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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다스리던 나라의 이름이 "애벌레"인 이유

애벌레 촉(蜀)

by 윤철희

디즈니플러스에 <하늘에서 본 고대 중국>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올라왔다.

인공위성을 비롯한 각종 첨단장비를 이용해 중국의 고대 유적지들을 조사해서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역시 CG를 비롯한 첨단 영상기술을 이용해

해당 유적들의 옛 모습을 재현해서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중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이 다큐 시리즈의 어느 에피소드에는 “촉(蜀) 나라”에 대한 내용이 있다.

<삼국지(三國志)>에서 유비와 제갈공명이 다스리는 바로 그 촉나라 말이다.

<삼국지>의 시대적 배경은 서기 2세기 말~3세기 초인데,

이 영상은 촉나라가 그보다 몇 천 년 전부터 존재했던

역사가 유구한 나라라는 걸 알려준다.

영상에는 중국의 중원과 촉나라를 잇는 가파르고 비좁으며 험난한 길인 “촉도(蜀道)”도 등장한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길을 반드시 봐야 한다.

그러면 유비와 제갈량이 그 땅을 본거지로 선택한 이유를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나비의 애벌레,” “나라의 이름,” “고을의 이름,” “제기(祭器),” “하나,” “혼자” 등의 뜻을 가진 글자인

“애벌레 촉(蜀)”이 어떻게 이 나라의 이름이 된 것인지도 알려준다.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단서는 옛날 옛적에 만들어진 비단 조각이다.

기후가 오늘날 하고는 사뭇 달랐던 그 시대에

이 지역은 비단 직조에 필요한 누에를 키우기에 적합한 곳이었던 듯하다.

비단으로 유명해진 이 지역에 애벌레를 뜻하는 “蜀”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말이다.


프로그램에는 “蜀”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과정도 나온다.

“蜀”의 “원래 글자”이면서 같은 글자로도 통용되는 글자가 “나라 이름 촉(�)”인데,

이 글자는 애벌레의 생김새를 그대로 옮겨놓은 상형자다.

글자 윗부분에 있는 “그물 망(罒)”은 애벌레의 “눈(目)”을 옆으로 뉘어놓은 것이고,

글자 아랫부분은 크게 강조된 애벌레의 눈 밑에 있는 굽어진 몸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렇게 애벌레를 형상화한 글자만으로는

“애벌레”라는 뜻을 전달하기에 모자란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는지,

애벌레라는 뜻을 더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해

“벌레 훼(虫)”를 집어넣어 만들어진 글자가 오늘날에 통용되는 “애벌레 촉(蜀)”이다.


“蜀”과 다른 글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는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글자는 “홀로 독(獨)”일 것이다.

“獨”은 “개 견(犭)”과 “蜀”이 합쳐진 글자로,

이 글자가 “홀로”나 “혼자,” “외로운 사람” 등의 뜻을 갖게 된 건

앞에서 봤듯 “蜀”에 있는 “하나, 혼자” 등의 뜻 때문일 것이다.

궁금한 건, “혼자”라는 뜻의 “蜀”에 “개(犭)”가 합쳐진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옥편은 “개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왠지 모르게 “개소리”처럼 들린다.

차라리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세태를 반영해서

“獨”을 “개를 데리고 산책에 나선 외로운 사람”에서 비롯된 글자라고 설명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촛불 촉(燭)”은 “蜀”이 가진 “하나”라는 뜻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글자다.

“燭”은 “불 화(火)”와 “蜀”이 합쳐진 글자로,

옥편은 이 글자에 “蜀”이 들어간 것은 글자에 “촉”이라는 발음을 부여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촛불을 떠올려보라.

본디 불의 성질은 사방으로 퍼져가면서 타는 것이다.

그런데 촛불은 초 꼭대기에 있는 심지에서 “한 줄기” 불길만 피어 올린다.

“燭”은 이렇게 “한 줄기 불길만 타오르는 모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글자가 아닐까?

“燭”이 들어있는 대표적인 단어는 “화촉(華燭)”이다.

“화촉”은 “빛깔을 들인 밀랍으로 만든 초”를 가리킨다.

이 초는 결혼식에 주로 사용됐기 때문에 “화촉(華燭)을 밝히다”는 표현이

“결혼식을 거행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감촉(感觸),” “촉각(觸覺)” 등의 단어에 쓰이는 “닿을 촉(觸)”

우리가 자주 쓰는, “蜀”이 들어간 또 다른 글자다.

“觸”은 “뿔 각(角)”과 “蜀”이 결합된 글자다.

옥편은 “觸”에 들어있는 “蜀”이 글자에 “촉”이라는 발음을 주는 역할만 수행한다고 설명하지만,

개인적으로 “觸”은 “뿔로 애벌레를 건드리는 모습”을 상형화한 글자라고 생각한다.

“觸”에는 “닿는다”는 뜻 외에도 “뿔(角)”을 갖고 하는 행위에서 파생된

“찌르다, 범(犯)하다”는 뜻도 있다.

“법에 저촉(抵觸)되다”는 표현에 “觸”이 사용되는 것은 이 뜻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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