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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노 Mar 07. 2021

28 서울에 살아야만 하는 이유

지방 사람의 하소연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

저는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다니고 심지어 대학까지 부산에서 졸업하고 부산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와 결혼 했을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둘 다 자취를 한 경험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지방 사람입니다. 며칠 전 어린 시절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고3 시절 공부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가장 큰 기준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수 있느냐입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서울대를 위시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만 하면 나중에 휴학하던지, 재수를 하든지 마음대로 해도 되니 일단,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만 하라고 한 시절이었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고등학교 졸업식 때 서울에 있는 대학별로 몇 명 입학했는지 쓰여 있는 현수막을 걸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수능을 치르고 한 달 뒤 성적표가 나올 때쯤 우리나라에 IMF 사태로 불리는 일이 일어났고, 상당수의 친구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대학에서 처음 맞이하는 여름 방학 때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이 고향인 부산에 내려왔습니다. 20여 년 가까이 부산에서 살아온 친구들이 단지 몇 달 동안 서울에 살다 왔음에도 그들의 말투와 옷차림은 우리와 달라져 있었습니다. 저는 서울로 간 친구들이 성공한 것처럼 부러워했고, 함께 있던 친구 중 일부는 재수를 준비했습니다.



 

서울에 살아야만 하는 이유

또다시 20여 년이 지나 《좋은교사》 편집장으로 서울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주변 선생님의 첫 반응은 “이야 출세했네!.”였습니다.(물론, 농담 반 진담 반이었습니다.) 지방에서 이런 일로 휴직을 하는 경우가 잘 없기에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와 가까운 분들도 “그래, 서울에서 많이 배워와라, 좋은 것 많이 보겠네.” 와 같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부산이 우리나라에서 서울 다음으로 큰 도시인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21세기 인터넷과 5G 상용화가 일상인 세상인데 서울과 부산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냐 싶었습니다. 그냥 옛날 느낌으로 저에게 좋은 의미로 얘기해 주신 거로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그렇게 3월부터 서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실이었습니다. 서울은 달랐습니다. 모든 정보와 이슈가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그제야 몸으로 느꼈습니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EBS 다큐 프라임을 보고 있었습니다. 시민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5부작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저와 아내가 본 내용은 도시 재생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경리단길 이야기, 을지로 재생 사업 프로젝트 등의 내용을 중심으로 재밌게 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갑자기 “참, 서울 사람들은 서울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는구나.” 라도 혼잣말을 말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 묻자 아내는 과연 이 프로그램을 보는 전국 사람 중에 을지로 하면 그 주변의 상권과 직종에 대한 느낌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냐 있겠냐. 그런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을지로라고만 말해도 이해되는 이미 그 도시에 관한 배경 지식을 전제로 영상이 표현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해서 자기도 모르게 나온 말이라 했습니다. 사실 저와 아내가 서울에 대한 인식을 이렇게 다시 하게 된 배경에는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오늘 선생님들께 소개해 드릴 책 그레고리 헨더슨의《소용돌이의 한국 정치》입니다.

그레고리 헨더슨《소용돌이의 한국 정치》




소용돌이의 한국 사회

처음에 이 책을 펼쳤을 때는 정치에 관한 책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두꺼운 책은 이방인이 바라본 한국 사회에 관한 책입니다. 저자인 그레고리 핸더슨은 학자 겸 외교관으로 1950년대부터 한국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여러 번에 걸쳐 한국 사회를 들여다볼 기회를 얻습니다. 특히, 그의 직업적 특성상 한국의 많은 정치인과 대화하면서 한국 정치와 사회를 삼자의 눈으로 관찰하게 됩니다.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동질성이 높은 나라입니다. 한국만큼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문화적 공감대와 종교적 공감대를 가진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미국과 같은 다인종 국가와 지금도 종교 분쟁을 겪고 있는 중동 지역과 아프리카 지역을 비교하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리고 한국은 굉장히 오랜 중앙 집권화의 역사가 있습니다. 신라 시대 이후부터 시작된 중앙 집권제는 모든 백성이 자신의 지역을 다스리는 수령을 임명한 왕을 쳐다보게끔 했습니다. 왕이 보낸 권력은 곧 왕의 권력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왕이 있는 곳과 왕이 보내 지역 수령은 다 같은 곳에서 왔습니다. 바로 서울입니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결정권을 중앙인 서울이 가지게 된 다음부터 모든 사람의 관심은 서울로 몰리게 됩니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일단, 서울로 가게 됩니다. 인재와 권력이 서울로 집중되는 모습은 마치 소용돌이치며 하늘로 올라가는 회오리바람처럼 보입니다.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이 전국의 모든 물자와 사람들을 서울로 다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서울을 통해 상상하기 시작합니다. 서울에 가야 성공할 수 있고 출세할 수 있습니다. 서울이 중심입니다. 서울이 곧 대한민국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서울에 몰려들자 한정된 공간과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권력 투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념과 종교가 사실상 동질 한 사회이기에 정책이 아닌 태도와 사소한 것들을 놓고 투쟁합니다. 조선 시대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지금의 눈으로 보아도 너무나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논쟁점으로 삼아 서로를 죽일 듯이 공격합니다. 처음부터 설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권력을 잡아서 우리 편에게 자리를 나누어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신라 시대 골품제부터 조선 시대의 중앙 집권 역사까지 다루며 어떻게 한국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일극 체제가 되었는지, 독립 직후 한국 정치의 혼란상과 연결 지어 설득력 있게 설명합니다.




무엇이 성공인가?

저자는 한국 사회가 다원화될 때 서울로 향하는 소용돌이가 완화될 것이라 합니다. 그가 책을 쓴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지방 자치제도 정착되고 예전과 비교하면 훨씬 다원화된 사회가 되었지만,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는 오랜 역사는 여전히 강고합니다.


작년부터 코로나19가 한국과 전 세계의 이상이 된 이후, 코로나19 이후의 사회는 지금과 다른 사회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됩니다.(이미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새로운 교육,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는 첫걸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적 공간이 어떤 곳인지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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