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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방법을 가리키는 한자들 - 2

불사를 소(燒), 달일 전(煎), 삶을 자(煮), 연기 낄 훈(燻)

by 윤철희

앞글에 이어 이번 글에서도 조리방법을 가리키는 글자들을 살펴보려 한다.


앞글을 올리고 일본을 다룬 동영상을 보다 “불사를 소(燒)”라는 글자를 보게 됐는데,

그 순간 내가 이 글자를 깜빡했다는 걸 떠올렸다.

동영상에서 이 글자는 식당 앞에 세워진, 야키니쿠(燒肉)를 홍보하는 깃발에 적혀있었다.

야키니쿠는 우리나라의 불고기와 비슷한 음식이다.

그리고 나는 “야키”라는 말을 들으면 어렸을 적에 중국집에서 팔던 “야키만두”가 떠오르고는 한다.

그 시절에는 “군만두”를 “야키만두”라고 부르는 게 보통이었다.


일본어로 “야키”라고 부르는 글자인 “燒”에는

“불사르다(불에 태워 없애다), 타다, 익히다” 등의 뜻이 있다.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화재로 모든 것이 다 타버린 상태”를 가리키는

“전소(全燒)”라는 단어에 들어간다.

“燒”는 “불 화(火)”“요임금 요(堯)”가 결합돼 만들어진 글자다.

“요임금”은 먼 옛날에 존재했다는 태평성대를 가리키는 단어인

“요순(堯舜) 시대”에 등장하는 바로 그 임금이다.

옥편을 보면 “堯”는 “머리에 흙덩이를 얹고 있는 사람을 그린 글자로, ‘높다’는 뜻이 있다”라고,

그래서 “燒는 ‘나무장작을 높이 쌓아서 태운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라고 설명돼 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설명이다.

“쌓인 장작”을 표시하려면 “나무 목(木)”을 집어넣어야지 왜 “흙 토(土)”를 세 개나 넣은 걸까?


내가 “燒”를 “고기 구울 적(炙)”과 나란히 놓고 생각해 본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앞글에서 이름에 “炙”이 들어간 대표적인 음식은 “산적(散炙)”이라고 설명했다.

“산적”의 특징은 무엇인가?

“꼬챙이”와 식재료를 불로 직접 굽는 “직화(直火)”다.

그에 반해, “불고기”와 “야키니쿠”는 석쇠나 불판 위에 고기를 얹고 굽는 음식이다.

그래서 “炙”은 고기를 꼬챙이에 꿴 후 불에 직접 굽는 조리방법이고

“燒”는 불판 같은 용기에 고기를 올린 후 간접적으로 굽는 조리방법이라는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이 구분이 옳다고 확신하느냐고 물으면...

확신은 못하지만 그럴듯하게는 보인다고 대답하려 한다.


명절에 차례음식을 장만하느라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자주 거론되는 “명절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있다.

명절이 지난 직후에 언론에 등장하는 이 증후군을 거론할 때면

“전을 지지는 동안 몸에 밴 식용유 냄새” 등의 표현이 동반되고는 한다.

여기서 거론된,

명절음식으로 빠지지 않을뿐더러 빠져서는 안 될 것 같은 음식인

“전”에 해당하는 한자가 “달일 전(煎)”이다.


“달이다, 끓여서 졸이다, 볶다, 지지다” 등의 뜻을 가진 글자인 “煎” 얘기를 하려면

“연화발(灬)” 위에 있는 글자인 “앞 전(前)” 얘기부터 해야 한다.

“前”은 시간적으로는 “먼저”라는 뜻이고

공간적으로는 “앞”이라는 뜻이라고만 생각하고 말 글자가 아니다.

“前”은 “머리 모양”을 가리키는 글자와 “고기”를 가리키는 “육달월(月)”“칼 도(刂)”가 합쳐진 글자다.


이런 글자 구성을 놓고,

“前”이 “과거에 높은 존재에게 바치는 제사를 지낼 때 제사상 ‘앞에’ 칼로 자른 고기를 바치다”는

뜻이 담긴 글자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높은 존재의 앞”이라는 의미에서 공간적인 “앞”이라는 뜻이 파생됐고,

이후 차차 시간적인 “앞”으로 의미가 확장된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보는 것이다.

우리가 명절에 장만하는 동태전이나 육전은

“누군가의 앞에 바쳐진 고기(前)”를 “불(灬)” 위에 얹어서 지져먹는 음식이라는 의미에서

“煎”이라 불렸을 것이다.


앞글에서 “삶기”를 가리키는 글자인 “熟”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역시 “삶기”를 가리키는 또 다른 글자가 “삶을 자(煮)”다.

“삶을 저”라고도 읽는 “煮”를 보면 “연화발” 위에 “놈 자(者)”가 놓여있다.

그런데 “용의자(容疑者)” 같은 단어에 들어가서 “사람”을 가리키는 “者”가 들어있다고 해서

“煮”를 “사람을 삶는” 야만적인 조리방법을 가리키는 글자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者”는 여러 식재료와 물과 양념을 넣고 삶는 데 사용되는 용기인

“냄비”를 가리키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煮”는 냄비에 재료를 넣고 불 위에 얹고 삶는 것을 가리키는 글자다.


“연기 낄 훈(燻)”이라는 조리방법도 있다.

“火”와 “연기 낄 훈(熏)”이 합쳐진 이 글자는

“불을 피웠을 때 나는 연기로 식재료를 익히는 조리방법”을 가리킨다.

“훈제 연어”처럼 불맛이 물씬 느껴지는 음식들이

“훈연(燻煙)”이라는 조리방법에 의해 만들어진 음식이다.

내가 지식이 짧아서인지는 모르겠는데,

훈연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많이 쓰는 조리방법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훈제 연어 같은 걸 먹을 때 나는 풍미는 참으로 독특해서 가끔씩 생각이 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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