연구학교 주무를 함께 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즐거웠던 저의 학교생활은 비극으로 변했습니다. 승진 점수를 주는 연구학교로 선정되자 소위 선수(?)로 불리는 분들이 학교로 발령받아 오셨습니다. 그에 비해 전 이상 가득 초짜 교육과정부장이었습니다. 저는 순수한 마음으로 연구학교 주제를 우리 학교 교육과정에 어떻게 녹여 낼지 고민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연구학교 주제에 맞는 경험을 시킬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연구학교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저만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부장회의에서 저는 요령 없는 부장이었습니다. 선수(?) 부장님들께서는 연구학교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일단 비슷한 주제의 연구학교 보고서를 찾는 것이 핵심이라 했습니다. 타 교육청 사이트를 잘 뒤져서 주제가 같은 연구학교 보고서를 찾고 거기에 맞추어 계획서를 다시 써야 한다 했습니다. 심지어 다른 학교 연구보고서를 보고 우리 학교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이해하기 어려웠고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해 동안 연구학교 업무를 진행하고 난 뒤 다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FM으로 연구학교를 운영하려 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뒤늦게 내려오는 예산은 모든 행사 일정을 변경하게 했고, 막상 내려온 예산은 마음대로 쓸 수조차 없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로 쓰인 회계 규정은 저를 답답하게 했습니다. 거기다 모든 학교가 맡기 싫어하는 공모 사업이 있으면 학교로 연락이 왔습니다. 연구학교 하는 김에 같이하라고 말입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연구학교 운영의 핵심은 주어진 예산을 규정에 맞게 잔액 없이 쓰는 것과 연구학교 보고서를 양식에 정확히 맞추어 제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연구학교를 운영하기에 1년은 너무나 짧은 시간입니다. 연구학교 지도위원이셨던 장학사님도 “어차피 1년짜리 연구학교니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미련하게 일하는 저를 걱정해서 하신 이야기였겠지요.

도대체 왜 연구학교를 하는 것일까요? 교육청은 예산을 투입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남기는 실적을 위해서 하는 것이고, 교사는 승진, 전보 점수를 받기 위해 한다는 것, 이것이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겠지요. 제도와 시스템이 원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게 한 것입니다. 그럼 저는 무엇을 얻었을까요? 일단 엑셀을 잘 다루게 되었습니다, 한글 편집도 잘하게 되었고요. 마지막으로 교육청과 지역교육청에서 공문이 오면 왜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일을 빨리 끝낼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통찰력(?)을 장착하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슬픈 일이었습니다.

물론 슬픈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즐겁게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을 함께 모아 준 교사 모임 선생님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전시성 연구학교가 아닌 교사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신 교장, 교감 선생님의 힘도 컸습니다. 그러나 한 해가 끝났을 때 우리가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뿌듯함과 전우애만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연구학교 주제 단어를 듣기만 해도 몸서리치게 되는 부작용도 함께 남겼습니다.


학교 자치가능해?

목적이 사라진 학교 교육을 경험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학교 거버넌스, 학교 자치라는 말들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듣자마자 ‘이것은 불가능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점을 찾았습니다. 누군가는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책으로 했을 거라는 기대감을 안고 서점 문을 열었습니다. 오늘 선생님들께 소개해 드릴 《학교자치》라는 책은 그렇게 제 손에 쥐어졌습니다. 도서 검색대에서 학교 자치라는 단어를 검색해서 처음 나온 이 책의 저자는 놀랍게도 좋은교사운동 정책 브레인이셨던 김성천 선생님(현 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께서 쓰신 책이었습니다.

김성천 외 6인 《학교자치》

김성천 교수님과 함께 6분의 현직 선생님들께서 쓰신 책입니다. 굉장히 이해하기 쉽고 편하게 쓰인 책입니다. 이 책은 교사가 소진되는 이유를 중심으로 한 내부의 시선, 교육청을 중심으로 한 제도적 시선, 마지막으로 학생, 학부모, 시민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까지 학교 자치를 바라보는 시선을 3부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 첫 부분에 나오는 <교사는 왜 소진되는가?>를 읽으며, 제가 그 학교에서 경험한 일들과 감정이 저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현실에 대한 비판과 안타까움만 있는 책은 아닙니다. 교육의 본질 회복을 위해 필수적인 학교 자치를 위한 방안들을 상당히 현실성 있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더워 아무것도 하기 싫은 요즘입니다. 이 와중에 ‘생각도 하기 싫은 학교 이야기라니….’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그네와 같은 인생길에서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일은 익숙한 우리의 일상을 바꾸는 일입니다. 학교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선생님들이 되시길 기도하며 이 책의 일독을 권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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