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켜야 할 대상과 뜻은 무지무지하게 많은데
만들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글자의 수는 한계가 있는 현실 탓인지,
한자에는 똑같은 글자를 다른 뜻을 가진 다른 발음으로 읽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런 글자들 중에는
“굳이 그렇게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싶을 정도로 쓰임새가 없는 글자도 많다.
어떤 경우에는 “나는 이 글자를 이렇게 읽는다는 걸 안다”는 식의 지적 허영심을 채워줄 용도로
그렇게 쓰이는 게 아닌가,
시험이나 퀴즈에 출제할 의도로 그런 식의 음과 뜻을 만들어낸 건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할 정도다.
그런 생각이 드는 대표적인 글자가 “즐길 락(樂)”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는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자는 산을 좋아한다”는 뜻의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에 등장하는 “樂”은
“락”이나 “낙,” “악”이 아니라 “좋아할 요(樂)”라고 읽어야 한다는 얘기를
국어시간, 한문시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는 했고
이 글자를 읽는 방법은 시험문제로도 틈틈이 출제되고는 했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처럼 “樂”을 “요”로 읽는 다른 경우는 살면서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시험 출제용으로 다른 뜻과 음을 만들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또 다른 글자가
“산수(算數)”와 “수학(數學)” 같은 과목 이름에 들어가는 “셈 수(數)”다.
“數”는 “숫자”라는 뜻과 “수”라는 발음 말고도
“자주 삭(數),” “빠를 속(數),” “촘촘할 촉(數)” 같은 뜻과 음이 있다.
그런데 “數”를 이런 뜻과 발음으로 읽는 글자들이 들어있는 단어들을 접한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앞의 글자들과 달리 또 다른 뜻과 음을 가끔씩 접할 수 있는 글자로는
“죽일 살(殺)”이 있다.
“살인(殺人),” “살생(殺生)” 등의 단어에 쓰이는 “殺”은 “빠를 쇄”라고 읽기도 한다.
“애가 타도록 몹시 괴로워함, 또는 괴롭힘”이라는 뜻의 “惱殺”를 “뇌살”로 읽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잘못 읽은 것이다.
이 단어는 “뇌쇄”로 읽어야 한다.
“뇌쇄”에 쓰인 “쇄(殺)”에는 “매우, 심히”라는 뜻이 있는데,
“殺”가 이런 뜻으로 쓰인 또 다른 단어가 “한꺼번에 심하게 몰려듬”이라는 뜻을 가진 “쇄도(殺到)”다.
“온통 체(切)”는 예전에 시험이나 퀴즈에 자주 나온 글자이자,
실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면서 틀리게 읽었다는 지적도 자주 받은 글자다.
옛날에는 술집의 간판이나 창문에 “안주 일절(一切)”이라고 써놓는 경우가 많았다.
“切”을 “온통 체”로 읽지 않고 “끊을 절”로 잘못 읽은 탓이었다.
“모든 안주를 다 갖췄다는 뜻”으로 “안주 一切”이라고 쓴 것이므로
“안주 一切”는 “안주 일체”라고 읽어야 옳다.
“一切”를 “일절”로 읽으면
“그런 짓은 일절 하지 않는다”에서처럼 “전혀, 절대로”라는 뜻의 단어가 된다.
“복귀(復歸),” “회복(回復)” 등의 단어에 쓰이는 글자인 “돌아올 복(復)”도
다른 뜻과 발음을 가진 글자로,
“復”은 “부활(復活),” “중언부언(重言復言)” 등의 단어에서 보듯 “다시 부(復)”로 읽을 수 있다.
똑같은 뜻인데도 다른 음으로 읽는 글자도 있다.
“수레 차(車)”로도 읽고 “수레 거(車)”로도 읽는 “車”가 그런 글자다.
“自轉車”를 “자전거”가 아니라 “자전차”로 읽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는데,
이건 잘못 읽은 것이다.
그렇다면 “自動車”는 “자동차”로 읽는데 왜 “自轉車”는 “자전거”로 읽는 것일까?
자동차나 자전거나 수레인 건 똑같지만,
각각의 수레를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원은 다르다.
자동차는 기계적 장치에 의해 움직이고 자전거는 인력에 의해 움직인다.
이 차이점에서 알 수 있듯,
“동력장치에 의해 움직이는 수레”는 “車(차)”로 읽고
“사람이나 가축에 의해 움직이는 수레”는 “車(거)”로 읽어야 한다.
따라서 옛날에는 상류층의 이동수단이었고
요즘에는 관광객들이 타는 이동수단인 “人力車”는
사람이 몰고 다니는 수레이므로 “인력차”가 아니라 “인력거”로 읽어야 옳다.
같은 글자를 다르게 읽는데 “차”와 “거”처럼 발음을 정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글자도 있다.
“차”라고도 읽고 “다”라고도 읽는 “차 차(茶) 또는 차 다(茶)”가 그렇다.
“茶”는 “녹차(綠茶),” “찻집,” “차례(茶禮)”처럼 “차”라고 읽는 경우가 있고
“다도(茶道),” “다기(茶器),” “다반사(茶飯事)”처럼 “다”라고 읽는 경우가 있다.
“茶”를 어떤 경우에 “차”로 읽고 어떤 경우에 “다”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없다.
과거에 “茶”가 한반도에 전래됐을 때 “차”와 “다” 두 발음이 모두 사용된 탓에
“茶”가 들어간 단어들을 읽는 발음들이 관용적인 발음으로 정착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