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홀랜드 드라이브>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그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번역한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를 추모하는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것을 느꼈기에 이 글을 쓴다.
그를 다룬 책을 두 권이나 번역한 사람이 하는 얘기로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미스터리를 제시하고 그걸 깔끔하게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미스터리를 제시하고는 그걸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이
또 다른 미스터리들을 계속 내놓으며 관객을 미궁 속으로 끌고 가는 걸 즐기는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그것 역시도 미스터리일 것이다.
그런데 린치의 영화들을
“누구도 흉내 못 낼 스타일의 영화들이지만 보기 즐거운 작품들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나도
걸작이라고 여기는 영화가 <멀홀랜드 드라이브>(이하 <멀홀랜드>)다.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건 알지만,
이 영화만큼은 “좋다, 싫다”의 차원을 넘어선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걸작이라는 말을 듣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충분히 짐작이 된다.
이유는 아마도 “<멀홀랜드>는 사실상 줄거리가 없는 거나 다름없는 영화”라는 점일 것이다.
물론, 영화 홍보자료나 영화 소개 사이트들에는 이 영화의 요약된 줄거리가 올라 있을 것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발생한 교통사고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리타(로라 해링)는
기억을 잃고 숨어든 빌라에서
할리우드 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LA에 도착한 베티(나오미 왓츠)를 만나고,
두 사람은 리타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길에 나선다”로 시작될 게 분명한 그 글들은
<멀홀랜드>를 감상하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내가 “<멀홀랜드>를 감상하는 데”라고 썼지
“<멀홀랜드>를 이해하는 데”라고 쓰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하라.
앞에 썼듯,
린치는 리타의 정체를 알아내거나
교통사고의 배후에 도사린 음모 같은 것을 파헤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린치의 관심은 두 사람이 이후에 벌이는 으스스한 탐색 과정에 관객을 동참시켜서는
헤어나지 못할 악몽 같은 수렁으로 끌고 들어가는 데 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일반적인 관객들은 앞뒤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이성적 추론을 통해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데에서 쾌감을 얻으려 드는데,
린치의 영화에서 그런 쾌감을 얻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멀홀랜드>는 비슷하게 생긴 두 여자의 정체,
할리우드라는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실제로는 추악한 공간과
그곳의 배후에 자리한 음모세력 같은 떡밥으로 관객을 유인하려는 영화이자,
이 떡밥들 사이에 이성적인 관계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관객들을 조롱하는 영화다.
TV 드라마로 만들려다가 방송국에서 거절당한 후 장편영화로 방향을 튼 작품인 <멀홀랜드>는
시나리오 작법 강의나 작법서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 방법으로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대중적 스타일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스타일로 만들어진 영화다.
<멀홀랜드>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글을
가끔씩 보게 된다.
그 글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옳다고 보지도 않는다.
나는 그런 글들의 옳고 그름은 <멀홀랜드>를 감상하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멀홀랜드>는 꿈,
그것도 우리를 가위 눌리게 만들고 잠결에 진땀을 흘리게 만드는 악몽과 비슷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가끔씩 엉뚱하고 신기한 내용의 꿈을 꾸고는 한다.
당신도 가끔은 내가 꾸는 종류의 꿈을 꿀 것이다.
그런 꿈들의 전개과정을 생각해보라.
생시에는 생각도 못할 일들이 너무나 자연스레 일어나고
현실에서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무척이나 잘 안다는 듯이 나타나서는
어안이 벙벙해지는 괴상한 일들을 태연하게 벌이고는 한다.
<멀홀랜드>를 보라.
1950년대에 유행했던 춤들을 추는 사람들의 실루엣을 보여주며 경쾌하게 시작된 영화는
곧바로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와 수사에 나선 형사들을 보여준 후
기억을 잃은 리타와 LA에 도착한 베티의 만남을 보여준다.
이 장면들 사이에 어떤 논리적인 연관성이 있을까?
아니, 없다.
일반적인 관객들은 영화가 전개되는 동안 린치 감독이 그런 연관성을 제시할 거라 생각하지만,
<멀홀랜드>는 꿈의 논리처럼 예상치 못한 요소들을 거듭 내놓는 것으로 관객을 배반한다.
그러면서도 린치는 영화에 몰두한 관객의 관심을 계속 움켜쥐고는
한없이 이어지는 미스터리들 속으로,
불쾌하고 섬뜩한 악몽 속으로 관객을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따라서 <멀홀랜드>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을 강렬한 악몽을 꾸고는 깨어난 거나 다름없다.
몇몇 장면을 그런 식으로 연출해낼 감독들은 많을 테지만,
장편영화 길이의 악몽 같은 영화를 만들어낼 감독은 몇 되지 않을 것이고,
불쾌하면서 으스스한 악몽 같은 영화라고 생각하면서도
불현듯 그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들 감독은 린치 밖에 없을 것이다.
<멀홀랜드>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제일 인상적인 장면은 “클럽 실렌시오(Club Silencio)” 장면이다.
리타와 베티는 한밤중에 클럽 실렌시오를 방문해 객석에 앉는다.
중년 남성이 무대에 등장해 공연의 시작을 알리면
레베카 델 리오가 나와 “크라잉(Crying)”의 스페인어 버전을 부르고
두 여자는 영문 모를 눈물을 흘린다.
한창 처절한 노래를 부르던 가수가 갑자기 쓰러진다.
그래도 노래는 계속 흐르면서 이 가수가 사실은 립싱크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알려준다.
사회자와 일꾼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무대로 나와 쓰러진 가수를 무대 뒤로 끌고 나간다.
나는 평생 영화를 보며 훈련해온 대로 이 장면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는 한다.
린치의 영화는 이성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어쨌든 내 분석 결과는 이렇다.
이건 우리 개개인을 조종하는 운명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이 장면에 따르면 우리 각자는 객석에 앉은 “타인(他人)”들 앞의 무대에 올라
운명이 부르는 노래에 맞춰 입을 벙긋거리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가수가 쓰러져도 계속 흐르는 노래처럼,
운명은 우리가 쓰러지건 말건 원래 부르던 노래를 계속 부를 것이고,
운명의 시나리오를 실행에 옮기는 데 실패하고 쓰러진 자는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끌려 나가는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럴듯한가?
생전의 린치는 내 이런 주장에 가타부타 대꾸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주장의 설득력 따위는 그의 안중에 없었을 테니까.
그래도 나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을
운명이 부르는 “관객에게 악몽 같은 영화들을 선사하라”는 내용의 노래에 맞춰
입을 벙긋거리던 가수 같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쓰러져 무대를 떠난 그가
새로 도착한 곳에서도 또 다른 악몽을 빚어내며 잘 지내기를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