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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철희 Jul 11. 2024

아들과 쥐와 큰 스승

아들 자(子)

시라카와 시즈카는

아들 자()”의 기원에 대해

“갓 태어난, 털이 있는 아기 머리 모양을 표시하는 글자”가

갑골문에 있다고 썼다.

“子”는 원래는 “왕자(王子)”의 신분을 표시하는 글자였지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부자(父子),” “모자(母子),” “자녀(子女)” 등의 단어에 들어있는

“아이, 자식, 아들”로 뜻이 바뀌었다는 게 시라카와의 설명이다.


에는 뜻이 여러 개 있는데,

우선 살펴볼 건 “시간”과 관련된 뜻이다.

“子”는 “자축인묘(子丑寅卯)...”로 시작되는

12 지지의 첫 글자다.

요즘에는 하루를 24시간으로 구분해 생활하지만

예전에는 하루를 12 시진(時辰)으로 구분하고는

각각의 시진에 12 지지를 배정했다.

그래서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는

자시(子時)”에 해당하는 시간이었고,

12시간 뒤인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일곱 번째 지지인 ()”가 배정된

오시(午時)”에 해당하는 시간이었다.


하루의 시간 구분은

12 시진에서 24시간으로 바뀌었지만

과거에 사용하던 시간 구분 관행의 흔적은

우리가 쓰는 단어에 지금도 남아있다.

“子時”의 한가운데 시간인

밤 12시를 가리키는 자정(子正)”이라는 단어는

요즘에도 흔히 사용된다.

“午時”의 흔적은

낮 12시를 가리키는 정오(正午)”로 남아있다.


전기가 없어서 촛불과 횃불 같은 것들이

어둠을 밝히는 도구였던 옛날의 밤은

그리 많은 활동을 할 수가 없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자정”을 전후한 시간을 가리키는

“자전(子前)”이나 “자후(子後)” 같은 단어는 없지만,

활발하게 활동해야 하는 낮의 경우는

시간대를 상세히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오전(午前)”과 오후(午後)” 같은 단어가 사용됐던 것 같다.


“子”와 “午”는

방위 면에서는 각각 “북(北)”과 “남(南)”을 가리킨다.

그래서 “지구의 남극과 북극을 다 지나는 선”을

자오선(子午線)”이라고 부른다.


“子”에는 열매씨앗이라는 뜻도 있다.

12 지지에서 “子”에 배정된 동물인 “쥐”가

새끼를 많이 낳아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기 때문에

이런 뜻이 나왔다는 설명이 있다.

그럴듯한 설명이지만,

내 생각에 이 뜻은 “음양오행”에서 바라보는

“子”의 의미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음양오행에서 

“물(水)”에 해당하는 지지로

“만물의 기운이 잔뜩 압축된 상태”를 가리키는데,

그 상태에서 “열매, 씨앗”이라는 뜻이 나왔을 것이다.


종자(種子)”같은 단어에서 보듯,

“子”는 주위환경과 여건이 맞기만 하면

언제든 당당한 생명체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한껏 압축된 상태를 가리킨다.

물리학과 화학에 뻔질나게 등장하는

“원자(原子),” “분자(分子),” “중성자(中性子)” 등의 “子”도

이런 맥락의 글자다.

이런 뜻의 “子”는

금융과 경제의 영역에서도 사용된다.

이자(利子)”

“시간이 지나는 동안 돈이 열매를 맺는다”는 관점에서 만들어진 글자다.


<성경> 요한복음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 있다.

“子”에는 스승이라는 뜻도 있는데,

한 알의 밀알이 수천 개, 수만 개의 밀알을 낳는 것처럼

큰 깨달음과 진리를 설파하는 것을 통해

엄청나게 많은 제자들을,

“정신적 후손들”을 길러내는

씨앗이라는 관점에서 파생된 뜻으로 보인다.

공자(孔子), 맹자(孟子), 노자(老子), 장자(莊子),”

주자학(朱子學)의 주자(朱子)”에 쓰인 “子”는

모두 이런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스승”이라는 뜻으로 “子”라는 호칭을 얻은 마지막 인물은

조선시대에 한동안 송자(宋子)”로 추앙받았던

송시열(宋時烈)이었다.

“성리학 근본주의자”라 할 정도로

교조적인 입장을 강력히 주장하며 분란을 일으키다

결국에는 “임금께서 하사(下賜)하신 사약(賜藥)”을 마셔야 했던

그가 훗날 “子”라는 호칭을 얻고

“큰 스승”으로 대접받은 걸 보면서

“스승”이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온라인 플랫폼이 발달해

공맹(孔孟)”이나 노장(老莊)”의 시대에는

상상도 못 할 규모의 제자를 단기간 내에 낳을 수 있는

여건이 구비된 요즘 시대에는

왜 그런 스승이 등장하지 않는 건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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