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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철희 Jun 13. 2024

날아다니는 새를 맨손으로 잡기

새 추(隹)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를 가리키는 한자는

여러 개 있는데,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글자는

새 을()”이다.

새의 옆모습 같기도 하고

새가 하늘을 날면서 그리는 궤적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글자가

“새”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乙”은

10개의 천간(天干) 중 두 번째 천간이라는 이유로

첫 천간인 갑(甲)과 “갑을관계”로 묶이면서

“갑질”의 대상이라는

서러운 신세가 된 안타까운 글자다.


“새”를 가리키는 글자들 중에서

제일 대중적인 글자는 새 조()”다.

한자 연구의 권위자인

일본 학자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는

“鳥”를

“새의 전체 모습을 윤곽으로 그린 모양”으로 봤다.

한편, 이 글의 소재인

새 추()”

“꽁지가 짧은 새”를 본뜬 상형자라고 옥편에 적혀있다.


그렇다면 “鳥”와 “隹”는 무엇이 다른가?

나는

는 새의 형상을 갖춘 존재

가리키는 글자고

는 새가 가진 본성이나 속성

가리키는 글자라고 생각한다.

“隹”가 들어가는 글자들을

곱씹어본 끝에 내린 결론이다.


그런 글자들 중에 우선 생각나는 글자로는

“집합(集合),” “군집(群集)” 등에 쓰이는

모을 집()”이 있다.

글자에는 새가 한 마리밖에 안 보이지만,

실제로는 새 여러 마리가

나무에 모여 있는 것을 형상화한 이 글자에는

나무를 안식처로 삼는 새의 속성이 반영됐다고 본다.


“隹”를 이 글의 소재로 삼은 이유는

밀 추()”라는 글자 때문이다.

당구를 칠 때

내가 때린 공이 다른 공을 맞춘 후에도

계속 앞으로 굴러가도록 공의 윗부분을 치는 걸

요즘에는 “밀어 치기”라고 부르지만,

사회 전반에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던 옛날에는

오시()”라고 불렀다.

“민다”라는 뜻의 “推し”는

아이돌그룹을 덕질하는 데에도 많이 쓰인다.

“어느 그룹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멤버,”

즉 “최애 멤버”를

“내가 제일 미는 멤버”라는 뜻에서 오시라고 부른다.


“推”는 밀 퇴라고도 읽는데,

“推”를 “퇴”로 읽는 대표적인 경우는

“글을 지을 때 고심을 거듭하며 고치고 다듬는 것”을 뜻하는

퇴고(推敲)”일 것이다.

이 글도 몇 차례 “퇴고”를 거쳤다.

“퇴고”의 어원은 조금 기니까

검색해서 알아보시기 바란다.


그런데 “손(手)”을 뜻하는 재방변()”

“새”를 뜻하는 가 만나

만들어진 는 왜 “민다”는 뜻이 된 걸까?


시즈카는 “隹”를

새를 이용해 치는 점()인 새점에 사용되는 새라고 봤다.

그렇게 보면

“推”는 “손으로 붙잡은 새가 점을 치는 모습”이나

“새가 부리로 내놓는 점괘를 손으로 받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인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추진(推進)”은 새가 내놓은 점괘에 따라

어떤 일을 “밀고 나간다”는 뜻이 된다.

(에도 隹가 들어있는 걸 주목하라.)

그리고 시즈카의 설명은

“추리(推理),” “추론(推論),” “추측(推測)” 같은 단어의 바탕에

“새가 내놓은 점괘를 해석하려고 궁리한다”는

뜻이 놓여있을 거라는 생각을

타당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推”의 구성 원리는

시즈카의 설명하고는 다르다.

나는 “推”를

날아가는 새()를 맨손()으로 잡으려는 노력

뜻하는 글자로 본다.

단순히 “새의 형체(鳥)”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속성을 가진 존재()”

붙잡는 글자로 보는 것이다.


날아가는 새를 맨손으로 잡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장거리를 비행하는 새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자 대형을 이루는 것처럼,

제멋대로 날아다니는 듯 보이는 새의 비행에도

분명히 어떤 패턴이 있을 것이다.

궁리를 거듭한 끝에 그 패턴을 알아낸다면

맨손으로도 새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와 비슷한 노력을 기울여

사물이 돌아가는 이치나

사건이 벌어지게 된 배경과 과정을 파악하려는 게

추리와 추론, 추측일 것이다.


“한자를 사유하다”는 제목을 내걸고 쓰는 이 글도

“날아가는 새를 맨손으로 잡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나는 한자 연구의 권위자는커녕

전문가도 아니다.

그저 한자에 관심을 갖고

조금씩 생각해 보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몇 천 년 전에 만들어져

긴 세월을 거치는 동안 변형되거나 새로운 뜻을 얻은

한자의 유래와 생성원리에 대한

보편타당한 설명을 내놓을 능력은 나한테 없다.


그런데 세상에 그런 설명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한자들의 기원은

추리의 영역에 속한다고 믿는다.

갑골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는 해도

한자 한 글자 한 글자의 생성원리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결국 추리에 의지해야만 할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옳은 추측은 별로 없고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만 그득할지도 모르는 글을

당당하게 쓰려고 한다.


내가 약간의 자료와

모자란 지식과

짧은 추리를 바탕으로

“한자를 사유하는” 글을 쓰는 것은

한자 한 글자 한 글자의 바탕에 깔린

세계관과 사유에 대한 “내 짐작은 이렇다”는 걸

읽는 분들께 알리기 위함이다.

내 글을 읽는 분이

내 글을 반박하거나

“그분 나름의 생각”을 할 수 있게끔 해주는 원재료로

내 글을 활용해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새를 잡으려고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내 숱한 손질이

우스꽝스러운 헛손질에 그치지만은 않기를 바라며

글을 계속 써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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