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같은 글자들이 중복돼 만들어진 글자들 - 1

수풀 림(林), 나무 빽빽할 삼(森), 불탈 염(炎) 등

by 윤철희

자료에 따르면,

세상에 존재하는 한자의 개수는 적으면 1만 자, 많으면 10만 자라고 한다.

내가 참조하는 옥편에 수록된 글자는 17,000자를 넘는데,

거기에 수록된 17,000자 넘는 한자들은

기본적인 형태의 글자 몇 백자와

그 글자들을 이리저리 조합해 만들어진 나머지 글자들로 구성돼 있다.


한자들 중에는 기본적인 글자들과 다른 글자들을 조합하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글자를 두 번이나 세 번 중복해 조합해서 만들어진 글자들이 꽤 있다.

그런 글자들을 생각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글자는 “나무 목(木)”으로만 이뤄진 글자들이다.

나무 한 그루만을 가리킨다는 인상을 주는 “木”이 두 개 모이면

나무들이 무성한 상태를 가리키는 “수풀 림(林)”이 된다.

그리고 거기에 “木”이 하나 더 추가되면 “나무 빽빽할 삼(森)”이 된다.

“森”은 “木” 세 개가 배치돼 있는 구도만 보더라도 나무들이 빼곡하게 서있다는 느낌을 준다.

“木”을 네 개 합친 글자는 없지만

다섯 개를 합쳐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단어는 있다.

“나무가 많이 우거진 숲”을 가리키는 “삼림(森林)”이 그것이다.


음양오행에 따르면 “木”은 “불 화(火)”를 생(生)하는데,

“火”를 두 개 모아놓으면 “불탈 염(炎)”이 된다.

“林”은 “木”을 옆으로 나란히 놓은 글자고

“森”은 “林” 위에 “木”을 하나 올려놓아 글자에 안정감을 부여한 글자인 반면,

“炎”을 보면 “火”가 상하로 배치돼 있다.

“炎”이 이런 구도를 갖게 된 원인에 대한 개인적인 추측은 이렇다.


첫째는 “火”를 “林”처럼 옆으로 나란히 놓았을 때보다

위아래로 놓았을 때 글자 모습이 보기 더 좋다는 미적 판단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둘째 추측은 흔히들 “남대문(南大門)”이라고 부르는 “숭례문(崇禮門)”의 현판이

특이하게도 가로가 아닌 세로 형태인 것과 관련이 있다.

“숭례문”의 현판이 세로인 건

경복궁을 마주 보고 있는 관악산이 풍수지리에서 볼 때 화기(火氣)로 뭉친 산이라서

한양 성내에 화재를 일으킬 위험이 크다는 생각에

음양오행에서 “火”에 해당하는 방위인 남(南)쪽 성문에

위로 타오르는 “불(火)”의 형태인 세로 현판을 달아 맞불을 놓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炎”의 상하 구도에도 숭례문 현판과 마찬가지로 위로 타오르는 “불(火)”의 성격이 반영됐을 것이다.


내 지식이 모자라서인지 몰라도,

“木”을 세 개 모아놓은 “森”처럼 “火”를 세 개 모아놓은 글자는 없는 듯하다.

“火”가 두 개 모였을 때 타오르는 불길의 세기는 그럭저럭 감당할 수준이지만

세 개를 모아놓으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길이 맹렬할 거라는 판단에서 그런 걸까?


음양오행에서 “火”가 생하는 기운인 “흙 토(土)”를 두 개 모아놓은 글자도 있다.

“홀 규(圭)”가 그 글자다.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을 보면 입궐한 신하들이 임금을 알현할 때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그때 손에 들려있는 것이 바로 “홀”이다.

그런데 “圭”에는 “해시계”라는 잘 쓰이지 않는 다른 뜻이 있다.

시계가 없던 과거에는 “흙(土)”를 높이 쌓아 “圭”를 만들어

해가 지나갈 때 이동하는 “圭”의 꼭대기 그림자가 가리키는 위치(票)를 바탕으로

시간을 측정하고는 했다.

“圭”도 “土”가 상하로 배치돼 있는 형태인데, 이건 순전히 미적 판단에 따른 배치일 것이다.


음양오행에서 “土”는 “쇠 금(金)”을 낳는다.

“金” 두 개를 나란히 놓은 글자는 “악기이름 편(鍂)”이다.

기타의 쇠줄이나 동물의 창자(한의학에서 창자는 금기金氣가 관장하는 장기臟器다)로 만든

현(絃)을 연주하는 현악기와

금속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타악기 등

많은 악기가 “金”과 관련이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그럴듯해 보이는 글자다.


“金”을 세 개 모아놓은 글자는 “기쁠 흠(鑫)”이다.

이런 글자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건 인천의 차이나타운에 갔을 때였다.

길가에 즐비한 중국집을 돌아보던 중에 이 글자를 이름으로 내건 중국집을 보고

옥편을 찾아본 후

“금덩어리가 세 개 모여 있는 걸 봤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절로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

“鑫”에는 “놋쇠로 만든 밥그릇”인 “주발(周鉢)”이라는 뜻도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화투짝을 든 고수들이 도박 실력을 겨루는 무협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