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 신(申)/아홉 번째 지지 신(申)
“거듭 신/아홉 번째 지지 신(申)”은
12지지에서는 “원숭이”에 해당하고
오행에서는 “양(陽)의 금기(金氣)”에 해당하는 글자다.
옥편이나 한자를 다룬 전문서적에서는
“申”을 “번개의 모양”을 그린 상형문자라고 설명한다.
빛이 좌우로 굴절하는 모양을 세로선 옆으로 늘어놓아 만든 글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申”을 보면서 그리스로마신화의 제우스가 벼락을 날리려고 할 때처럼
“기다란 막대기와 그것을 쥔 주먹의 모양”을 그린 글자로 생각하기도 하고,
“밭(田)”을 위아래로 꿰뚫은 막대기를 그린 글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옥편에는 “申”의 부수가 “田”이기는 하지만
“申”과 “田”은 관련이 없는 글자라고 설명돼 있다).
내가 하는 이런 생각은 “申”에 대한 또 다른 설명하고도 맥이 통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번개는 하늘에 있는 신이 그 위광(威光)을 나타낸 모양”이다.
번개는 신이 뿜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申”을 “귀신 신(神)”이라고 여기면서 “神”의 본래 글자로 썼다는 것이다.
내 근거 없는 생각과 전문가들이 하는 이런 설명의 공통점은
“申”이라는 글자가
“위에 있는 것(예를 들면 하늘)과 아래에 있는 것(예를 들면 땅)을 이어준다”는
뜻을 가진 글자라는 것이다.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진화론을 거칠게 적용해 보자면
“원숭이”는 짐승과 인간의 중간에서 그 두 존재를 이어주는 위치에 있는 동물이다.
“번개”는 하늘의 전기를 (또는 하늘의 뜻이나 제우스 같은 신의 분노를)
땅에 내리꽂으면서 짧은 순간이나마 하늘과 땅을 이어준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神”에 “申”이 들어있는 건 이런 연유에서다.
“申”과 결합해 “神”이 되는 글자인 “보일 시(示)”는
“신에게 제사드릴 때 쓰는 탁자의 모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글자다.
“示”를 부수로 쓰는 글자는
대부분이 “신”이나 “귀신,” “제사,” “길흉”과 관계된 의미를 갖고 있다.
“볼 시(視)”도 세상을 멍하니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주의 깊게 주시한다는 뜻이 담긴 글자다.
그런 의미를 가진 “示”와 “申”이 결합한 글자는
하늘의 뜻을 땅에 있는 인간에게 전해주는 존재를 가리키는 글자일 수밖에 없다.
“번개 전(電)”이라는 글자를,
구체적으로는 “비 우(雨)” 밑에 있는 글자를 주목해 보라.
이 부분의 글자를 오행에서 “양(陽)의 목기(木氣)”에 해당하는
“갑(甲)”의 아랫부분을 옆으로 꺾어놓은 글자로 보기 쉽지만,
앞서 “申”이 “번개의 모양”을 가진 글자라고 설명했던 것을 염두에 두면
이 글자는 “申”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고압전류인 번개에 맞은 나무는 불에 타지만
(벼락에 맞아 불에 탄 대추나무에는 귀신을 쫓는 효험이 있다고 한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지는 못한다.
반면, 피뢰침 같은 금속(특히 陽의 金氣인 申)에 떨어진 번개는
그 금속을 타고 땅으로 흘러들어 간다.
중국에서 쓰는 “電”의 간체(簡體, 기존의 한자를 간략하게 만든 글자)가
“电”인 것은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일이 가끔씩 있기는 하지만,
번개는 대체로 비가 오는 날에 친다.
그래서 “雨”를 “申” 위에 붙여 “電”이 된 것이다.
“申”에는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모양으로 치는
“번개”에서 유래한 듯한 뜻이 많다.
“늘이다, 연장시키다,” “알리다, 진술하다” 등이 그런 뜻으로,
이 뜻들은 다른 글자들과 결합돼 같은 맥락의 뜻을 가진 글자가 된다.
“늘어남과 줄어듦”이라는 뜻을 가진 “신축(伸縮)”에 들어있는 “펼 신(伸)”은
“申”이 가진 “늘이다, 연장시키다”는 뜻이 반영된 글자다.
원래는 “사람(亻)이 몸을 늘려 편다”는 뜻이었지만
“펴는 주체”가 물건들에까지 확장되면서 지금과 같은 뜻이 됐다.
편지의 본문에 쓰지 못했지만 꼭 해야 하는 말을 말미에 붙여 쓰는 “추신(追伸)”에도
“글을 늘리는” 의미의 “伸”이 들어있다.
“申”이 들어있는 글자 중에는 “큰 띠 신(紳)”도 있다.
글자에 “실 사(糸)”가 들어있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
“예복(禮服)”을 입을 때 몸에 두르는 기다란 띠를 가리키는 글자다.
예전에는 고관들만이 이런 띠를 두를 수 있었는데,
그런 띠를 두르는 선비를 가리키는 단어가
영어의 “Gentleman”을 번역한 “신사(紳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