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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철희 Aug 21. 2024

"밥심이 최고"가 옳은 말인 근거로 제시될 글자는?

쌀 미(米)

“밥심이 최고,”

“무슨 일을 하건 배가 든든해야 한다”는 말을 가끔씩 듣는다.

“쌀 미(米)”가 들어있는 한자들은

그것들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나름의 근거를 제공한다.


는 벼와 기장을 비롯한 곡물의 열매를 가리키는 글자로,

글자 가운데에 있는 ()”는 낟알들을 흩어 놓는 도구이고

주위에 있는 점 네 개는 흩어진 낟알들을 가리킨다.


한편, 어렸을 때 밥그릇에 밥을 남기면

“쌀은 농부들이 88번의 과정을 거치는 수고를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귀한 곡식이기 때문에

한 톨도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했다.

이건 “米”라는 글자를 쪼개 보면

“88(八十八)”이라는 글자가 되기 때문에 나온 얘기다.


“밀가루로 만든 빵은 먹어봐야 금방 꺼지니

(쌀)밥을 먹어야 기운이 나는 법”이라는 얘기도 자주 듣는다.

이 얘기의 근거가 되는 글자는 기운 기()”다.

“기운, 조짐, 힘” 등의 뜻을 가진 “氣”는

로 줄여 쓰기도 하는데,

“气”는 “뭉개 뭉개 피어오르는 구름의 기운”을 본뜬 글자다.

“氣”는

열기구처럼 뭉개 뭉개 피어오르는 기운을 가리키는

“气”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 아래,

“气” 밑에 “米”라는 에너지를 배치해서는

기운이 사방으로 널리 퍼진다는 뜻을

더욱 확실하게 보여주려는 글자라고 보는 건 지나치게 과한 해석일까?


“米”가 “기운”과 관련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또 다른 글자는

정세할 정()”이다.

“精”에는 “곡식을 찧다,” “우수하다,” “깨끗하다” 등의 뜻이 있지만,

“精”이 들어간 단어들 중에서 우리에게 제일 익숙한 단어들은

정기(精氣),” 정력(精力),” “정액(精液)” 등일 것이다.

“精”은 “米”와 푸를 청()”이 합쳐진 글자인데,

음양오행에서 “푸른색”은

“목(木)”과 “봄(春)”의 색상이자

“만물의 성장”을 상징하는 색이다.

따라서 “精”이라는 글자는

“쌀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기운”을 가리킨다고 보면 될 것이다.


“米”는 곡물과 관련된 여러 글자에도 들어있다.

대표적인 글자가 가루 분()”이다.

이 글자에 따르면 “가루”는 “낟알(米)을 나눈 것(分)”인데,

“얼굴에 분을 바르는 화장을 했다”라고 할 때 “분”이 바로 이 “粉”이다.

상상해 보라. 얼굴에 바르는 분의 그 미세하고 보드라운 질감을.

피부의 잡티를 가려주고 화색을 돌게 해주는 “粉”은

“가루(粉)가 마지막 단계(末)까지 갈린” 분말(粉末)” 형태다.


“粉”은 “밀가루”를 뜻하는 글자로 많이 쓰인다.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가리키는 분식(粉食)”이 그런 경우다.

원래 “분식집”은 라면이나 떡볶이 같은 밀가루 음식을 팔던 곳이었는데,

요즘에는 김밥이나 돈가스처럼 밀가루 하고는 관련이 없는 음식도 팔고 있다.


“粉”이 들어간 사자성어도 있다.

분골쇄신(粉骨碎身)”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질 정도로 노력하겠다”는 뜻이다.


“물질을 이루는 아주 작은 알갱이”를 뜻하는 단어인

입자(粒子)”에 들어있는 글자인 낟알 입()”

“낟알”이라는 뜻의 글자를 두 개나 겹쳐 사용해

그 뜻을 더욱 강조한 글자다.

“米”와 합쳐진 설 립()”에도 “낟알”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걸인이 구걸할 때 쓰던 “한 닢 줍쇼” 같은 표현은

요즘에는 듣기 힘들지만,

아무튼 이 표현에 등장하는

“동전이나 멍석 같이 납작한 물건을 세는 단위”인 “닢”은

“立”의 발음이 변형된 것이다.


“米”는 예상하지 못한,

왜 거기에 들어가 있는지 영문을 알기 힘든 글자에도 들어있다.

바로 미혹할 미()”다.

“길을 잃다”는 뜻을 가진 이 글자는

“사건이 미궁(迷宮)에 빠졌다”거나

“~에 미혹(迷惑)됐다”는 등의 표현에 들어있다.

“迷”는 “米”와 쉬엄쉬엄 갈 착()”이 결합된 글자인데,

옥편이나 여러 자료에서 설명하는 이 글자의 구성 원리는 다음과 같다.


“米”는 흩어진 쌀알을 그린 글자다.

“迷”는 본래 “길을 헤매다”나 “길을 잃다”는 뜻을 위해 만든 글자였는데,

이 글자에 “길을 잃다”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米”가 들어간 것은,

“米”를 “쌀”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

“길이 사방으로 뻗어나간 모습”을 그린 글자로 응용했기 때문이다.

사방으로 흩어진 낟알처럼 길이 온갖 곳으로 나있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을 “米”로 표현했고,

본래 “길을 잃다”는 뜻이던 “迷”는

이후에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뜻이 추가되면서

“미혹하다”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설명 자체가 “迷宮”에 빠진 것처럼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우리 “밥심”으로 난관을 돌파하고 이해에 도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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