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이순간입니다.
7년 전 새해목표 중 하나가 프로필 사진찍기였습니다
내 생애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날을 남기고자 하는 목적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내 모습을 남겨보고 싶었습니다.
당장 프로필 사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재취업을 할 것도 아니니 이왕 찍는 사진 날씬하고 예쁘고 싶은 욕심이 났습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좀 하고 찍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날은 가고 몸은 더 동그랗게 변해가는 겁니다.
이렇다 정말 시간만 가겠다 싶어 사진관에 예약을 하고 무작정 그날에 맞춰 그냥 갔습니다.
가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본 메이크업에 머리는 드라이 정도 해주었고 옷은 평소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가는 조건이었습니다.
비용을 좀 더 주고 전문적인 곳을 찾았다면 다른 연출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그때만 해도 프로필 사진이라는 것이 막 개념만 가지고 있을때라 돈주고 멀쩡한 보통의 날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별스러웠습니다.
실제 의상실에는 면접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위해 하얀 블라우스와 까만 정장들이 즐비해 있는 곳이었습니다.
젊은 남자 사진사님은 신나는 이야기로 웃음을 빵~ 빵~ 터지게 해주었고 덕분에 자연스러운 웃음을 활짝 꽃 피울수 있었습니다.
예쁜 원피스 사진 몇 벌과 그동안 열심히 운동을 통해 만든 몸매를 뽐내고자 청바지에 탑브라 한 컷을 담았습니다.
그때는 점점 나이 들어가는 제가 안쓰럽고 조급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요즘 그 사진을 다시 보니 그때가 나름 꽃 같은 순간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정말 오늘 이 순간이 내 생애 가장 젊고 아름다운 순간이 맞구나 싶습니다.
그렇게 매번 과거가 그리도 그립습니다.
며칠 전 딸아이 방에 누수가 발생하여 바닥공사를 다시 했더니 일시적으로 방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밤마다 딸은 잠자리 유목민이 되어 동생 방에 자기도 하고 거실에서 잠을 자기도 합니다.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엊그제부터는 안방에서 저와 함께 잠을 자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 잠을 깨야 하는데 피곤에 겨운 몸을 뒤척이다 순간적으로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작고 따듯한 손바닥이 제 등을 가만히 만져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왜? 딸?”
“엄마, 아픈거 아니지? 갑자기 이상해서 확인해 보는거야.”
“괜찮은데. 고마워. 얼른 자.”
그 잠결에 딸의 세심하고 고운 정성이 온몸을 행복하게 합니다.
그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제 인생은 새로운 삶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보호하고 책임져야 하는 생명에 대한 환호와 부담으로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느새 세월이 지나고 그 아이가 나를 돌아보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졸리운 눈을 비비고 밖으로 나와 공복 물 한잔, 사과 한 알 그리고 약간의 탄수화물을 챙겨 먹고 신문읽기와 독서를 합니다.
밤새 세상에 다양한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어둑하던 동이 트고 차가운 새벽공기도 어느 정도 물러간 듯 한 시간, 따듯하게 옷을 입고 조깅을 갑니다.
오늘따라 힘없는 몸이지만 또 토닥토닥 천천히 달리다 보니 열이 올라오고 땀이 납니다.
새벽 운동 시간은 제게 있어 성찰과 사색의 공간입니다.
다양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갑니다.
‘설날이 며칠 안 남았구나. 코로나가 참 심하다. 엄마 12월 병원비는 얼마가 나오려나?’
‘아~ 엄마~’
또 부지불식간에 눈물이 납니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엄마에게 전화도 못했고 엄마도 전화가 없습니다.
이번 설날도 엄마는 병원에서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2019.2월 엄마가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미친 듯 재활치료를 한지 딱 1년이 되던 날, 2020년 설날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너무도 격렬하게 집에 가고 싶다고 애원을 했습니다.
명절인데 병원에서 보내기 싫다고, 따듯한 방안에 맛있는 음식 먹으며 사람 구경을 하고 싶다고.
자신 없어 하는 아버지와 오빠를 설득하고 병원의 외출 허락을 받고 엄마를 시골집으로 모시고 갔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던 엄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살고 싶어 악착같이 재활을 하고 미친 듯이 삶에 집착하던 시간이었습니다.
몸에 좋다 싶은 것은 다 먹고 다 하던 시간이니 정말 그 정성으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었습니다.
그런데 올 가을 고관절 수술 후부터 달라졌습니다.
코로나로 면회도 안 되고 엄마 혼자 갇혀 정서적, 신체적 자극이 없습니다.
점점 몸과 마음과 정신이 혼미해져 갑니다.
글을 쓰는 중간 엄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밥 먹었어?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먹고싶은거 없어?”
“없다.”
“과일은 있어?” “응, 있다.”
“엄마. 사랑해!” “응”
점점 짧아져가는 대화~
언젠가는 너무도 당연했던 일들이 이제는 기적 같은 일이 되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이 너무도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늘 성공과 부를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 나는 왜 남들보다 더 누리고 더 최고가 되지 못하는가?’ 투덜거렸습니다.
다만 지금 내가 누리지 못할 뿐 멀지 않은 시간 나는 반드시 다 가질 것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있는 무언가를 그리며 지금 이 순간을 가벼이 여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쩜 7년전 프로필 사진처럼, 몇 년 후 나는 오늘 이 순간이 참 건강하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엄마가 혹시나 아픈 것은 아닌가 잠결에 보살펴보는 23살 살가운 딸과 새벽 조깅으로 땀 흘리며 삶의 기운을 얻는 내 건강과 나의 존재가 필요한 직장이라는 공간까지~
이 또한 더 무엇이 필요할까 싶습니다.
엊그제 승진한 남편이 사무실로 들어온 축하 화분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어, 행복나무네~”
“이 나무 이름이 행복나무야? 이름처럼 행복이 많이 들어오려나?”
“당신은 지금보다 행복이 더 필요해? 지금 안 행복해?”
“아니, 그런건 아닌데~~~”
우리는 오늘이 아닌 내일 반드시 더 나은 순간을 만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이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