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송(松), 측백나무 백(柏) 등
세상에 존재하는 나무의 종(種)은 대단히 많고
각각의 종은 저마다 다른 종의 나무와 구별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인류는 각각의 수종(樹種)에 그것들이 가진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이름을 붙여왔다.
나무 이름에 쓰이는 한자들에도
해당 한자가 만들어지던 시대를 살던 이들이 각각의 나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반영돼 있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나무를 꼽을 때
(아마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나무일 것이다.
사시사철 푸르른 점, 세모꼴 모양새, 뾰쪽하고 향기로운 솔잎과 솔방울 같은
소나무와 관련된 여러 이미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뿌리내리고는
문학과 미술 등 여러 예술 형식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소나무를 가리키는 한자인 “소나무 송(松)”은
나무 이름으로 쓰이는 글자에 항상 포함되는 “나무 목(木)”변과 “공평할 공(公)”이 결합된 글자다.
“公”이 가진 여러 뜻 중에서 “松”에 반영된 뜻은
“벼슬,” “존칭(尊稱),” “귀인(貴人),” “제후(諸侯)” 같은
“품격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을 가리키는 뜻들이다.
한자를 만든 이들은 소나무를 많은 나무들 중에서도 “귀하고 품위 있는 나무”로 여긴 듯하다.
세조가 길가에 있는 소나무에 “정이품(正二品)” 벼슬을 내린 데에는
소나무에 대한 이런 인식도 어느 정도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유명한 그림 <세한도(歲寒圖)>는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歳寒然後知松柏之後凋)”는
<논어(論語)>의 구절을 바탕으로 그려진 것이다.
이 구절에 들어있는 “송백(松柏)”이라는 단어에서 보듯
“측백나무 백(柏)”은 “소나무”와 짝을 이뤄 언급되는 경우가 잦다.
고대 중국에서는 소나무는 으뜸가는 나무라하여 “공(公)”이라 여기고
측백나무는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글자인 “백(伯)”이라 여겼다.
측백나무를 소나무 다음 가는 작위에 해당하는 나무로 생각한 것이다
“柏”에 들어있는 “白”은 “맏 백(伯)”의 변형일 것이다).
그런데 “柏”은 “측백나무”를 가리키기도 하고 “잣나무”를 가리키기도 한다.
위에 있는 <논어>의 구절풀이에서는 “松柏”을 “소나무와 잣나무”로 설명했지만,
옳은 풀이는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돼야 한다.
중국에는 잣나무가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버드나무를 가리키는 “버들 양(楊)”은 “木”과 “昜(볕 양)”이 합쳐진 글자다.
이름에 “따사로운 햇볕(昜)”이 들어있는 버드나무는 양기(陽氣)가 세기 때문에
음기(陰氣)가 뭉친 존재인 귀신이 싫어한다는 속설이 있다.
무당들이 귀신을 내쫓을 때 버드나무 가지로 사람을 때리기도 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라고 한다.
버드나무의 껍질이나 잎에 해열·진통 작용을 하는 약효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리고 무척이나 효험이 많은 아스피린의 원료라는 점을 감안할 때,
버드나무를 가리키는 글자에 “昜”이 들어있는 건
버드나무에 인간을 괴롭히는 “음습한 병마(病魔)”를 내쫓는 위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버드나무를 가리키는 글자는 “楊” 말고도 또 있다.
“버들 류(柳)”는 버드나무를 지칭할 때 “楊”보다 더 많이 쓰이는 글자다.
“楊”이 버드나무가 가진 약효 같은 내적(內的) 특징이 반영된 이름이라면,
“木”과 “넷째 지지 묘(卯)”가 합쳐진 “柳”는
길쭉한 가지를 머리카락처럼 늘어뜨린 버드나무의 외적 모습을 반영한 글자라 할 수 있다.
음양오행에서 “卯”는 “바람에 휘청거리는 풀잎” 같은 존재를 가리키는 지지(地支)다.
야간 유흥을 제공하는 업계를 가리키는 “화류계(花柳界)”라는 단어에는
버드나무의 이런 외적 특징을 감안해 만들어진 것이다.
귀신을 쫓는 효험을 가진 나무로는 복숭아나무(복사나무)도 있다.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않는 것도,
집안에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는 것도 복숭아가 가진 이런 효험 때문이다.
“복숭아나무 도(桃)”는 복숭아가 가진 효험이 반영된 글자다.
“桃”는 “木”과 “조짐 조(兆)”가 합쳐진 글자인데,
“兆”는 고대에 점을 치려고 짐승의 뼈나 거북의 배딱지를 불에 태웠을 때 생기는 흔적을 상형화한 글자다.
양기(陽氣)인 불기운을 가득 품고 앞날을 밝게 볼 수 있게 해 준 “兆”는
음기로 똘똘 뭉친 귀신을 쫓아낼 것이라는 생각이 반영된 듯하다.
흔히들 너무나 당연히 나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에도 “나무”가 들어있지만
실제로는 나무가 아닌 식물이 있다.
바로 “대나무”다.
식물학적으로 보면 “대나무”는 목본(木本) 식물인 나무가 아니라
초본(草本) 식물인 풀에 속한다.
식물학의 기준에 따라 나무로 분류되려면 단단한 부분(목질부)이 있어야 하고
형성층이 있어 부피 생장을 해야 하는데,
대나무는 키만 자랄 뿐 굵기는 거의 굵어지지 않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의 나무에 해당되지 않는다.
대나무를 가리키는 글자인 “대 죽(竹)”에 “木”이 들어있지 않은 것을 보면
한자를 만들던 사람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매화나무 매(梅),” “오동나무 동(桐)” 등등 나무의 이름은 나무의 종류만큼 많다.
주위에 있거나 관심이 가는 나무의 이름으로 쓰이는 글자를 놓고
그 나무의 어떤 특징이 글자에 반영됐을지 사유해 보는 것도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