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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증과 "관심종자"를 비판하는 깔끔한 스릴러!!!

<그녀가 죽었다>

by 윤철희

※ 이 글에는 <그녀가 죽었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김세휘 감독의 <그녀가 죽었다>는 관음증과 관종(관심종자) 같은
현대사회에 만연한,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회적 현상을 소재로 삼아

깔끔하게 만들어진 스릴러다.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를 통해 뜻밖의 반전들을 거듭해 보여주는 영화는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관찰하고

타인들의 갖가지 민감한 사연을 게걸스레 소비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은 정보를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데 쓰려는 이기심을 풍자하며 비판한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는 히치콕의 <사이코>처럼)

영화의 중간 부분에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는 시점의 소유자를

매끄럽게 교체하는 수완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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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부동산 관련 글을 올리고서 회원들의 칭찬을 듣는 것을 낙으로 삼는

부동산 중개인 구정태(변요한)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정태에게는 또 다른 낙이 있다.

고객이 의뢰한 부동산의 매매를 중개한다는 명목으로

고객이 맡긴 열쇠를 제멋대로 활용해서는 고객의 생활공간에 들어가

그 고객의 삶에 대한 정보를 시시콜콜 캐내는 취미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나쁜 짓은 안 하고 보기만 한다”라고 변명하지만,

그의 행태는 결벽증과 관음증이 뒤섞인 악취미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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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는 도벽도 있다.

그는 타인의 생활공간에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침입해서는 고장 난 곳을 수리해 주고는

그 대가라며 그 공간을 기억하게 해 줄 사소한 물건들을 챙긴다.

그러고는 그 기념품을 벽지 색깔까지 맞춰가며 보관하기까지 한다.

그에게는 그런 기념품들을 모아놓은 박물관 같은 공간까지 있다.

이렇게 그의 관음증은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차원을 넘어

사생활을 침해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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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 그의 시선을 잡아끄는 인물이 등장한다.

SNS에서 유기견을 구하고 돌보는 활동을 벌이며 받은 후원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다.

우연히 마주친 소라에게 흥미를 느낀 정태는 그녀를 미행하는 한편으로

그녀의 집에 침입하려 애쓰지만 실패한다.

그런데 어느 날 소라가 제 발로 그의 사무실을 찾아와 거처를 매물로 내놓는다.

소라의 의뢰를 받았다는 핑계로 소라의 집을 몰래 찾아 욕심을 채우는 재미를 만끽하던 정태는

어느 날 평소처럼 소라의 집에 갔다가 소파에 누워있는 소라의 시신을 발견한다.

영화가 묘사하던 범죄는 이제 스토킹에서 살인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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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는 불법 침입 사실을 들키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살인사건을 신고하려고 머리를 굴린다.

그가 짜낸 꼼수는 매물을 소개하는 척 고객들을 데리고 소라의 집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시신은 감쪽같이 사라져 보이지 않고 현장도 말끔하게 정리돼 있다.

영문을 몰라 전전긍긍하는 그에게

“너지?”라고 적힌 쪽지와 소라의 시신과 그의 불법 침입 장면을 찍은 사진이 날아오고

어머니의 유해를 모신 납골당이 털리지는 등의 이해하기 힘든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더니

결국에 그는 살인자 누명을 쓰고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된다.


누명을 쓴 인물이 의혹의 눈초리를 받으면서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지는 동안

사건을 해결해서 누명을 벗으려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는 내용의 영화는 많다.

그런 장르에 속하는 <그녀가 죽었다>가 잘 만든 영화인 건

도망 다니는 정태가 영화 도입부에서 소개된 공인중개사의 전문적 노하우를

적절히 활용한다는 점 때문이다.

영화는 결벽증이 있는 그가 소라의 집을 청소하다 막힌 수챗구멍을 뚫었을 때 얻은

사소해 보이는 단서 까지도 사건 해결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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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죽었다>의 백미는 각각 스토킹의 가해자와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정태와 소라의 관계가
사실은 정반대였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의 시점이 정태의 것에서 소라의 것으로 옮겨지면서 어느 틈엔가 주인공은 소라로 바뀌고,

소라의 과거와 주변인물들과 관계가 묘사되면서

정태가 관찰하고 취득했던 정보의 진짜 의미와 면모가 드러난다.

정태는 자신이 그녀의 삶을 관찰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가 소라에게 관찰당하는 신세였다.

정태는 자신을 스토킹 했던 소라의 진짜 정체와 행방을 찾아내려 안간힘을 쓰던 중에

생각지도 못한 사건들에 연달아 휘말리게 되고,

여기에 오영주 형사(이엘)까지 가세하면서

영화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흥미진진한 오리무중 속으로 관객을 끌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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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죽었다>에는 소라가 SNS에 올린

카페에서 명품 백을 들고 찍은 사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촬영된 것인지,

소라가 구출했다고 방송한 고양이의 다리는 어떻게 부러지게 된 것인지 등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 제일 재미있으면서도 세태를 가장 잘 풍자하는 장면은

소라가 정태에게 보낼 협박용 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피범벅이 된 시체가 돼서 소파에 누워있는 자신의 사진을 찍은 소라는

결과물을 보고는 “얼굴 크게 나왔다”며 삭제한 다음에 다시 사진을 찍는다.

이 장면은 전 세계가 볼지도 모를, 어쩌면 몇십 년 후의 후손들도 볼지 모를 SNS에 올릴 사진은,

설령 그것이 시체로 누워있는 자신의 사진일지라도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찍고 또 찍어야 한다는 게

헌법 규정에 명확하게 들어있을 것만 같은 세태를 재미있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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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을 거듭하면서도 억지스럽지 않은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감독의 연출력이 어우러져 좋은 작품이 된 <그녀가 죽었다>는

평판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태,

그리고 “주목경제(attention economy)”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돈이 되는 세상을 영악하게 살아가는 소라를 등장시켜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영화의 결말에는 영화가 말하려는 바가 집약돼 있다.

정태는 온라인에 올린 그의 조언 덕에 돈을 벌었다며 칭찬하는 구독자의 댓글을 보고는 흐뭇해하고,

교도소에 갇힌 소라는 면회 온 기자가 묻는 “몸매 관리 비법”에 대한 질문에

짜증과 흥분이 뒤섞인 반응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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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면 궁금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들과 소통하는 이 시대에

어떤 사람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그 사람의 진짜 속내는 일치할 거라고 믿는 것은

정말로 위험한 일 아닐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존재라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옳은 처세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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