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의 마음으로 가는 길은 道인가요, 路인가요?

길 도(道)와 길 로(路) 등

by 윤철희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고

인생살이라는 것이 그것들 중 하나를 선택해 나아가다

갈림길이 나오면 또다시 선택해서 나아가는 식이라서 그런 것인지

한자에는 길을 가리키는 글자가 여러 개 있다.


“도로(道路).”

“길”이라는 뜻을 가진 “길 도(道)”“길 로(路)”

두 글자가 결합해 “길”이라는 뜻을 더욱 확실하게 드러내는 단어다.

그런데 긴 세월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이 단어를 써오던 내 머리에

어느 날 궁금증이 떠올랐다.

“道”와 “路”는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道”“머리 수(首)”“쉬엄쉬엄 갈 착(辶)”이 합쳐진 글자다.

“道”를 “오랑캐를 무찌르고는

그 오랑캐의 머리를 들고 쉬엄쉬엄 이동하는 길”이라는

뜻에서 나온 글자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글을 여러 곳에서 봤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道”의 올바른 구성 원리는 “道”가 가진 “길”이라는 뜻 이외의 다른 뜻들,

그러니까 “도리(道理),” “도덕(道德),” “무도(武道)” 같은 단어에서 보듯

“이치,” “도덕,” “사상,” “기예, 기술” 등의 뜻을 바탕으로 추론해야 한다고,

“道”는 “머리(首)를 써서 쉬엄쉬엄 나아가는 길”이라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의 길은 물리적인 길이기도 하지만,

“도를 닦다”나 “도통(道通)했다”는 표현이 보여주듯

추상적인 길, 정신적인 길의 성격이 더 강하다.


“道”와 대비되면서 “도”를 더 잘 이해하게 해주는 글자가 “로(路)”다.

“발 족(足)”“각각 각(各)”이 합쳐진 이 글자의 구성 원리는

다음과 같은 루쉰의 유명한 문장을 보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상 땅 위에 본디부터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보듯 “路”는

“많은 사람이 각자(各自)의 발(足)을 내디디며 자취를 남긴 끝에 만들어진 길”이다.

“路”에 “거쳐 가는 길”이라는 뜻이 있고,

“거쳐 지나가는 길이나 과정”을 뜻하는 “노정(路程)”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이 그 근거다.


“道”의 “길”은 정신적으로 뚫어내는 길이고

고심과 번뇌를 통해 나아가는 길이다.

“路”의 “길”은 몸을 움직여 다져낸 길이고

거친 숨을 쉬고 비지땀을 흘리며 나아가는 길이다.

“道”는 인간이 계획적으로 낸 길이고,

“路”는 계획에는 없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 보니 생긴 길이다.


“길”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는 더 있다.

예전에는 제법 많이 보였는데 요즘에는 보기 힘든 표현이

“장도에 오르다”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어떤 한자의 “장도”를 쓰느냐에 따라

뜻이 두 가지로 나뉘는데,

장도(壯途)에 오르는 것”은

“중대한 사명이나 장한 뜻을 품고 떠나는 것”이고

장도(長途)에 오르는 것”은

“긴 여행이나 매우 먼 길을 떠나는 것”이다.

잘 몰랐을 때는 “장도”를 “긴 길”일 거라 짐작해

“長道”라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된 한자는 “長途”였다

(왜 “道”가 아니라 “途”를 쓰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길 도(途)”

“나 여(余, 산山의 이름으로 쓸 때는 ‘도’로 읽는다)”와 “辶”이 결합된 글자다.

시라카와 시즈카에 따르면,

“여(余)”는 손잡이가 달린 큰 바늘의 모양으로,

이 바늘은 흙 속을 찔러 악령을 제거하는 데 썼다.

따라서 “途”는 이 바늘로 흙을 찌르며 천천히 가는 길을 가리킨다.


“거리 가(街)”도 길을, 그중에서도 “큰길(大路)”을 뜻하는 글자다.

“街”는 “다닐 행(行)”“홀 규(圭)”가 결합된 글자다.

“行”은 예전에 소개한 것처럼 사거리를 나타내는 글자고,

“圭”는 “흙 토(土)”를 두 개 겹쳐놓은 모양에서 보듯

흙으로 네모반듯하게 쌓은 제단을 뜻하는 글자다.

네모반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글자들인 “行”과 “圭”가 합쳐지면서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난 길”이라는 의미가 더욱 강조됐다.


인생은 기나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여행길에 나선 나그네인 우리 각자의 앞에는

수많은 “道”와 “路”가 놓여있다.

때로는 “道”라는 길을 현명하게 걸으려 깊은 생각에 잠겨보고

때로는 “路”라는 길을 열심히 가려고 땀을 흘려가며

각자에게 유익하고 남에게는 폐를 끼치지 않는 여행을 무사히 마치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의 목표가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고담 경찰은 배트맨을 안 잡는 걸까, 못 잡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