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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노 Sep 07. 2021

38 삶을 바꾸는 책 읽기

곤고한 날에는 읽으라

無女獨男

저는 형제가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지만,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당시 정부 시책에 맞추어 저희 부모님은 저 하나만 놓고 가족 계획을 마무리했습니다. 형제가 없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관계 맺는 사회적 기술을 배우기 어렵다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저의 자녀들을 볼 때면 형제가 없었던 어린 시절이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형제가 없다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혼자 있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저는 어린 시절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맞벌이 가정의 아이였으니,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혼자 있으면 이 생각 저 생각 수많은 생각을 합니다. 때로는 상상 속에 빠져 하루를 멍하니 보낼 때도 있습니다.


부모님은 이런 저의 어려움을 생각하셨는지 동네 친구들을 자주 집에 초대했지만, 저의 성격 탓인지 잘 녹아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혼자 자랐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기술의 취약함만 드러났습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저의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만화책과 소설책이었습니다.


제가 책을 친구 삼은 이유는 책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면 아마도 유튜브와 게임에 빠져 살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컴퓨터(PC라는 말보다는 컴퓨터라는 말이 왠지 그 시대와 어울리는 단어입니다.)게임은 있었지만, 지금에 비하면 굉장히 조악한 수준이었기에 저의 흥미를 끌지 못했습니다.


주말마다 보수동 책방 골목에 가서 만화책을 보거나 집 근처에 생긴 책 대여점에 가서 책을 빌려오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일상이었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는 저의 집 형편이 많이 어려워졌기에 저는 점점 더 책에 파묻혔던 것 같습니다. 소실을 읽고 만화책을 읽는 동안은 현실에서 잠시 빠져나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뜻밖에도 책에 도피했던 저의 중학교 시절은 고등학교 진학 이후 논술시험과 국어 시험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논술 시험과 수능 언어영역 성적이 잘 나오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칭찬을 듣게 되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더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더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논술 시험을 잘 준비하려다 보니 소설책이 아닌 인문학책이나 사회과학책을 읽었어야 했습니다. 글 사이사이에 논거를 위한 근사한 근거를 위한 멋진 인용문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인문 고전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곤고한 날에는 읽으라

운 좋게 교대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교대의 특징 중 하나인 심화 과정으로 윤리교육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교대에서 배우는 대부분의 수업에 적응하지 못한 채 보낸 4년의 기간 중 유일하게 재밌었던 수업을 떠올리면 심화 과정 수업이었습니다. 주로 인문 고전과 사회과학 그리고 정치 외교와 관련한 수업은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책들의 연장선이기도 했기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교대 시절의 심화 과정 수업은 처음으로 책을 읽고 고민을 시작할 수 있게 했습니다. 마침 속해있던 동아리고 책을 많이 읽는 동아리였기에 이래저래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졸업 이후 교사가 된 다음부터 인문고전 책은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장에 내일 수업을 준비하고 학급에 일어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실용서 위주로 책을 읽었습니다. 초등학교라는 공간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보다는 닥치는 일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것이 더 요구되기에 읽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읽다가 멈추고 계속 생각하게 하는 인문 고전을 읽는 것은 비효율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새로 나온 책 한 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선생님께 소개해드릴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입니다.

김기현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죠이북스


한 신학자의 인문고전 읽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250쪽이 채 되지 않은 책임에도 15권의 책을 장별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인문 고전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고전이 저자의 삶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쉽게 읽어집니다. 하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습니다.


장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해당 책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문고전을 중심에 둔 책이지만, 실용서의 옷을 입고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듯한 책입니다. 읽는 이의 손을 잡고 함께 도서관을 걸으며 책꽂이에서 책을 뽑아 다정하게 알려주는 저자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저자는 읽음을 통한 실천을 강조합니다.


‘읽기의 최종 목적지는 실천이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에게 읽기란 정보 습득(information)으로 지성이 확장되고, 세계관이 갱신(reformation)되며, 종내는 삶과 세계의 변화(transformation)를 가져오는 것이다. 무릇 읽기에서 저 셋은 항상 같이 있을진대 그중에 제일은 변화다.’(p23, 서문)


라는 저자의 글 속에서 오랜 기간 깊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저자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아울러 인문학에 대해 교회가 가지고 있는 오해를 다루며 오히려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성경을 읽고 배우는 과정이야말로 가장 인문학적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위기 가운데 있지만, 여전히 교회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적 배경 안에서 성경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방식의 성경 공부를 진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인문학적 정신과 방법이 일치한다. 일반 고전만이 아니라 기독교 고전과 영성 고전을 읽게 하고, 모든 책의 기준이 되는 경전, 곧 성경을 읽게 하는 것, 성경으로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을 습득하게 하는 것, 그 일을 교회가 할 때, 교회는 희망이다.’(p62~63, 3장 인문학을 한다는 것)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에 관해 생각했습니다. 사실 생각하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인생을 살아갈수록 생각하는 것이 때로 고통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책을 읽고 영상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곤고할수록 우리는 더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생각할 수 있는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생각이 충분히 쌓였을 때 우리는 말할 수 있고 삶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우리가 생각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읽고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의 길을 잡아줍니다.




내 삶을 바꾸는 책 읽기

20대 시절에는 책을 읽고 수많은 결심과 다짐을 했었습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을 적어두기도 하고 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인스턴트화된 현재의 삶 속에서 인문 고전은커녕 책장을 넘기기도 만만치 않은 것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책은 수 천 년간 변함없이 우리 곁에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인문 고전은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많은 통찰과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학교와 교실에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은 참으로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럼에도 잠시만 멈추고 읽기를 제안합니다. 더구나 이 책은 앞에서부터 읽을 필요 없이 차례를 보다가 마음에 꽂히는 장을 바로 펴서 읽어도 됩니다. 모임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기에도 좋은 책입니다. 읽음을 통해 위로와 격려 그리고 성장이 있기를 소망하며 이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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