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이노 Sep 07. 2021

37 글쓰는 교사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

글짓기와 백일장

학교는 글짓기와 백일장의 천국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제가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만 해도 매월 대회가 있었습니다. 과학의 달, 호국보훈의 달 등등 특정 시기가 되면 계기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스터 그리기와 글짓기 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림에 소질이 없는 학생들이 할 수 없이 선택했던 것이 바로 글짓기였습니다.


그렇게 교실에서 대회를 시작하면 이제 아이들과의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포스터 그리기를 하는 학생들은 바탕을 색칠할지 말지에 대해 계속 저에게 물어오고, 글짓기를 택한 학생들은 몇 장을 쓸지 저와 협상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강단 있게 몇 장 이상은 꼭 써야 한다고 말하지만, 대회가 마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저의 강단은 무너지고 몇 장이라도 적게 쓰려고 한 학생들의 승리로 마무리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글쓰기 대회를 마치고 나면 소수의 아이는 제외하고서는 다들 진이 빠진 채 다음 시간 수업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글짓기 대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글짓기 대회가 아닌 백일장(白日場)이라는 좀 더 근사한 이름의 대회였습니다. 물론, 저는 초등학교 입학 전 유치원 대신 미술학원을 보내신 어머님의 선견지명 덕분에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는 그리기로 각종 대회를 별다른 어려움 없이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가니 더는 미술로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뒤로는 좀 더 간편해 보이는 글짓기를 선택했습니다. 일상과 당연히 멀어졌습니다.


그 당시 나름 책을 읽었는지 책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써서 몇 번 상을 타게 되었습니다. 공부로 그다지 인정받아본 적이 없었던 저에게 상장은 처음 경험하는 보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상을 받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논술시험이란 것이 생겼고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성적을 위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대회에서 상을 받고 논술 모의고사 성적을 위해 결국,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만 한 십 대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된 다음부터는 글쓰기를 잊고 살았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

그렇게 글쓰기에 대해 잊고 지내다 2019년 로고스 서원 글쓰기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글쓰기로 정평이 나 있으신 김기현 목사님께서 다행히 부산에 계셨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이듬해부터 맡게 될 잡지 편집장을 맡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글쓰기 학교는 매주 각자 정해진 양식에 따라 글을 한편씩 써오고 나눈 뒤 목사님과 함께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주로 글쓰기 학교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주로 커리큘럼에 있는 책을 읽고 서평을 써오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때때로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다루는 글을 써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글쓰기 학교를 통해서 뭔가 글을 세련되고 근사하게 쓰는 방법을 배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예상과 달리 글쓰기 학교에서는 글쓰기 방법보다 글을 왜 쓰는가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나누는 가운데 때로는 함께 울고 웃는 시간을 통해 힘을 얻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 년간 글쓰기 학교를 통해 저는 글 쓰는 요령보다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글을 주신 이유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경험한 글쓰기를 담은 책이 있습니다. 오늘 선생님들께 소개해 드릴 《글쓰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김기현 《글쓰는 그리스도인》 성서유니온

이 책은 김기현 목사님께서 오랜 기간 글쓰기 학교를 운영해오시면서 가르친 내용과 고민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입니다. 이 책은 크게 1부: 왜 글을 쓰는가2부: 어떻게 글을 쓰는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보다는 왜 글을 쓰는가에 마음과 눈길이 많이 쏠렸습니다. 왜 글을 쓰는지 모른다면 어떻게 글을 쓰는가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기록하는 행위는 그분과의 관계에 깊이를 더하고 끈기를 요하고, 속도에 반한다. 글쓰기는 머릿속에 떠다니던 것이 구체적인 몸을 입고 종이 위에 강림하게 한다.’(29p)


이 책은 글쓰기를 통한 성공이 아니라 글쓰기를 통한 성장과 영성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책을 읽어나갈수록 글을 쓰고 싶어지게끔 하는 책입니다.

물론, 이 책 2부에서는 글을 잘 쓰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이 잘 정리되어있습니다. 아울러 뒷부분은 글쓰기 연습을 위한 위크북으로 구성되어 있어 글쓰기를 하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연습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글 쓰는 교사

수년 전부터 많은 선생님께서 책을 내고 있습니다. 책을 내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선생님들이 과거보다 책을 내고 싶어 하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이 더욱더 대단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남을 위한 글쓰기만이 살아남은 시대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남을 위한 글쓰기가 넘치는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자신을 위한 글쓰기일지도 모릅니다. 글쓰기란 행위는 우리가 자신을 돌아보고 더 성장하게 합니다. 이제 선생님 자신을 위한 글쓰기를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기록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성장하는 선생님이 되시기를 소망하며 이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36 당신의 시는 무엇입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