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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철희 Jun 06. 2024

한자(漢字)를 사유하다

손 수(手)

인간과 다른 동물의 차이점으로 꼽히는 점 하나가

인간은 손을 쓴다”는 것이다.

인간은 손으로 하는 정교한 작업을 통해

다른 동물들은 결코 수행하지 못하는 일들을 해왔다.

손을 제대로 놀린 원시시대의 인간은

돌을 깨서 만든 날카로운 도구로 사냥하고

식물에서 실을 뽑아 바느질을 해서 옷을 지었으며

먹을거리를 손질해 안전하고 맛있고 소화하기 좋은 음식을 조리했고,

이렇게 시작된 문명은 발전을 거듭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세계로 이어졌다.



이렇게 놀라운 위업을 빚어낸 손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부위라고 생각해서인지

한자를 만들고 써온 이들은 손을 사람과 동일시한 듯하다.


“손”을 가리키는 한자 “”에

어떤 기술에 정통하거나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손을 써서 나무를 다루는 사람은 목수(木手)라 부르고

돌을 다루는 사람은 석수(石手)라 부른다. 

활을 쏘는 병사는 궁수(弓手)고

총포를 다루는 사람은 포수(砲手)다.

운전수와 신호수 같은 단어도 있다.

어떤 사람이 손을 써서 하는 전문적인 작업이

그 사람의 직업과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통용되던 단어인 “숙수(熟手)”에 해당하는

오늘날의 단어는 “요리사”나 “셰프”다.

계란 완숙(完熟)이나 반숙(半熟) 같은 단어에서 보듯,

 “숙(熟)”은 “삶아서 익히는” 조리 방법을 가리킨다.

굽기, 튀기기, 훈제하기 등 많은 조리방법이 있는데도

요리사를 굳이 “숙수”라고 부른 걸 보면

과거 동양권 사람들은 “삶아서 익히기”를 대표적인 조리법으로 여긴 듯하다.


그런데 직업을 가리키는 단어들 중에는

“手”가 들어있는 게 조금 의아한 것들도 있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歌手)와 춤을 추는 무용수(舞踊手)가 그렇다.


“손을 많이 쓰면 치매 예방에 좋다”는 말이 있고

“한국인은 젓가락을 쓰기 때문에 머리가 좋다”는 주장도 있다.

얼마나 타당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手”를 머리를 쓰는 활동과 연계시킨 용법들을 보면

옛날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제법 그럴싸하다고 여긴 듯하다.

수를 쓴다”는 표현은 손을 머리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는,

그래서 “손이 하는 일”은

“머리가 내린 판단”으로 이해해도 된다고 보는 시각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손으로 하는 대화”라는 뜻의 “수담(手談)”이라고도 불리는 바둑에는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 같은 표현이 있다.

“수 싸움,” “덜컥 수,” “꼼수” 같은 단어들이

모두 “手”의 이런 용법과 관련된 단어들이다.


“手”는 “어떤 일을 하는 솜씨”를 가리킬 때도 사용된다.

고수(高手)와 하수(下手) 같은 단어들이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일본어에는 “죠즈”라고 발음하는 “상수(上手)”라는 표현이 있는데

“~을 잘한다”는 뜻이다.


“손”은 “손을 가진 사람”을 대표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아랫사람을 뜻하는 수하(手下)라는 단어가 그런 단어인데,

“상대방,” “적(敵)”을 뜻하는 일본어 “상수(相手, ‘아이테’라고 발음한다)”도

비슷한 용법의 단어다.


사기도박을 다룬 도박영화 <타짜>에는

손은 눈보다 빠르다”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절묘한 도박꾼이나 마술사의 손놀림을 보면

이 대사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손가락을 잽싸고 능란하게 놀릴 수 있기에 세밀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손은

이렇게 상대방을 현혹시키고 속일 가능성이 큰 신체부위다.


그에 반해, 손과 손가락에 비해 움직이는 속도가 느리고 운동범위가 좁은데다

정밀성도 한참 떨어지는 발은 상대적으로 정직한 부위다.

어떤 사람의 발은 그 사람이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그 사람이 어느 쪽에서 걸어왔고 어느 쪽으로 향하는지를

비교적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남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우리를 속일 수도 있는 손에 주로 쏠리지

정직한 부위인 발에는 그리 잘 쏠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인 줄 모르고 사람을 잘못 봤다”고 후회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 사람의 손만 집중적으로 봤을 뿐

발은 꼼꼼히 살피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상대방의 손에 시선을 집중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혜택은 인간만의 고유한 손재간에 빚진 바가 크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 못할 테지만

그럼에도 “발의 중요성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를 위해 많은 일을 해주는 손에 고마워하되

나쁜 마음을 먹은 상대의 교묘한 손놀림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옳다는 걸 갈수록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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