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내가 미안해!

by 해피영희

딸이 초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이었습니다. 주변에 도와줄 이 한 명 없는 어려운 환경에 방학이면 딸의 점심이 큰 과제였습니다. 그래도 사무실 점심시간에 밥을 차려주고 토닥이고 돌아서면 대략 한 시간 안에 맞출 수 있었습니다.


2009년 1.1일은 정기인사가 있는 날입니다. 그러니 2008.12월 말일이 되면 인사이동 대상자가 발표되었습니다. 그때 저도 근무하던 부서의 만기였기 때문에 인사이동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상황이 꼬여 인사이동이 되지 않고 기존 자리에 그대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인사이동 발표가 나던 아침이었습니다. 의례이 그렇듯 직원들의 관심은 온통 인사발령 공문에 쏠렸고 누가 어디로 발령 났다 누가 승진했다 분주했습니다. 전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구요. 그런데 우리 팀장님이 그러는 겁니다.

“영희씨는 그렇게 갈 곳이 없던가 보지. 능력 좋은 줄 알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나 보네”


아~ 진짜 염장을 질러도 저렇게 얄미울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평소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성향이 남자 여우이던 그분은 자신에게 잘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잘 구별했고 저 또한 사람을 적으로 만들지 않는 성격에 그럭저럭 위선의 가면으로 좋은 사람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평소 함께 근무하는 다른 팀원들을 너무 괴롭히고 있어서 그 부정의 에너지가 늘 힘들었고 그러다 보니 정말 오래 근무하고 싶은 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제 염장을 제대로 지른 겁니다. 그래도 꾹 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다 되어갈 때 쯤 어이없는 업무로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하는 겁니다.


분명 그리 중요하지도 그 타이밍에 해야 하는 업무도 아니었는데 빈정거리는 말투로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제 성격이 또 남에게 싫은 소리는 죽어도 듣지 못합니다. 기분도 좋지 않고 오기도 올라와서 그날 점심도 굶고 그 상황을 마무리했습니다.


얄미운 팀장의 비난은 처리했지만 그렇게 집에 있는 딸에게 가지 못했습니다.

저도 딸도 점심을 굶게 된 거죠. 걱정이 되었습니다. 혼자서 어찌했나 하는 생각에 팀장님이 진짜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인사이동이 뜻대로 되지 않은 팀원에게 위로의 말을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 아닌가요?

그런데 그걸 깐죽이는 말로 꼭 상처에 소금 뿌리듯 괴롭혀야 하냐는 말입니다.

게다가 뻔히 마음 괴로운 줄 알면서 왜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또 사람을 힘들게 하냐는 거죠.


그런 것이 직장생활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렇게 잔인하게 그 타이밍에 사람 에너지를 빨아 먹어야 하는가 싶었습니다. 눈물이 나지만 울 수 없어 하루 종일 보이지 않는 아픔을 삼키는 호흡을 했습니다.


서둘러 집에 가니 어린 딸이 지쳐 잠들어 있습니다. 점심을 어찌했나 걱정되어 집안을 둘러보다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참았던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배가 고팠나 봅니다.

아직은 어린 딸은 부엌 베란다에 이틀 전 먹고 버려두었던 탕수육을 가져와서 먹은 겁니다.


뭐라 표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낮에 사무실에서의 서러움이 함께 터지며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가슴이 아프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아리고 또 쓰리고 또 아프고...

어린 것이 괜찮을까 걱정도 되고 불쌍하기도 하고 그렇게 부족한 엄마인 내 자신이 정말 싫고~


다행히 겨울이었던 날씨 탓에 아이는 별 탈 없이 지나갔지만 그 날의 일은 제 평생에 지워지지 않는 서러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전 원래 사람을 좋아하고 감정이 많은 사람인지라 사람을 잘 미워하지 않습니다. 실제 20년 넘는 직장 세월에 항상 감사하고 고마운 분이 참 많습니다. 그럼에도 그 팀장님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늘 누군가에서 받는 것을 좋아하고 밑에 직원들을 괴롭히고 당신 가족에게도 나쁜 짓을 많이 하던 분이었습니다. 정말 돈벌이가 이리 매서운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게 해 준 시간이었습니다.

흔들리며 버티며 또 한발 걸어가야 하는 워킹맘의 아픔이 한 켭 더 쌓이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너무 비참한 것은 참고 또 참고 나의 영혼은 점점 피폐해져 갔지만 그 순간에도 제발 조금만 더 잘 버틸 수 있게 해 달라고 속으로 빌고 있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렇게 아파도 제가 원하는 것을 얻을 때 까지 그 사무실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원하던 목표가 과연 진정 행복이었나 의문스럽지만 결국은 가지게 되었을 때 잠시나마 행복을 느낀 것은 사실입니다. 흔히 두 가지를 다 가지려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직장도 아이도 모두 잘하고 싶었습니다. 두 가지 끈을 부여잡고 어느 하나도 놓지 못하고 부들부들 떠는 내가 불쌍했지만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훌러덩 뒤로 나 자빠져 너무 힘들었지만 큰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깜박깜박 지나가는 어려웠던 장면에 좀 더 따듯하게 보듬어 주지 못했던 어린 딸과 제 자신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정말 현명한 나였다면, 그날 어린 딸에게 속상한 마음에 화부터 내지 않고,

따듯한 사과와 포옹을 먼저 해 주고,

제 자신의 가슴이 멍 들도록 때리는 자해보다는 가만히 안아 주는 위로를 주었을 텐데 말입니다.


“딸, 엄마가 정말 미안해. 생명 같은 네가 버려진 음식 먹고 잠든 모습 보니까 피를 토할 것 같더라. 부족한 엄마에게 화가 났는데 너에게 예쁘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영희야, 힘들었지? 마음 아픈 너를 위로하지 못하고 몸까지 아프게 때려서 진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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