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얼>에 대한 "리얼"한 리뷰

<리얼>

by 윤철희

넷플릭스에 들어가니 “한 달 안에 서비스가 종료된다”는 안내 자막과 함께

영화 <리얼>이 큼지막하게 걸려있었다.

넷플릭스가 서비스하는 영화들 중에 <리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터였다.

넷플릭스가 글로벌한 논란의 중심에 있는 배우가 참여한 작품을 이용해 미끼를 던졌다는 느낌에

입맛이 씁쓸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마음 한 구석에서 “이번 기회에 <리얼>을 봐볼까?”하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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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은 본 적이 없었다. 워낙 평이 좋지 않은 탓이었다.

나무위키에서 검색해 보니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이해를 못 하겠다”는 평이 난무한다는 내용이 보였다.

글에 넣을 영화 이미지를 찾으려고 네이버를 검색했지만

<리얼>에 관해서는 영화 정보 자체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글에는 인터넷에서 구한 포스터만 넣었다).

도대체 영화가 어느 정도이기에 이러는 건지 궁금했다.

“2000년 이후에 공개된 영화들 중에 좋게 본 영화에 대한 글을 쓴다”는 방침에 따라 글을 써왔지만,

이번만큼은 작품 안팎으로 논란이 많은 영화인 <리얼>에 대한 글을 써보자고,

그렇지만 순전히 작품 자체에 대한 얘기만 하자고 마음먹었다.


우선 <리얼>의 좋은 점부터 얘기하겠다.

<리얼>은 비주얼만큼은 인상적이다.

“꽤 근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도 몇 군데 있었다.

혹평을 받은 대작의 경우에는

“그 많은 제작비를 어디에 쓴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2017년 기준으로는 꽤 많은 액수인 115억 원의 제작비가 든 <리얼>은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지는 않는 영화였다.

색감과 구도, 소품에 신경을 쓰고 비용을 많이 들인 기색이 역력했다.


문제는 잘 빠진 비주얼이 영화 전체를 구해주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리얼>에는 러닝 타임 137분 동안 관객을 매혹시킬 이야기랄 게 없다.

아니,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을 뿐이다

<리얼>의 제작에 관련된 분들이라 하더라도

“관객들이 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식의 얘기는 차마 못할 것이다).


<리얼>에는 카지노와 도박, 중국과 러시아의 조폭, 국회의원, 정신과 전문의와 정신질환,

마약, 성형수술, 맨몸 액션과 총격전, 폭발, 섹스 등

상업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 흥미를 가질만한 요소는 다 등장한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주연배우 김수현은 무려 1인 4역을 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1인 2역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려 한다).

이 많은 요소와 연기력 뛰어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지만,

안타깝게도 <리얼>에는 그것들을 유기적인 작품으로 묶어낼 이야기랄 게 없다.

아니, 있기는 했을 것이다.

그걸 2시간 안팎의 러닝 타임 안에 아기자기하게 담아낼 필력과 연출력이 없었을 뿐.


<리얼>을 보는 동안 떠오르는 영화가 많았다.

제일 먼저 떠오른 영화는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였다.

정체성에 대한 영화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애초에 TV 시리즈로 기획됐다 무산된 후 장편영화로 방향을 튼 영화였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듯 <리얼>은 굉장히 많은 요소를 다룬다.

그 많은 요소를 장편영화 한 편에 담아낼 게 아니라

요소 하나하나를 더 자세히 다룰 수 있는 TV 시리즈로 만들었다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이라면 OTT를 통해 공개할 그럴싸한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물론 감독이 린치처럼 독창적인 세계를 유기적인 작품으로 표현해 낼 연출력을 갖고 있을 거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하지만 말이다.


주인공이 정신질환 탓에 여러 정체성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는

역시 데이비드 린치의 <로스트 하이웨이>가 떠올랐고,

성형수술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한다는 점에서는 오우삼의 <페이스 오프>가 떠올랐다.

그런 요소들을 다루기 때문에 그런 작품들이 떠올랐다는 건 논란거리가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는 법이니까.

많은 영화들이 저런 작품들을 레퍼런스로 삼아 만들어지니까.


<리얼>의 문제는 그런 요소들을 관객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게끔 활용하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일 텐데,

나는 영화 내내 “조폭 장태영”과 “작가 장태영”을 구분하지 못했다.

김수현이 두 캐릭터를 다르게 연기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건 느꼈다.

그는 하이 톤의 목소리를 내거나

<다크 나이트>의 조커처럼 아랫입술을 보란 듯이 내미는 식의 연기로

두 캐릭터를 구분시키려 갖은 애를 다 쓰지만,

나는 “이 장태영”과 “저 장태영”을 구분하지는 못했다.

아마 당신도 그럴 것이다.

넷플릭스가 “투자자,” “작가 태영” 등으로 달아놓은 자막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지만,

어디까지나 “조금의 도움”일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자막조차 없이 극장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의 심경은 어떻겠는가?


극 중 사건들의 시간대를 비트는 구성에서는 <펄프 픽션>이 떠올랐다.

영화 초반에 붕대를 동여맨 식물인간을 보여주고는

영화 말미에 그 장면을 다시 보여주는 구성은

영화 중간에 총에 맞아 죽은 존 트래볼타가

영화 후반부에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걸 보여주는 <펄프 픽션>의 구성을 염두에 둔 것 같은데,

이런 구성은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영화를 더 어지럽게 만들어버렸다.


<리얼>은 액션도 실망스럽다.

<리얼>의 액션은 장태영이 마약 제조공장을 쳐들어갈 때 벌이는 몸싸움과

영화 결말을 장식하는 총격전으로 크게 나뉜다.

김수현이 펼치는 액션은 별로 인상적이지 않다.

그가 주먹과 몸을 날리는 모습은

영화의 액션신을 위해 사전에 정해놓은 합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만 준다.

칼을 든 괴한들이 차에 탄 그를 습격하는 장면을 볼 때는 헛웃음이 지어졌다.


인터넷 밈으로 가끔씩 등장하는 결말부의 액션신을 볼 때는 <매트릭스>가 떠올랐다.

현실성 없는 액션에 대한 조롱이 따라다니는 장면인데,

마약을 흡입하고 느끼는 환각상태에서 펼쳐지는 액션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심한 비난을 살 만한 장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잠깐, 이 장면이 환각 장면인 건 맞는 건가?

영화를 봤는데도 도대체 이 장면이 왜 등장하는 건지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탓에 물어보는 것이다.


어쨌든 영화를 다 보고 내린 결론은

<리얼>의 가장 큰 문제는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내가 이 시나리오에 대해 할 수 있는 얘기는

“무슨 얘기를 하려던 건지는 그야말로 ‘어렴풋이’ 알겠는데,

내 짐작이 맞는지는 확신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의 놀라운 점은

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115억 원이 투자되고 연기력이 빼어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나무위키에는 출연한 배우들이 밝힌

“시나리오를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등의 소감이 등재돼 있다.

그런 소감을 밝힌 배우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해도 안 되는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걸까?

출연료를 준다니까?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인데,

아무튼 배우들의 출연 결정에 따라 <리얼>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진 현실은

“리얼”이라기보다는 “환상”에 더 가깝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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