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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노 Mar 07. 2021

24 거제도 이야기

다 우리 가족들 아이가!


풍요의 섬 거제도?

거제도를 아시나요? 선생님들에게 거제도는 어떤 섬인가요?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 멸치로 유명한 섬, 아니면 한국전쟁 때 설치된 포로수용소가 있던 섬인가요? 부산, 경남 지역에 사는 선생님들에게 거제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력한 중공업 기업의 조선소가 있는 섬입니다.

거제도는 풍요로운 섬입니다. 저의 외삼촌은 거제도 조선소 중 한 군데를 오랜 기간 다니셨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바로 회사에 들어가셨습니다. 어린 시절 외삼촌을 통해 바라본 거제도는 풍요의 섬이었습니다. 명절 때 외삼촌 가족과 만나면 늘 해외 다녀온 이야기, 골프장 다녀오신 이야기를 들었더랬습니다. 물론, 세뱃돈도 늘 넉넉히 주셨습니다. 배를 설계하고 만드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커다란 배를 만드는 일을 하시는 외삼촌의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거제도

거제도는 중공업의 섬입니다. 우리나라 3대 조선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릴 때 거제도에 가게 되면, 섬이 아니라 공업 도시에 간 것 같았습니다. 분명히 제가 살고 있던 부산이 더 큰 도시인데 물가는 항상 거제도가 높았습니다. 집값도 거제도가 높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 이상으로 높은 급여를 받는 노동자들이 있는 활기찬 섬, 그것이 어린 제 기억에 남아 있는 거제도였습니다. 경남에 사는 다른 선생님들께서도 비슷한 기억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거제도는 원주민보다 타지에서 온 사람이 더 많은 섬입니다. 대기업 조선소가 있기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IMF 때도 타격을 받지 않았던 조선업이었기에 제 주위 사람들 중에서도 학교를 졸업하고 거제도로 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공대를 졸업하고 거제도에 취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정 안되면 거제도로 가면 된다고 말하는 형이나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거제도에 있는 대기업에 취업한 사람들이 하나둘 회사를 나왔습니다. 늘 자신감 넘치던 외삼촌이 회사에서 나온 시기도 이때쯤이었습니다. 

그 이후 조선소가 부도 위기를 겪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에게 거제도 조선소의 부도는 뉴스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정규직이었던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협력업체 직원으로 신분이 바뀌고 사람들은 하나둘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섬 거제도는 떠나는 사람들의 섬이 되었습니다. 이제 주변 사람 중 거제도에서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저는 거제도를 잊었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 소개해 드릴 책인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잊고 지냈던 거제도가 기억났습니다.

양승훈,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다 우리 가족들 아이가?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의 중공업 발전사를 ‘가족’ 이야기로 풀어 나갑니다. 여기서 ‘가족’은 우리가 생각하는 가정이 아닙니다. 회사의 직원들이 바로 ‘중공업 가족’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특이한 이력을 계기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현재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첫 직장을 거제도 조선소로 취업하게 됩니다. 문과 출신인 저자는 거대 조선소가 얼마나 대단한 기업인지 몰랐습니다. 덜컥 합격하고 나서야 회사의 대단함을 알게 됩니다. 저자는 이후 이 경험을 바탕으로 중공업 도시로서의 거제도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2016년에 개봉한 영화 <뗀뽀걸즈>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영화는 거제도에 있는 작은 특성화고등학교 여학생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학교에 있는 댄스스포츠 동아리 학생들과 지도 교사인 체육 선생님이 함께 전국댄스스포츠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사이사이에 드러나는 학생들의 고민과 가족사를 통해 거제도의 현실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도 재미있습니다.) 거제도라는 섬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저자는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서술해 갑니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나라 공업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섬에 땀과 노력으로 지어진 조선소 건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노동자들의 자부심과 자신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출퇴근할 때 작업복에서 일상복으로 갈아입는 것이 아니라 깨끗이 다림질된 출퇴근용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선배들을 보고 저자는 놀랍니다. 왜? 굳이 이름표랑 직급까지 다 붙어 있는 작업복을 입고 퇴근하느냐고 묻는 그에게 선배는 대답합니다. “불편하다 아이가? 요 앞에 나가면 술집이든 식당이 어디든 다 우리 가족들 아이가?”

그제 서야 저자는 거제도 조선소에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가족’임을 알게 됩니다. 아침 일찍 통근버스가 아버지들을 회사로 태워 준 다음, 통근버스는 스쿨버스가 되어 그들의 자녀들을 학교로 등교시켜 줍니다. 자녀들을 등교시킨 스쿨버스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 버스가 되어 집에 있는 엄마들을 실어 나릅니다. 그렇게 같은 평수의 아파트, 같은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중공업 가족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선업의 변화와 침체되어 가는 과정에서 ‘중공업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저자는 어떻게 조선업이 혼란에 빠지게 되었는지, 내부자와 외부자 양쪽의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달라진 환경과 기술에 예전의 방식을 고수한 결과, 전에는 이점으로 작용하던 방식이 이제는 장애가 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논리적인 방식이 아닌 현장에서 의사소통하는 방식과 설계와 용접 등 제조 과정에서 어떻게 문제가 발생하는지 설득력 있게 이야기합니다. 아울러 저자가 산업도시 거제의 미래를 그리는 부분은 흥미롭습니다.




유토피아와 딜레마

저는 주로 타인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돌아봅니다. 이 책은 사실 우리 선생님들의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와 있는 많은 내용은 비단 조선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복잡해진 세계에 오래된 습관으로 대응할 때 사업 전반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 있습니다.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방식을 답습합니다. 그리고 딜레마에 빠져 버립니다.

혹시 우리도 무엇이 문제인지 찾지 못해 불안한 마음으로 기존의 방법을 답습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는 책입니다. 읽기 쉽고 금방 읽어지는 책입니다. 잠시 교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 우리가 교실에서 겪는 문제를 다시금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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