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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노 Mar 07. 2021

29 이해할 때 함께할 수 있다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있을까?


만화방 그리고 바보상자

어린 시절 학교에서 늘 듣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만화책 그만 봐라. 만화방에 가지 마라. 너무나 익숙한 잔소리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잔소리입니다. 학교에서 만화책을 보면 늘 혼났습니다. 소지품 검사를 하는 날이면 친구들은 만화, 책을 숨길 장소를 찾느라 정신없었습니다. 알림장에는 언제나 만화방 가지 않기는 알림장에 쓰이는 단골 문구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만화책을 읽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함께 당시 만화방의 분위기가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가기에는 적절치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보상자는 TV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TV 앞에 앉아 종일 보면 생각하는 기능이 사라져 바보가 된다는 말입니다. 바보 뒤에 상자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지금과 달리 예전의 TV는 브라운관을 이용했기에 그 모양이 상자와 같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저의 아버지는 만화방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대신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매주 몇 묶음씩 헌 만화책이나 만화 잡지 과월호를 사 오셨습니다. 일주일 내내 만화책을 다 읽고 나면 아버지는 그 책을 다시 헌책방에 팔고 다른 만화책을 가져오셨습니다.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다음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당시 모든 종류의 만화책을 다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어려운 개념을 공부할 때면 그 개념을 주제로 다룬 만화책을 먼저 찾아봅니다.


저의 부모님은 희한하게 TV 보는 것도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비디오 플레이어(VCR)를 사 오셨습니다. 당시 부산이 일본과 가까워서 그랬는지 병행수입으로 들여온 것이 의심되는 일제 VCR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후로 매일 저녁 혹은 주말에는 비디오로 수많은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당시 해로운 문화로 취급받던 만화책과 TV는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이 신체의 일부인 시대

과거의 만화방과 바보상자의 자리에는 이제 스마트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그사이 잠깐 인터넷과 피시방이 그 자리에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학교 방과 후에 남학생들을 복도 구석과 운동장 스탠드에 옹기종기 앉아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여학생들은 이에 질세라 놀라운 손가락 놀림으로 끊임없이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습니다. 학생들의 그 모습을 생각만 해도 불편해집니다. 학기 초 스마트폰 중독 검사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학생들에게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부작용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저의 경험 탓일까요? 마음 한구석에 늘 의문이 생깁니다. 스마트폰이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 문제만 있을까? 이미 스마트폰이 신체 일부가 된 지금 부작용만 말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최재붕《포노사피엔스》,쌤앤파커스

그러던 중 책 한 권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 《포노사피엔스》입니다. 이 책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부작용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성세대가 이미 도래한 디지털 문명에 적응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스마트폰을 신체 일부로 사용하는 새로운 종족 포노사피엔스(Phono-sapiens)가 등장했고 이미 디지털 문명으로 시대가 교체 중이라는 이야기를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우리 사회가 스마트폰에 대한 부작용만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기성세대가 새로운 디지털 문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 합니다. 저자는 다양한 자료와 사례를 통해 달라진 시대를 설명하고 이제는 부작용의 뒷면을 보아야 할 때라고 합니다. 스마트폰의 부작용에서 ‘부’자를 빼고 스마트폰이 이 시대에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굉장히 흥미롭고 한 번에 읽어지는 책인 동시에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과 나의 자녀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새로운 관점을 제안하는 책입니다.




가까워도 멀어도 안 되는 사이

처음 학교에 발령받았을 때 선배 선생님께서 저에게 처음 이야기해준 말입니다. 학부모는 너무 가까워도 그렇다고 너무 멀어서도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저는 학부모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학부모와는 거리를 두고 지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학부모님과 만날 기회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학기 초 상담 기간이 다가오면 늘 긴장된 마음으로 학부모님들을 만났습니다. 학생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가능하면 두리뭉실하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학부모에게 틈을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저의 고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제가 시간이 지나 학부모가 되었습니다. 학부모로서 선생님을 만나니 또 달랐습니다. 같은 선생님이기에 담임 선생님의 학급운영 방식이 이해되기도 했지만 때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학부모로서 담임 선생님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혹은 괜한 오해를 받을까 싶어 연락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김성경 외 《소통왕! 학부모를 부탁해》,수업디자인연구소

고민을 마음에 묻고 살던 중 참신한 제목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소통왕! 학부모를 부탁해》입니다. 제목처럼 이 책에는 오랫동안 교사와 학부모라는 두 가지의 정체성을 가지고 학부모와의 소통에 대해 고민해온 필자들의 생각과 사례들이 잘 담겨있습니다.

이 책은 그동안 학교가 학부모를 어떻게 바라보아 왔는지 솔직한 시선으로 설명합니다. 학부모와 소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부모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는 것이고 우리가 학생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학부모에 대해 노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학부모 시선에서 바라본 학교나 교사에 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교사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되 교사의 의도와 달리 학부모에게 전해지는 말과 행동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학부모들과 대화할 때, 학부모에게 전화가 왔을 때, 학부모에게 문자를 보낼 때 등등 상황에 따른 예시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어서 필요한 상황에 맞는 부분을 찾아 읽기에 편리한 책입니다.     




교육의 3주체는 가능할까?

대학교 시절 교육의 3주체가 교사, 학생, 학부모라는 말은 교육학의 기본처럼 배웠지만, 학교 현장은 늘 주체가 아닌 대결의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 언론을 통해 보이는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의 모습을 보면 교육의 3주체라는 말은 거짓말처럼 느껴집니다. 일상에서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가 함께 학교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함께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더운 여름 짧은 방학, 《포노사피엔스》를 통해 우리가 매일 만나는 다음 세대인 학생을 이해하고 《소통왕! 학부모를 부탁해》를 통해서는 학부모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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