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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에 대한 공부를 더 열심히 했어야죠!!!

<1승>

by 윤철희

신연식 감독의 <1승>이 공개된 후 부정적인 평이 많이 보였다.

송강호와 박정민, 장윤주 같은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출연한 여자배구 소재 영화를 비판하는 글이 많은 걸 보고는

“도대체 영화가 어떻기에 비판적인 의견이 많은 걸까?” 궁금했지만

영화를 봐야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렇게까지 못 만든 영화는 아니다”라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영화의 일부 장면들을 담은 숏폼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보였는데

개중에는 조회수가 꽤 높은 것들도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판단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디즈니플러스에 올라온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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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총평부터 하자면

“더 잘 만들 수도 있었는데 꽤나 안이하게 만드는 바람에 결점이 너무 많이 보이는 영화”라는 것이다.

총평은 이렇게 했지만,

<1승>의 기본 설정과 이런저런 요소들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1승>의 줄거리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주축선수들이 떠나고 벤치선수들만 남은 여자배구팀을 인수한 새 구단주 강정원(박정민)은

이렇다 할 경력이랄 것도 없는 감독을 영입한다.

김우진 감독(송강호)과 선수들은

팀이 ‘1승’을 하면 시즌권을 구매한 팬들에게 거액을 풀겠다는 구단주의 공약이 불쾌하지만

실력 차라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는 연전연패를 당하는 수모를 당하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다잡은 팀은 ‘1승’을 거두기 위해 심기일전한다.”

이 줄거리에는 스포츠를 소재로 삼은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인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다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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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승>의 문제는 흔하디 흔한 요소들을 색다를 게 없는 방식으로 모아놓았다는 게 아니다.

이 요소들 각각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묘사만 될 뿐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탄탄한 근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예를 들면, 빈껍데기나 다름없는 팀인 핑크스톰을 인수한 강정원은 어떤 사람인가?

영화는 그를 재벌 2세로 소개한다.

그런데 철부지처럼 보이는 그가 핑크스톰을 인수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굳이 ‘1승’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거는 속셈은 무엇인지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핑크스톰을 떠난 선수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고 남은 선수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지를

영화는 절대 구체적으로 밝혀주지 않는다.

남은 선수들은 오합지졸이었다가 영화가 전개되는 동안 일치단결해서

영화의 감격스러운 결론을 내준다는 역할만 수행하는 존재들처럼 느껴진다.

팀에 남은 선수와 팀을 떠난 선수 중에 쌍둥이 자매가 있다는 게

영화가 끝날 때쯤에야 느닷없이 밝혀지고

부상에서 재활하는 중에도 팀을 위해 출전을 감행하는 선수가 뜬금없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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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승>에서 두드러지는 여러 결점의 배후에는

“배구”라는 종목을 대하는 제작진의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

겨울철 인기스포츠인 여자배구는 “김연경”이라는 스타까지 가세한 덕에 더욱 인기 좋은 종목이 됐다.

방송사들은 모든 경기를 생중계하면서

첨단 장비와 기술을 총동원해 시청자를 사로잡을 비주얼을 뽑아낸다.

그 결과, 나처럼 가끔씩 여자배구를 보는 사람도 배구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게 됐고

중계 화면에 대한 눈높이도 엄청나게 높아져있다.

<1승>을 보러 간 관객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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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승>에 등장하는 배구 관련 에피소드와 비주얼은 어떤가?

배구 문외한의 수준은 벗어난 나 같은 사람도

상대 팀이 넘긴 공이 인이 될지 아웃이 될지 애매할 경우에는

무조건 인이라고 판단하고 공을 받는 것이 배구의 기본이라는 걸 안다.

그런데 김우진 감독은 공을 받으려는 선수에게 공을 받지 말고 놔두라고 지시해서는

팀이 1승을 거둘 수도 있었던 기회를 날려버린다.

배구 소재 영화를 만드는 제작진이 이런 식의 설정을 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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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나는 경기 중간에 감독과 선수들이

이 영화에서 그러는 것처럼 말을 주고받는 일은 없다는 것도 안다.

작전 타임 중인 감독과 선수들의 대화와 상호작용을

카메라와 마이크가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것에 익숙한 관객이 보기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등장시키지 않는 이 영화의 작전 타임 묘사는 어색해 보인다.

<1승>의 제작진은 배구라는 종목의 묘미를 관객에게 제시하고 이해시켜

관객을 배구에, 나아가 영화에 더욱 몰입시키려는 노력을 그리 많이 기울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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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걸 감안하고 보더라도 현실성이 없는 설정은 그 외에도 많다.

경기가 열리기 전이나 경기를 마친 직후가 아닌데도

프로배구팀 감독의 인터뷰가 라이브로 방송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이 영화에서 말고는 본 적이 없다.

제작진은 문오성 감독(김홍파)을 자극하기 위해

정원과 우진이 다른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방법을 쓰게끔 만들려는 고민을 더 해봤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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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승>의 또 다른 큰 결점은 경기 장면의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TV로 중계되는 실제 경기 장면을 보라.

강력한 스파이크를 날리고 철벽 블로킹을 치며 공을 살려내려고 몸을 날리는 선수들의 모습이

관객과 시청자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그런데 <1승>의 경기 장면에서는 그런 박진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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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1승>의 제작진이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애를 썼다는 건 인정한다.

실제 배구선수들을 대거 출연시키기도 했고,

영화 중간의 경기 장면에서는

TV 중계에서는 보지 못한 신선한 앵글과 역동적이고 매끄러운 카메라워크로

긴 랠리를 보여주는 식의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실제 상황이 아니라 감독의 연출에 따라 몸을 놀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선수 출신 출연자들의 몸놀림조차 뻣뻣하고 어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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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승>의 제작진은 영화의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애덤 샌들러 주연의 넷플릭스 영화 <허슬>에 등장하는 농구 장면을,

그와 비슷한 다른 스포츠영화들의 경기 장면을 반드시 참고했어야 한다.

<허슬>의 경기 장면들은 실제 NBA 경기를 촬영한 듯한 실감이 난다.

제작비가 부족하고 제반 여건이 여의치 않다는 건 알지만,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라면 그런 난관은 어떻게든 돌파했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적어도 돌파하려는 노력은 기울였다는 느낌은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1승>이 장점을 전혀 찾을 길이 없는 영화인 건 아니다.

영화의 몇몇 부분에서는 파안대소까지는 아니어도 빙긋 웃음이 지어지기도 했고,

김우진 감독이 선수들에게 하는 “승리할 자격”에 대한 얘기를 비롯한 몇몇 대사는 가슴에 와닿기도 했다.

어쩌면 그런 장점들이 있기에,

그런 장점들이 더욱 부각되는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기에

<1승>의 단점들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1승>을 보면서 뻔한 영화를 만들더라도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느냐 여부가

영화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새삼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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