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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철희 Jul 03. 2024

우리 일상에 자리 잡은 용(龍)

별 신, 지지 진(辰)

용은

“뱀의 몸에 새의 다리, 사슴의 뿔과 물고기의 비늘을 갖고 있다”는

상상 속 동물이다.


용이 실존했던 동물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가미해 만들어진 존재인지 여부는 모르겠다.

다만 용의 모양을 본뜬 상형자인

용 용()”이라는 글자의 쓰임새를 보면

고대인들이 “용”을

대단히 고귀한 동물로 숭배했던 건 분명해 보인다.

은 용안(龍顏)” 같은 단어에서 보듯

“임금”을 가리킬 때도 쓰이고,

등용문(登龍門)” 같은 단어에서 보듯

“영웅”이나 “높은 지위”를 가리키는 데 쓰이기도 한다.


각각의 지지(地支)마다 동물이 배정된 12 지지에서

다섯 번째 지지인 지지 진()”에 배정된 동물이

바로 “용”이다.

이 글자는 별 신()”으로도 읽는데,

그렇게 읽을 때 뜻은

“해와 달과 별을 아우르는 총칭”이다.

사극 드라마에 가끔

일월성신(日月星辰)”이라는 표현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 “일월성신”을 압축한 글자가 바로 ()”이다.


은 음양오행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글자(라고 생각한)다.

“일진이 좋다”거나 “일진이 사납다” 같은 표현에서

“그날의 운세”를 뜻하는 단어인

일진(日辰)”에 “辰”이 쓰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머지 지지에는

쥐(子), 소(丑), 호랑이(寅), 토끼(卯) 등

현존하는 동물들이 배정돼 있는데

유독 에만 상상의 동물을 배정한 것을 보면

뭔가 깊은 뜻이 있을 거라는 확신은 점점 커지고,

“辰”이 들어간 글자들에도

뭔가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을 거라고 짐작하게 된다.


농업은

산업화 이전 시대에 백성들을 먹여 살리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다.

그렇게 중요한 산업을 가리키는 글자인

농사 농()”에도 “辰”이 들어있다.

이 경우 “辰”은

동양천문학의 기초인 “28개 별자리(28宿)” 중에서

방성(房星)을 가리킨다.

밤하늘에 방성이 나타나는 건

농사철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農”이라는 글자는

계절의 변화를 세밀하게 정리한

24 절기에 맞춰 농사를 짓던 시대에

“辰”이, 즉 “房星”이 뜨는 시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걸 보여준다.

“農”의 윗부분에 있는 “곡(曲)”은

“밭”을 뜻하는 “밭 전(田)”이 변형된 것이다.


에 “곡식을 자라게 하는 것,”

“무엇인가를 산출하는 것”과 관련된 의미가

담겨있다는 걸 보여주는 근거이기도 하다.

임신(妊娠)”이라는 단어를 보자.

각각의 글자에서 아이를 배는 여자()”를 지우면

“임(壬)”과 “진(辰)”이 남는다.

음양오행에서

은 저수지처럼 큰 물을 가리키고

은 봄철에 초목을 키워내는 기름진 ()”을 가리킨다.

“妊娠”이라는 단어는

많은 물과 기름진 흙이 농사의 필수조건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듯하다.


우리 머릿속에서 용은

항상 꿈틀거리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존재이고

때를 만나면 하늘로 승천하는 존재다.

이 들어있는 글자들 중에는

용의 이런 역동적인 특징을 담아낸 글자들이 있다.


진동(振動)” 같은 단어에 쓰이는 떨칠 진()”

그런 경우인데,

손(扌)으로 잡고 있는 용이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인다”는 뜻이 담겨있다.

에는

“물건을 흔들어 움직인다,”

“마음을 흔들어 움직여서 분발하게 한다”는 등의 뜻도 있다.


벼락 진떨 진()”

빗속(雨)에서 용이 승천하는 모양을 담은 글자다.

용이 승천할 때는

벼락이 치고 세상이 진동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용이 땅 속에서 몸부림을 친다면?

천재지변인 지진(地震)”이 일어난다.

지진 다발지역인 환태평양 조산대를

“불의 고리(the Ring of Fire)”라고 부르는데,

이걸 용이 뿜어내는 불과 연관 지어 보는 건...

지나치게 멀리 나간 걸까?


이 들어있는 글자가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로 간간이 쓰는 표현이 있다.

아지랑이가 이글거리는 사막 저편에

무엇인가가 공중에 떠있는 것이 보이는 현상을

신기루(蜃氣樓, mirage)”라고 부른다.

“획득하는 게 불가능한 목표”나

“실재하지 않는 환상”을 가리키는

“신기루”의 첫 글자인 무명조개 신()”에는

“이무기”라는 뜻도 있다.

“신기루”는

중국의 오래된 신화집인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표현으로,

“무명조개나 이무기가 뿜어내는

기(氣)로 만들어낸 누각(樓閣)”을 가리킨다.

이라는 글자에 담긴 오묘한 뜻을

철저히 이해하고픈 내 욕심이

신기루를 쫓는 짓이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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