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화성인 247>

★ 66 ★

by 윤철희

이사칠은 화성에 가기로 결정했음을 알리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나 그의 화성행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 돼있던 터라

놀라운 뉴스도 아니었고 놀라는 사람도 없었다.


한편, 문광호 목사와 하기로 예정됐던 2차 결판토론은 방송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취소됐다.

토론에 참가하는 두 사람 사이의 정신적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물리적 거리가 너무 큰 탓에 생기는 시간차 때문이었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는 계절이나 시간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가장 가까운 지점과 먼 지점을 기준으로 평균을 내보면 384,400킬로미터쯤이다.

초속이 약 300,000킬로미터인 빛과 전파가 이 거리를 가는 데에는 약 1.255초가 걸린다.

달 근처에 있는 루나 게이트웨이에서 이사칠이 하는 발언을 문 목사가 듣기까지 1.255초가 걸리고

문 목사가 보이는 반응을 이사칠이 확인하기까지 다시 1.255초가 걸린다는 뜻이다.

한 쪽이 발언을 하고 상대방이 그 발언에 보이는 반응을 확인하기까지 2.51초가 걸리는 것이다.


“지구에 있는 토론자와 달 근처에 있는 토론자가 벌이는 토론”이라는

사상 최초의 상황을 맞은 방송사는

본방송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예비토론을 비공개로 진행했다.

예상 못한 변수를 사전에 파악하고 대처하기 위해서였는데,

그 과정에서 “고작” 2.51초가

토론 당사자뿐 아니라 제작진을 답답하게 만들면서

정상적인 토론 진행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라는 게 드러났다.


시간차는 방송 제작진도 방송에 출연하는 두 사람도 방송에 지장을 줄 거라고는 생각 못한 변수였다.

상대가 하는 말을 듣고 즉각 반응을 보이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2.51초의 시간차라는 익숙하지도 않고 견뎌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 맞닥뜨리자 당황하며 허둥거렸다.


제작진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온갖 궁리를 다해봤지만,

두 토론자 사이를 오가는 “전파의 속도”라는 물리적 법칙을 극복할 방법은 아무리 해도 찾을 길이 없었다.

제작진은 결국 방송을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상대가 날린 강펀치를 버텨내고

더 강한 펀치로 반격하며 치열한 난타전을 벌이는 권투선수들처럼

격한 발언을 주고받은 1차 토론을 즐겼던 시청자들은

2차 토론 역시 1차 토론과 맞먹거나 그보다 더 짜릿한 토론이 될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작진이 진행해 본 예비토론은

한쪽 토론자가 날린 펀치를 1.255초 뒤에 맞은 토론자가

그제야 반격하겠다고 날린 펀치가 1.255초 뒤에 상대 토론자의 얼굴을 가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기이한 경기나 다름없었다.

예상치 못한 이런 낯선 경기에 시청자들이 실망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제작진은 문광호 목사와 이사칠에게 방송을 취소하기로 했다며 양해를 구했고,

예비토론을 진행해봤기에 정상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걸 실감한 두 사람은 방송국의 결정을 수긍했다.

두 사람은 방송국의 입장을 이해하며

자신들의 입장을 설득력 있게 펼치려 많은 노력을 기울여 준비한 토론이 무산돼 유감이라는 입장을

대중에게 밝혔다.


그런데 토론 취소는

두 사람에게 상대방이 품은 솔직한 생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뜻밖의 기회를 제공했다.

제작진이 예비토론이 시작한 지 10분도 지나기 전에 진행을 중단시키고 회의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은 제작진이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무료함을 달래려 사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적들’로서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만 했을 뿐 사담을 주고받은 적이 없던 두 사람은

처음에는 꽤나 어색해했지만 얘기가 오가는 동안 분위기는 차차 편안해졌다.

그러면서 지구에 남을 사람과 화성으로 떠날 사람 사이에 그간 맺은 인연을,

훈훈한 인연은 아니었더라도,

기분 좋게 마무리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제작진이 토론 취소를 알렸을 때는

그런 결정이 내려질 거라고 짐작한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영상통화를 하자는 데 뜻을 모은 뒤였다.


두 사람은 토론 일정으로 잡아 비워둔 시간에 영상통화로 얼굴을 맞댔다.

문 목사는 당당한 풍채에 점잖을 때는 온화해보이지만

화낼 때는 무섭게 변하는 얼굴로 거처에서 전화를 받았다.

문 목사의 등 뒤에는 울퉁불퉁한 나무의 형상을 그대로 살린 채로 다듬어 만든

투박하고 아담한 십자가가 걸려있었다.

루나 게이트웨이의 선실에서 위성을 통해 영상통화를 건 이사칠의 등 뒤로는

동그란 현창과 그 너머로 보이는 선체 일부와 저 멀리 떨어진 파란 지구와 불타는 태양이 보였다.


물리적인 거리에서 비롯된 시간차는 토론은 무산시켰지만

두 사람이 여론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솔직한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는 제공했다.

두 사람은 1차 토론에 임할 때는 등 뒤에서 목청이 터져라 응원하는 대중의 시선을 의식해

각자의 신념과 대표하는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려다보니

실제 품고 있던 생각보다 과격한 표현을 쓰고 약간은 억지스러운 주장도 펴야 했었다.


그렇지만 시간차가 나는 이번 영상통화에서는

상대의 말을 더 차분하게 듣고 숙고해서는 자기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면서도

상대를 자극하지 않고 배려하는 단어와 표현을 찾아낼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 덕에 영상통화는 각자가 그간 상대에 대해 품고 있던 오해를 푸는 계기가 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꽤 오랫동안 진행됐다.


두 사람은 1차 토론 때 했던 언사가 너무 과했다고 상대에게 사과했다.

자신과 상대의 의견 차이는 현재 두 사람의 물리적 거리보다 훨씬 더 클 거라던 두 사람의 생각은

화상통화를 하는 동안 크게 바뀌었다.

심지어 두 사람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고,

나아가 공적인 자리에서 펼친 주장하고는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의견을 밝히기까지 했다.


대화는 이사칠을 부르는 호칭에 대해 문 목사가 걸걸한 목소리로 던진 질문으로 시작됐다.

“본명하고 예명 중에 어느 호칭으로 불러드리는 게 좋을까요?”


“이사칠도 좋고 한상진도 좋습니다만...”

이사칠은 별 생각 없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가 말을 끊고는 생각에 잠겼다.
“한상진으로 불러주십시오.

화성으로 떠날 날을 앞둔 마당에 이사칠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럴까요? 알겠습니다, 한상진 씨.

우선은 그간 한상진 씨를 ‘한상진 씨’라고 부른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습니다.

예명으로 부르는 게 옳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여건이 그렇지가 않아서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괜찮습니다. 목사님 입장, 다 이해합니다.

따지고 보면, 저도 용서를 구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잖습니까?

이번 기회에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사람들은 제가 목사님을 미워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사람들 말마따나 저는 목사님을 ‘친애하는 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목사님에 대한 제 심정은 ‘적’이 아니라 ‘친애’ 쪽의 비중이 훨씬 더 큽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목사님도 저를 미워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모니터 화면은 이사칠이 말을 마치고 2.51초 뒤에 문 목사가 빙긋 웃는 얼굴을 보여줬다.

이사칠은 그 얼굴에 웃는 얼굴로 화답하고는 말을 이었다.

“혹시 미워하시더라도 너무 미워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께서 내내 저를 존중해주셨다는 걸 잘 압니다.

목사님께서 생방송을 홍보해주는 꼴이 된다면서 2차 토론에 응하면 안 된다는

주변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2차 토론에 응하셨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여러 모로 감사드립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생각이 다른 분이 있으면 대화하고 소통해서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게 당연한 일이죠.

어떻게, 우주는 어떤가요? 지낼 만한가요?”


이사칠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혹시 ‘우주에 한 번 가볼까?’ 생각하신다면 다시 생각해보시라고 권하겠습니다.

여기 와서 실감한 게 뭐냐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는 걸 원치 않으신 것 같다는 겁니다.

인류는 지구를 벗어나지 말라는 게 하나님의 뜻인 듯합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는 별개의 문제 치더라도,

아무튼 한상진 씨는 거기에 가서 그렇게 깨달은 거군요.”


“인간은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을 때부터 이런 존재였던 것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금지한 것을 아득바득 해내는 게 인간이라는 존재의 특성 아닐까요?

목사님께 고백하자면, 저는 한때는 하나님은 악랄한 분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얄궂은 분이라고 생각할 뿐이죠.”


“하나님은 얄궂은 분이라고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우리에게 이런 짓은 하지 말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선을 넘게 해주는 능력은 그대로 갖게 놔두고는

우리가 안녕과 행복을 위해 그 능력을 발휘했다는 이유로 우리를 나무라고 징벌하시니까요.”


“중요한 건 우리가 안녕과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안녕과 행복이냐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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