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키오스 주문이라는 도움을 준 것입니다.

거창한 봉사나 선행이 아니어도 된다

by 해피영희


“우리 저녁으로 휴게소에서 라면 먹자. 그게 먹고 싶어.”

아들과 남편이 서로 맞장구를 치며 저녁 메뉴는 고속도로 휴게소 라면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서울에서 혼자 재수를 하고 있던 아들은 원래 2021.11.12.에 울산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습니다.

학원의 공식 일정이 그날까지였고 학원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도 무시할 수 없어 힘들지만 혼자서 그날까지 버텨보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저녁 목소리에 에너지가 줄어갑니다. 엄마인 나는 누구보다 아들을 잘 압니다.

너무도 감성이 많고 따듯하고 여린 아들은 점점 다가오는 수능 날짜의 압박과 불 꺼진 집으로 돌아가는 그 혼자라는 외로움에 점점 밀리고 있었습니다.


몸이 힘들어도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던 지난달과 달리 메마름이 가득해지고 있었습니다.

이러다 컨디션 조절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옵니다.

학원에 사정을 얘기하고 아들이 걱정하던 행정 부분을 해결해 주겠다는 대답을 듣고 급히 아들에게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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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다는 기쁨에 아들의 목소리에 다시 힘이 들어오고 웃음이 묻어납니다.

그렇게 토요일 아침 출발하여 밤 10시 30분쯤 울산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중간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오후 6시 30분 ㅇㅇ휴게소를 들르게 되었습니다.


주문을 위한 키오스 기계가 3대 있는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습니다.

남편이 “사람이 너무 많다. 그냥 다음 휴게소에 갈까?”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 저의 장점인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가만 보니 사람은 구름처럼 몰려 있는데 실제 주문을 하는 사람은 몇 없습니다.


발걸음을 옮겨 앞으로 가보니 아무도 키오스에 손가락을 대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는 사람들입니다.

자연스레 라면, 치즈 돈까스, 들깨미역국을 주문하고 카드 결제도 야무지게 하고 주문서와 영수증을 받아서 나옵니다. 문득 왜 사람들이 서있는 것일까? 궁금증이 올라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 모두가 할아버지 들입니다.


그 휴게소에는 이상하게 사람이 주문을 받는 곳이 한 곳도 없습니다.

모든 주문이 키오스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많은 할아버지들 중 키오스를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분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문을 못하고 난감해 하고 서 있는 중입니다.

오지랖이면 둘째가면 서러운 제가 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할아버지 뭐 드실거에요?”

“국밥”

“그럼, 국밥 이렇게 누르시면 되구요, 또 뭐 드실거에요?”

그러니 뒤에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이 “다른거 시키면 주문하기 힘들어 국밥 10그릇 주문해”

그래서 저는 국밥 메뉴 옆에 있는 +표시를 꾹꾹꾹 눌러 숫자 10으로 만들었습니다.

“자 여기 카드 넣으세요. 아니 그쪽 아니고 이쪽이요. 네. 맞아요.”

그렇게 할아버지의 카드는 국밥 10그릇을 계산하고 키오스는 아주 낼름 주문서와 카드 영수증을 뱉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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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뿌듯한 일을 했다는 혼자만의 만족으로 떠나려는 찰나 할아버지 한 분이 제게 화를 냅니다.

“그러니까 왜 이렇게 힘들게 해 놓은 거에요? 이러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용하기가 힘들잖아.”

“음, 에~ 음~ 제가 그런 것이... 아니라....”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그분이 저를 직원으로 착각하신건지 아니면 도와주는 이라고 인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화난 감정을 제게 쏟아붓는 것은 확실했습니다.


괜히 무안해진 저는 얼른 남편과 아들이 있는 테이블로 왔습니다.

“엄마, 할아버지들 도와주고 있더라. 잘해 줬어?”

“응, 그런데 주문하기가 힘들다고 엄마한테 화를 내시더라. ㅋㅋㅋ”

“헐~ ㅋㅋㅋ”

“엄마도 나이 들면 저렇게 될 수 있는데 걱정이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막 이것저것 열심히 시도해 보고 배우는 중이야.”

무심히 남편이 한마디 합니다.

“나는 벌써 저런 것들이 귀찮은데.”

“괜찮아. 당신은 내 옆에 붙어 있으면 되잖아. ㅋㅋㅋ”


어느새 우리 음식 주문번호가 뜨고 우리는 소박하지만 맛있는 저녁을 맞이했습니다.

돈까스, 라면, 들깨미역국 모두가 내 메뉴이고 네 메뉴가 되는 코로나 방역 위반의 식사를 하고 달콤한 커피도 한잔 마시고 그렇게 또 집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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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차 안 자꾸만 할아버지들이 생각납니다. ‘국밥 잘 드셨겠지?’

사람이 살면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 봉사해야 한다. 기부해야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나의 잠재된 부채의식은 늘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정말 그러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뽀족한 감정이 자리 잡습니다.


물론 아이들과 정기봉사도 가고 기부도 하고 나름 사회에 민폐가 되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느끼는 것이 ‘꼭 거창한 봉사나 선행이 아니어도 된다. 내 형제자매, 내 지인들에게 잘하고 생활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을 내 주는 것이 진짜 잘 사는 것이 아닐까?’


즉 말 한마디 곱게 하고 환한 웃음 한 번 더 보여주는 것이 선행이 아닐까 싶은 겁니다.

누군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하는 대화, 자신의 행동이 지지받았다는 안도감, 편안하게 내뱉은 말 한마디가 공감받는 기분, 이런 것들이 정말 필요한 나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요즘은 SNS로 대화를 할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리액션을 잘하고 대꾸를 잘하는 것도 말한 이에 대한 나눔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이 살아감에 힘이 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저 옆에 있다는 느낌으로도 큰 의미가 되니까요.


저는 오늘 10명의 타인에게 따듯한 국밥을 저녁으로 드시게 해 드렸습니다.

누군가는 재료를 생산하고 누군가는 요리를 했지만 저는 키오스 주문이라는 도움을 준 것입니다.

“준아, 엄마는 진짜 이 성격을 어째야 하지. 어휴”

“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면 좋지. 괜찮아. 엄마.”


오~ 이놈, 이렇게 엄마에게 뽐뿌라는 격려를 선물합니다.

이렇게 내 삶의 작은 에피소드 하나가 흘러갑니다. 작은 나눔 하나로 행복이고 사랑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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