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할 장(臧)
여러 글자가 결합된 10획이 넘는 한자를 보면
무조건반사처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게 사실이다.
글자를 찬찬히 뜯어보며 어떻게 구성된 글자인지 파악하면
조금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예를 들면, “목숨 수(壽)” 같은 글자가 그랬다.
요즘에는 보기 힘들지만,
옛날에는 베개와 가구 등 생활공간 곳곳에서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의미의 이 글자를 보고는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이 복잡한 글자를 어떻게 외우나 막연해하는 나한테 좋은 방법을 알려주셨다.
“사일공일구촌동”으로 외우면 된다는 거였다.
아버지 말씀대로
“사(士), 일(一), 공(工), 일(一), 구(口), 촌(寸)”을 합치니까
(“동”은 운율을 맞추려고 집어넣은 것이다)
“壽”가 됐다!!!
“壽”처럼 복잡해 보이는 글자 중 하나가 “착할 장(臧)”이었다.
그러면 슬쩍 보기만 해도 무척 복잡해 보이는
14획짜리 글자 “臧”의 구성을 보자.
글자 왼쪽에는 “나무를 세로로 쪼갰을 때 왼쪽 부분”을
가리키는 글자인 “나뭇조각 장(爿)”이 있고,
위쪽과 오른쪽에는 “창 과(戈)”가 있으며,
두 글자에 둘러싸인 가운데에 “신하 신(臣)”이 있다.
이 세 글자가 이룬 “臧”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爿”에 “창(槍)”이라는 뜻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爿”과 “戈”를 합치면
“죽일 장(戕)”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두 자루의 치명적인 무기 사이에 배치된 글자인
“臣”에는 “신하”라는 뜻 외에도
“백성,” “하인,” “포로” 등의 뜻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臧”이라는 글자를 뜯어보면
“두 자루의 창(槍과 戈)” 사이에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인 “신하나 백성, 하인”이 숨어있는
글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 결과 “臧”에는 “숨다, 숨기다”는 뜻과 “감추다”는 뜻이 있고,
그런 것을 숨기는 곳인 “창고”라는 뜻도 있으며,
숨어있으면 착하게 굴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인지 “착하다”는 뜻도 있다.
“臧”이 들어간 여러 글자의 뜻은
“臧”이 가진 여러 뜻 중에서도 “숨기다”라는 뜻과
무엇인가를 저장하는 “창고”라는 뜻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다.
“범죄행위로 얻은 남의 물건”을 가리키는
“장물(贓物)”이라는 단어에 쓰이는 글자인
“장물 장(贓)” 같은 경우는
값나가는 물건을 가리키는 “조개 패(貝)”와 “臧”이 결합된 글자다.
“감출 장(藏)”은
“臧” 위에 “풀”을 뜻하는 “초두머리(艹)”를 덮어
“무엇인가를 숨긴다”는 뜻을 더 확실하게 굳힌 글자로,
“藏”과 “臧”은 글자의 뜻도 비슷하다.
“藏”이 들어간 단어들 중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로는
지하에 석유나 광물자원이 묻혀있는 것을 가리키는 “매장(埋藏)”이 있고,
사자성어로는
타조 같은 동물이 무서운 적을 외면하려고 머리는 땅에 처박지만
꼬리는 고스란히 드러내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가리키는
“장두노미(藏頭露尾)” 등이 있다.
“臧”과 “藏”의 “숨기다”는 뜻을 그대로 이어받은 글자로는
“장롱 장(欌)”과 “오장 장(臟)”이 있다.
금속이 가벼워지고 흔해진 시대에는
옷이나 서류 같은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철제 캐비닛을 사용했지만,
그렇지 않던 시절에는 “나무(木)”로 짠 장롱(欌籠)에 물건을 보관했다.
참고로 “欌”은 나무를 조립해 만든 궤짝을 가리키고,
“대그릇 농(籠)”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그릇이나 바구니를 가리킨다.
바깥세계에서 침입하려는 것들을 “창들(槍과 戈)”로 막아내며 숨겨야 할 것은,
그렇게 보호해야 할 것은
우리 몸에도 많이 있다.
우리 몸 안에 있는 장기(臟器)가 그것들이다.
“臟”은 “고기 육(肉)”이 변하면서
우리 신체의 다양한 부위와 장기를 가리키는 글자에 붙는 “육달월(月) 변”과
“臧”이 합쳐진 글자로,
한의학에서는 “간장·심장·신장·폐장·비장”의 다섯 장기를
“오장(五臟)”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속하지 않은 다른 장기들은 “육부(六腑)”로 분류되고,
그래서 우리 몸에는 “오장육부”가 있게 된다).
이렇게 “臧”이라는 글자를 뜯어서 분석해 봤다.
이 분석이 앞으로 여러분이 복잡한 한자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