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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철희 Jul 11. 2024

두 농구영화의 흥행 성적이 크게 갈린 이유

<리바운드>와 <더 퍼스트 슬램덩크>

장항준 감독의 <리바운드>와

이노우에 다케히코(井上雄彦) 감독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팀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의

전형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오랫동안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약체 팀이

특정 사건을 계기로 바닥을 치고 올라가며

승승장구하는 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위기에 몰리면서

좌절과 혼란을 겪은 끝에

불같은 투지와 똘똘 뭉친 팀워크를 바탕으로

세상이 깜짝 놀랄 결과를 이뤄낸다는 전개.



두 영화는 2023년에 몇 달 차이로 개봉됐는데,

<슬램덩크>는 흥행 대박을 친 반면에
<리바운드>는 손익분기점에 못 미치는

부진한 성적을 내고 말았다.

똑같이 농구를,

그것도 고등학교 농구를 소재로 한 작품인데도

두 작품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이토록 큰 차이가 난 이유는 뭘까?


<슬램덩크>의 등장인물들은

NBA 선수들이 보여줄 법한 기막힌 플레이를 펼치지만

<리바운드>의 주인공들은

한국 고등학교 농구선수 수준의 플레이밖에는

보여주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슬램덩크>는 북산이 승리하면서 끝나지만

<리바운드>는 부산중앙고등학교가

패배하면서 끝나기 때문도 아닐 것이다.



<슬램덩크>는 30년 넘는 세월 동안 사랑받아 온

원작만화의 막강한 영향력이라는 후광을 입은 반면,

<리바운드>의 바탕이 된

부산중앙고등학교 농구부의 2012년도 실화는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인 데다

주인공 캐릭터의 모델인 실존인물이

불미스러운 사건을 저지른 탓에

영화 홍보에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이

흥행에 영향을 줬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두 영화가 거둔 흥행 차이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또 다른 원인이 있다.



흥행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은 두 영화의 만듦새 얘기부터 하자.

<슬램덩크>도 <리바운드>도 매끈하게 잘 만들어졌다.

원작만화의 만화가이기도 한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원작에서는 거론된 적이 없던

송태섭의 가족사를 전면에 내세우기로 결정한 뒤,

원작만화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던

다른 경기들은 다 생략하고

“북산 대 산왕”의 결전 딱 한 경기에

집중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고는 그 두 줄기를 적절히 뒤섞고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한편으로

지금도 회자되는 원작만화의 많은 장면을

사이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워 넣어서

원작만화의 팬들이

신선함과 익숙함을 모두 느낄 수 있게 해 줬다.

그런데 원작만화 <슬램덩크>의 영향력이

대단히 지대한 까닭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순수하게 작품 자체로

관객에게 안겨주는 감동과 만족감이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고등학생들은 NBA급 플레이를 펼친다.

영화의 매끈함 면에서는

<리바운드>도 <슬램덩크>에 뒤지지 않는다.

<리바운드>는

해체 위기에 몰린 고등학교 농구팀을

엉겁결에 맡게 된 젊은 감독(안재홍)이

슬럼프에 빠진 유망주들과

투지만 좋고 실력은 미지수인 선수들을

한 팀으로 규합한 후 여러 위기를 겪은 끝에

똘똘 뭉쳐 전국대회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과정을

각각의 캐릭터에게 타당성을 부여하고

유머를 적절히 가미하면서 재미있게 그려낸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장항준 감독이 연출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작품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매끈하게 잘 빠진 두 영화의 흥행 성적이

크게 갈린 이유는 뭘까?

앞서 언급한 “원작의 영향력” 같은 이유를 제외하고

꼽을 수 있는 별개의 이유는

“관객들의 영화 관람 성향이 크게 바뀌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극장 입장료가 인상되고

영화 관람에 따르는 각종 비용도 만만치 않게 오르면서

영화 관람은 코로나 이전에 비해

경제적으로 다소 부담스러운 여가활동이 됐다.

이제 관객들은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각적·청각적 쾌감을 제공하는 영화라는 확신이 설 때만

그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향하고,

극장에서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판단이 서지 않을 경우는

나중에 OTT에 올라왔을 때 보는 쪽을 선택한다.

관람 성향이 달라진 관객들에게

<슬램덩크>는 (원작에 대한 추억과 애정 때문에라도)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인 반면

<리바운드>는 굳이 극장에서 볼 건 아니고

OTT에 올라오면 보기에 적당한 작품이 돼버렸다

나는 <리바운드>는 넷플릭스에서,

<슬램덩크>는 디즈니플러스에서 봤다).


시각적 쾌감은 <슬램덩크>는 가졌지만 <리바운드>는 갖지 못한 요소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장항준은 이노우에 다케히코에 비해

핸디캡을 안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장항준에 비해 어드밴티지를 갖고 있다.

화면으로 연출하고 구현할 수 있는 비주얼 측면의,

그리고 그 비주얼로 관객에게 안겨줄 수 있는

짜릿함과 전율 측면의 핸디캡과 어드밴티지를 말이다.


송태섭을 필두로

북산 선수들이 차례차례 그려지며 화면을 채우는

<슬램덩크>의 오프닝이 보여주듯,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스토리의 전개에 어울리는 플레이를 비주얼로 구현하는 면에서는

어려움을 겪을 일이 없다

그는 이미 원작만화를 그릴 때도

NBA 선수들의 플레이를 담은 사진들을

고스란히 만화로 옮겨놓은 적이 있었다).

시험 삼아 연출해 본 비주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림을 찢어버리고

(또는 해당 파일을 지워버리고)

원하는 비주얼을 새로 그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실사영화를 연출하는 장항준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실사영화에서는 연기가 되면서 농구를 잘하는

(또는 농구를 잘하면서 연기가 되는)

배우들을 캐스팅하더라도

<슬램덩크>가 마음껏 보여주는

호쾌한 앨리웁이나 인 유어 페이스 덩크를,

라인 밖으로 나가는 공을 잡으려고 몸을 날리는 허슬 플레이를

박진감 넘치는 비주얼로 뽑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

농구영화를 보려고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입장료가 아깝지 않다고 만족해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그것인데 말이다.

탄성이 절로 터지는 플레이를 포착한 비주얼이

안겨주는 쾌감이 두 영화의 흥행 희비를 가른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었더라도

상당한 역할을 한 요소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 어떤 창작물도 실화의 감동은 이겨낼 수 없다.

그렇다고 장항준이 모든 면에서 불리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가지지 못한

결정적인 무기가 있다.

NBA에 입성하지는 못했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개인적인 성취를 이룬

고등학교 농구선수들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후프 드림스(Hoop Dreams)>를

감동적인 작품으로 만든 요소가,

그러니까 “실화”라는 요소가 그것이다.


“선수 여섯 명으로 구성된 고등학교 농구팀이

전국대회에 출전했는데

그중 한 명이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남은 다섯 명의 선수가

교체 없이 풀타임으로 경기를 치러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한다”는 이야기는

만화에나 나올법한 작위적인 이야기로 들린다.

이노우에 다케히코도

이 이야기로 만화를 그려보라는 제안을 받으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지 않을까?



그런데 <리바운드>의 최고의 장면이자

내가 좋아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걸 보여준다.

Fun.의 노래 “We Are Young”이 흐르는 가운데

영화에 등장했던 장면과

그 장면의 실제 경기 사진이 나란히 등장한다.

“만화 같은 이야기”인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는 사실을

절대로 반박하지 못하도록.

NBA 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투박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이 장면은

그리 큰 시각적 쾌감을 안겨주지는 못하지만

그 어떤 창작물도

실제 사건이 안겨주는 감동을 자아내지는 못한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고서 등장하는

부산중앙고등학교 선수들의 이후 거취에 대한 자막은

다시금 보는 사람을 울컥하게 만든다.

누구는 프로선수가 됐고

누구는 수술을 거듭 받은 끝에 코트를 떠났으며

누구는 농구를 접고 체육선생이 됐다고 영화는 말한다.

선수들 각자에 대한 대견함과 안타까움 등의

감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생각하게 된다.

“농구는 끝나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강양현 감독의 대사는 사실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온 기회 하나하나를

소중히 대하면서

그걸 악착같이 살리려 애써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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